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신장 이식받은 美소녀와 감격 포옹"..한국도 '편지' 가능해진다

김성진 기자 2022. 7. 3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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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핀 꽃-장기기증]④연말부터 장기기증인 유족-이식인 편지 교환 가능..만남은 안 돼

[편집자주] 장기기증자 유족들은 창작곡 '선물'에서 세상 떠난 기증자를 '꽃'이라 불렀다. 꽃이 지는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누군가는 뇌출혈을 겪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 이들이 남긴 선물에 누군가는 새 생명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장기 기증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하루 평균 6.8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했다. 장기기증자 유족과 이식인에게 '장기기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었다.

2016년 1월21일 새벽 한시쯤 '카톡' 알림음이 연거푸 울렸다. 제주도에 사는 이선경씨(50)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유학 간 딸 김유나양(18) 카톡인 줄 알았다. 미국에 사는 형부였다. '무슨 일이에요' 묻자 형부는 "놀라지 말고 잘 들어요"라 했다. 이어 "유나가 사고가 났는데 깨어나질 않아요"라고 했다.
말기 암 외할머니 밤새 돌보던 소녀...6명에게 새생명 선물
김유나양(당시 18)이 사고당하기 1년 전인 2015년 8월 어머니 이선경씨를 뒤에서 껴안고 제주도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를 걷고 있다. /사진제공=이선경씨.
이씨가 봐도 예쁜 아이였다. '승무원하면 잘하겠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고 했다. 미국 친구도 곧잘 사귀었다. 2014년 유학 간 후 이듬해 생일 친구들이 학교 복도에 모여 'Happy Birthday to You(생일 축하해)'를 불러줬다고 한다.

그런 유나는 현지시각 오전 9시쯤 외사촌 차를 타고 등교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앞좌석에 탄 외사촌과 여동생은 목숨을 건졌다. 에어백 덕이었다. 뒷좌석에 탄 유나는 의식을 찾지 못하고 사고 3일 뒤 뇌사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남편과 바로 미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이씨는 '장기기증'을 생각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유나는 마음이 따뜻했다. 유나는 중학생 어린나이에 '내가 원하는 일'이라며 암 투병하는 외할머니를 밤새 간호했다고 한다. 봉사도 많이 했다. 대한적십자사 정기봉사도 했고, 호스피스에서 노인들 말동무도 여러번 돼 드렸다.

남편도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장기기증 수술은 반나절가량 진행됐다. 간 이식후보자 한명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다른 이식인을 고르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이때 이씨는 '기증을 괜히했나' 흔들렸다고 한다. 하지만 새 이식인이 2세 영아란 얘기를 듣고 생각이 다시 바뀌었다. 이씨는 "'어린아이에게 이식돼 더 오래 살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심장 이식받은 미국인이 보낸 곰인형...유나 심장소리가 녹음돼 있었다
미국인 킴벌리씨는 김유나양의 왼쪽 신창과 췌장을 이식받았다. 이식받을 당시 킴벌리씨와 유나양 모두 18세 동갑이었다고 한다. 킴벌리씨는 미국 돌아간 후에도 SNS로 이씨와 연락한다고 한다. 종종 "Hi Mom"(안녕 엄마)라며 안부를 묻는다고 한다. 킴벌리씨가 2020년 한국에 왔을 때 이선경씨(왼쪽)이 한국을 킴벌리씨가 미국 애리조나주를 가리키는 모습./사진제공=이선경씨
귀국 후 한달쯤 지났을 때 미국 시민단체 '도너 네트워크'가 유나 장기는 6명, 피부는 20명에게 기증됐다고 알려왔다. 폐는 68세 남성, 오른쪽 신장은 12세 소년, 각막은 77세 남성에게 기증됐다고 소개했다.

이씨는 도너 네트워크를 통해 이식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씨는 "혹여나 그들이 부담을 느낄까 걱정했다"면서도 "딸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이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기우였다. 이식인들은 유나 가족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33세 외과의사 마리아씨가 심장을 이식받았다. 그는 일란성 쌍둥이였는데 언니와 같은 심장병을 앓았다. 언니는 세상을 먼저 떠났다. 마리아는 이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나는 내 언니 심장까지 살린 것"이라고 했다. 곰인형에 자기 심장소리를 녹음해 보냈다고 한다.

왼쪽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은 킴벌리씨는 2020년 한국에 왔다. 이씨와 남편은 킴벌리씨 보고 두 팔 벌려 껴안았다. 이씨는 "(한국 온 것이)고마워 눈물만 나왔다"며 "유나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올해 12월부터 한국도 편지 교환 가능...점차 교류 늘려야
지금까지 한국은 장기기증인 유족과 이식인 사이 어떤 교류도 허용하지 않았다. 금전·만남 요구 등 혹시 모를 불미스런 일을 막으려 '비밀 유지 의무'를 뒀기 때문이다.

오는 12월부터는 법이 바뀌어서 양측이 동의하면 편지는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주무관처인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 개인정보나 무리한 요구는 없는지 편지를 하나씩 확인할 계획이다.

이런 교류는 미국과 비교하면 제한적이다. 미국은 편지를 교류하다가 양측이 원하면 만남까지 허용한다. 유족이 심장 이식인을 만나 청진기로 심장소리를 듣는 것은 예삿일이다. 아들 폐 이식인을 만나러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거나, 아버지 심장을 이식받은 남성과 결혼식 버진로드를 걷는 신부도 있다.

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는 "교류가 길어지고 상호 동의하면 미국처럼 서로 만남도 허용하는 방안을 장기 검토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만남 허용을) 아직 검토 중인 사안은 아니다"라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서신 교환을 시작하는 단계"라며 "제도가 정착하고 만남도 허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방향으로 검토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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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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