[BOK이슈] 한국은행이 '임금인상→인플레' 경고 보고서 3차례나 낸 이유는

이재은 기자 2022. 7. 3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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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올해 들어 ‘임금발(發)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3차례 발표했다. 고물가에 대응한 국내 노동시장의 임금 인상 압력이 물가를 추가로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한국은행은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4월, 6월, 7월에 걸쳐 내면서 임금 상승을 부추기는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기대심리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의 이같은 행보는 정부의 ‘물가 안정’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한은 안팎의 평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임금인상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면서 대기업에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지난달 고(高)물가 상황을 언급하면서 “임금상승과 물가상승이 이어지는 악순환은 막아야 한다는 게 정부의 강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연이은 임금 관련 보고서 발간이 추경호 부총리와 한덕수 국무총리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지난 14일 오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각각 출국하는 모습 / 연합뉴스

◇ 한은 “임금인상, 시차 두고 물가에 반영”

한은은 이달 25일 낸 ‘우리나라의 물가-임금 관계 점검’ 보고서에서 “최근처럼 물가상승률이 6%대로 높아진 상황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물가와 임금간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물가 상승은 약 1년의 시차를 두고 임금을 밀어올리고, 임금 인상은 1년 이후 물가에 반영된다. 구체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포인트(p) 오르면 임금상승률은 4분기 이후부터 0.3~0.4%p 높아졌다. 임금상승률이 1%p 오르면 외식과 여행비를 비롯한 개인서비스 물가가 4~6분기 이후 0.2%p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지난해 3월 3.1%였던 우리나라 임금상승률은 올해 3월 4.1%로 뛰었다.

한은은 “이같은 물가·임금 상호작용은 지금과 같은 고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며 “선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책대응을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확산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달 13일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을 단행한 한은이 물가 억제를 위해 당분간 금리인상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한은은 지난달 초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도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이 임금 경로를 통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가계와 기업이 예상하는 향후 1년간의 물가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은 이달 4.7%까지 뛰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근로자는 기업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기업은 비용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실제 물가도 오르게 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확산에 따른 임금 인상이 물가를 추가로 자극하는 ‘임금·물가의 악순환적 상승’(wage-price spiral)을 경계해야 한다면서 ‘빅스텝’을 단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총재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물가와 임금간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16%를 상회하고 명목 임금상승률도 26%로 높아졌다”며 “지금이 1970년대와 같은 상황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유가 상승이 촉발한 인플레이션으로 각 경제주체가 가격, 임금을 서로 올리면서 또 물가가 오르는 상황 반복되면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돼 모두가 피해보는 결과를 다시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22일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 인상 및 차별철폐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

◇ 정부와의 협력 강조한 이 총재…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비판도

한은이 임금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기술하는 보고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기업의 임금인상 자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업에 “임금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한은이 정부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과 이창용 총재 취임 이후 두드러진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 공조’ 흐름과도 궤를 함께한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4월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의 만남이 뉴스가 안 될 정도로 자주 만나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도 “물가 안정만 보면서 독립성을 강조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달라졌다”면서 “정부와 대화를 통해 정책을 조율해 나가겠다”고 했다. 실제 두 수장은 최근 연이어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만나 “우리 경제가 직면한 복합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책역량을 총동원하겠다”며 강한 정책 공조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한은 내부에서는 이 총재가 정책 공조를 강조하다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경제·금융 수장들이 모이는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는 추 부총리가 마이크를 잡는데, 중앙은행 총재의 입에서 나와야 하는 발언마저 정부가 선점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16일 열린 회의에서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용하겠다”고 발표했고 24일 회의에서는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한은도 올해 1200억원을 출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은 물론, 금통위 의결도 거치지 않은 발권력 동원 발표 등을 기재부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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