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 효율로 넘자②]전기요금, OECD 최하위권..싼 값에 물 쓰듯 '펑펑'
기사내용 요약
가정용 전기요금, OECD 34개국 중 31위
사용량은 '세계 3위' 규모…효율은 떨어져
1弗 상품 만드는데 獨보다 전기 2배 더 써
정부, 에너지 효율 목표 G7 평균 수준으로
전기요금 원가 반영해서 가격으로 효율화
전문가 "요금 인상해야…산업구조 개편도"
[서울=뉴시스] 김성진 기자 =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로는 주요 7개국(G7) 수준이지만, 이들 국가보다 낮은 전기요금은 에너지 수요 관리를 저해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다.
우리 전기요금은 산업 구조나 근로자 임금 수준 등을 고려해 오랫동안 낮은 수준으로 유지된 만큼 공공재 성격이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탓에 가격 자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고물가 상황을 고려하면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그에 따른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을 고려했을 때 요금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조언한다.
31일 한국전력(한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1메가와트시(㎿h)당 103.9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31위였으며,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94.3달러로 22위였다.
같은 해를 기준으로 OECD 34개국 전체의 전기요금 평균을 100으로 놓고 평가하면, 우리나라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61%, 산업용 전기요금은 88% 수준에 불과했다.
전기 요금이 이처럼 낮기 때문에 전기 사용량도 자연히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많은 편이다.
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전기 사용량은 1만134㎾h로 캐나다(1만4098㎾h), 미국(1만1665㎾h)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했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전기 사용량은 전년 대비 5.1% 증가한 1만330킬로와트시(㎾h)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정용 전기도 1가구당 5616㎾h로 역대 최고치였다.
1인당 전기 사용량은 분야 구분 없이 전체 사용량을 단순 인구수로 나눈 값이지만, 산업용이 포함됐다고 감안하더라도 세계 3위 규모는 인구수와 경제 규모를 생각했을 때 사용량이 상당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국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이 많은 것은 단연 산업 부문의 전력소비 가운데서도, 전력 다(多)소비 업종인 제조업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기를 포함한 전체 에너지 소비의 62%를 산업 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산업 부문 에너지 소비의 약 90%를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제조업 가운데 약 80%는 철강·석화·정유 등 다소비 업종이 자리 잡고 있다.
전기만 놓고 봤을 때도 지난해 산업 부문 비중은 전체 사용량의 55%로 압도적이었으며, 나머지 일반용(공공, 영업용) 22%, 주택용 15%, 농사용 4%, 심야 2%, 교육용 1%, 가로등 1%순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전기 요금이 낮다 보니 전기 사용에 대한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 활동에 투입된 전력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전력소비 원단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전력소비 원단위는 2020년 기준 1달러당 0.359㎾h로, 일본(0.234㎾h), 미국(0.219㎾h), 프랑스(0.219㎾h) 독일(0.168㎾h), 영국(0.108㎾h) 등 주요국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우리나라가 1달러짜리 상품·서비스를 생산할 때 전력이 0.359㎾h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같은 조건의 다른 주요 국가들보다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는 의미다. 독일과 단순 비교했을 때 1달러짜리 상품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2배 이상의 전력을 쓰는 셈이다.
소매점 등에서 사용하는 일반용(영업용) 전기의 경우, 여름마다 주요 상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른바 '개문냉방'이 대표적인 다소비·비효율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현재의 다소비·저효율 국가의 오명을 벗기 위해 경제 활동에 투입된 에너지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에너지 원단위' 지표를 오는 2027년까지 25% 개선해 G7 국가 평균 수준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목표대로면 향후 5년 동안 2200만TOE(석유환산톤)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데, 이는 서울시의 약 6년 치 전력 사용량에 맞먹는 규모다. 특히 산업 부문은 연간 20만 TOE 이상 다소비 기업 30곳을 대상으로 에너지 효율 혁신을 이끌 계획이다.
이와 함께 '원가주의'에 입각한 수요 효율화 정책을 추진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이는 전기요금의 '공공성'보다는 '시장성'을 강조한 것으로, 그동안 값싼 전기의 공급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연료비 원가 등을 반영한 경쟁 시장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의미다.
낮은 전기요금으로 혜택을 주는 것보다 경쟁 시장에 맡겨 전기요금을 올라가더라도 수요 관리나 간접 지원을 통해 요금 부담을 전반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전기요금을 통해 자꾸 예외를 인정하기보다는, 전기요금 인하가 아니라 에너지 효율을 높여 덜 쓰게 만들어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게 만드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요금 인상에 앞서 당장 한계에 몰려있는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지원책 마련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은 나오지만, 전문가들도 대체로 전쟁과 고유가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정상화 등 효율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우리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에너지 다소비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G5국가의 2배 정도 된다"면서 "효율도 낮지만 산업 구조 자체가 다소비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서비스업, 정보통신(IT) 분야 등을 육성해 산업구조를 전환하고 전기 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가격이 낮으면 효율을 개선할 이유도 별로 없고 가격 기능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전기요금을 포함한 에너지 가격 정상화를 통해 소비자들이 수요를 합리적으로 하는 게 수요 효율화의 첫 번째"라며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기기·기술 개발도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sj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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