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간 '닭 싸움'..닭고깃값 담합 논란 진실은? [생생유통]

송경은 2022. 7. 3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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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의 하림 익산공장 내 육가공 시설. [사진 제공 = 하림]
[생생유통] 닭고기 가격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한국육계협회가 이달 초 공정위를 상대로 제재 취소 등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육계협회의 과징금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고 이에 반발한 공정위가 법원에 재항고하면서 또다시 담합 진위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단 법원은 시정명령 등 취소 본안사건의 위법성이 판단되기 전까지는 공정위의 과징금 효력이 정지돼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공정위는 담합 사실이 이미 조사 결과에서 명백히 밝혀진 사건이기 때문에 공정위 제재에 대한 집행정지는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공정위는 지난 4월 육계·삼계·종계의 판매가·생산량·출고량 등을 인위적으로 결정한 한국육계협회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2억100만원(잠정)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앞서 3월에는 공정위가 닭고기 업체 16곳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1758억2300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가 하림, 올품, 한강식품, 동우팜투테이블, 체리부로, 마니커(이지홀딩스) 등 닭고기 업체 6곳과 한국육계협회를 담합으로 인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육계협회는 닭고기 생산량 축소나 가격 인상 등에 대한 업체 간 합의는 축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농림축산식품부의 행정지도 아래 이뤄졌고, 따라서 공정거래법 제19조에 의해 금지된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농식품부와의 합의 아래 이뤄진 수급 조절 행위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농식품부는 수급 불균형 대응과 시장 안정을 위해 축산물 수급 조절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축산물은 보관 가능 기간이 짧고 시장 수요 대비 생산량이 지나치게 많으면 가격 급락이나 폐기 등 농가에 피해를 야기할 수 있으며, 반대로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하면 가격이 급등하는 등 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는 축산물 수급조절협의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지난해 3월 축산법 개정 시행을 통해 각 축산단체에 소속돼 있던 수급조절협의회를 농식품부로 이관해 일원화했다. 농식품부 장관 자문기구로 법적 지위를 부여해 관련 정책이 신속하게 이행될 수 있도록 실효성을 높인 것이다.

축산물의 수급 상황 조사·분석, 수급안정대책 등을 논의하는 축산물 수급조절협의회는 가축의 종류별 소위원회를 한육우, 돼지, 육계, 산란계, 오리로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협의회 위원은 농식품부 소속 4급 이상 관계 공무원, 생산업체들과 축산단체 대표, 농업경제지주회사의 집행간부, 축산물품질평가원장, 학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육계협회의 이 같은 주장에 농식품부 관계자는 "담합 의혹 중 농식품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수급 조절 건에 대해서는 이미 공정위에 충분히 소명해 조사 결과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즉, 농식품부 장관의 생산조정·출하조절 명령과 무관하게 이뤄진 업체 간 비공식적 합의 행위에 한해 공정위가 담합으로 판단한 것으로 봤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육계 수급조절협의회는 1년에 1~2회 닭고기 수급이 불안정하거나 불안정할 것으로 예측될 때 개최되고 여기에는 농식품부 공무원도 참석한다. 하지만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급조절협의회를 소집하지 않은 시점에도 협의회 소속 업체 대표들이 수십 차례 비공식적으로 모여 가격 인상 등을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농식품부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 결과 중에는 업체들이 뒤에서 담합을 해놓고 마치 그런 의사결정이 공식적인 수급조절협의회에서 이뤄진 것처럼 이용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공정위가 확보한 A사 내부 문건에는 합의 목적의 '경영악화 타파를 위한 이익률 개선'이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업계는 정부가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하는 목적에는 물가 안정뿐만 아니라 축산 농가의 안정적인 수익 보장이 포함돼 있고, 모든 업체 간 합의는 농식품부의 수급 안정 정책에 맞춰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담합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인데 실제로 부당 이익을 취득한 업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는 농식품부도 공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식품부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담합 사건으로 폭리를 취한 업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육계협회에 따르면 최근 10년(2011~2020년)간 회원사 13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0.3%에 불과하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상장사 4곳은 이익률이 이보다 더 낮은 0.0002%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축산업계는 축산물 수급조절협의회의 의사결정 행위가 필연적으로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축산법이 개정돼 법적 지위를 갖추게 됐지만 여전히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법령에는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축산업계 관계자는 "수급조절협의회를 통해 의사결정을 거치더라도 공정위에서 담합 의혹을 받는 일이 축산업계 전반에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축산법 개정 당시 농식품부는 "축산물 수급조절협의회를 통해 축산물 수급·가격 상황을 판단하고 생산자의 자율적인 수급 조절을 추진함으로써 축산물 수급 안정과 사육 농가 보호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축산법이 말하는 '생산자의 자율적인 수급 조절'과 담합을 구분 짓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실제로 담합 의혹을 둘러싼 공정위와 축산업계 간 진실 공방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공정위는 2019년 종계, 지난해 삼계, 올해 육계와 토종닭 업계의 수급 조절을 담합으로 판결한 데 이어 지난달 오리 업계에도 같은 혐의를 적용하며 제재를 가한 바 있다.

비슷한 가격담합 혐의로 공정위에서 제재를 받았던 팜스코, 하림홀딩스 등 배합사료업체들은 지난 7년간 법적 공방 끝에 올해 5월 담합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공정위가 업체 간 가격담합을 이유로 배합사료업체에 부과한 과징금 처분을 취소하라는 고등법원 원심을 유지하며 공정위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하지만 축산 업계는 이 같은 끊임없는 법정 다툼에서 승소하더라도 그 기간에 생긴 영업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호소한다. 한 가금업계 관계자는 "담합을 통해 부당 이득을 취한 일부 업체는 마땅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라면서도 "축산업계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농식품부와 공정위가 함께 큰 틀에서 담합 행위와 수급 조절 행위 간 경계를 명확히 하는 등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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