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죽지 말자..불운은 행운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빚과 빛
하루 3천원으로 버틴 건 꿈 때문
카드빚에 치 떨릴 만큼 시달려
고꾸라지다가 행운 찾아오기도
작은 빛 앞에 모여 '꿈'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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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반의 일이다. 내 삶의 여러가지 전환을 결정하고 집을 나왔다. 내 현실은 오직 꿈뿐이었다. 비로소 나 자신으로 살 수 있으리란 꿈. ‘꿈’이라니 참으로 낡고 낡은 말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마저 가질 수 없던 삶이라 꿈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돈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때 나의 현실은 최악이었을 것이다. 수저를 따지는 건 고사하고, 끼니조차 세어가며 해결해야 했다. 월세와 고정비를 내고 나면, 10만원 남짓 남는 돈으로 한달을 살아야 했다. 하루에 3천원씩 쓰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우고도 살아진 것은, 그 낡고 낡은 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3천원의 삶, 신용카드
지원이나 지지조차 바랄 수 없는 흙수저 가계의 트랜스젠더라면 누구든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언젠가 수술을 받을 것이고 치료를 시작할 것이란 믿음으로, 통장의 숫자를 쪼개는 것. 누군가의 기준으로는 퇴행적이고 어리석다고 폄하되겠지만, 이성애 사회 속 청년 성소수자의 꿈은, 더 먼 곳에서 더 깊은 곳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을 나와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대학교 어학실 조교가 된 덕분에 처음으로 신용카드란 걸 갖게 되었다. 돈이 없는 줄 알았는데, 신용카드를 갖고 보니 지갑은 두툼했다. 돈을 번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잃을 예정뿐인데, 마음이 든든했다. 기분이 좋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판에 숫자를 찍는 대로 돈이 쏟아졌다. 그래 봐야 몇만원, 몇십만원이었겠지만, 3천원으로 하루를 세던 삶은 손쉽게 무색해지고 말았다. 이십대 초반의 나는 빚의 개념도 이자의 개념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돈을 가져본 적 없었으니 돈 개념도 따질 줄 몰랐다. 현금지급기에게는 돈 좀 빌려줄 수 있느냐고, 면구스러운 말을 건넬 필요가 없었다. 숫자만 찍으면 됐다.
25%에 육박하던 현금 서비스 이자가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먹고사는 일에 쫓기는 다급함보다 더 절박한 건 없었다. 현재는 언제나 미래보다 힘이 셌다. 도무지 이겨낼 방법이 없었다. 이미 나는 3천원으로 하루를 사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제 3천원이 아니라 30원으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긴박한 순간이었는데, ‘현재’라는 핑계가 꼼짝 않고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런 달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더 최악으로 내몰리는 ‘현재’가.
결국 조교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 나는 저녁에 투잡을 뛰고서 겨우 연체금을 틀어막을 수 있었다. 나날이 불어나는 이자와 원금을 조금씩 틀어막고 버티며 몇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카드 한장의 중독으로부터 벗어났다. 얼마나 치 떨리게 시달렸는지, 그 은행 계좌까지 지워버렸다.
그 이후 나는 ‘균형’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사람의 삶에 균형이 필요한 것처럼, 내가 벌고 쓰는 돈에도 균형이 있어야 했다. 타인의 기준으로 계산하고 가늠하는 균형이 아니라, 내가 세운 내 기준으로 가늠해야 할 균형이.
내 삶에 주어진 적지 않은 것들을 해결했지만, 돈 문제는 여전히 해결이 쉽지 않다. 돈 버는 공부도 배움이라는데, 돈을 잘 쓰는 공부가 오히려 더 큰 배움이 아닐까, 나는 아직도 갸웃거려진다. 내 삶에 가장 절실한 돈은 치료비였고 수술비였다. 치료비는 내 힘으로 마련했지만, 결국 수술비는 그러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수술을 포기한 것에 가까웠다. 당시 몇천만원의 돈은 가난한 청년이었던 나에게 너무 큰 돈이었다. 그 돈을 들여 내가 찾은 행복이 몇년을 쏟아부은 노동의 값어치를 할까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쪼들린 삶은 아무리 고개를 들어 앞을 보려 해도 보기 쉽지 않다. 물론 지금의 이 온전함을 선명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면 충분한 값어치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돈의 투자처럼 삶의 투자 역시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사회적인 억압과 어리석은 자학으로 스스로 짓누르고 짓눌린 삶은 고개를 드는 일조차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누구의 삶도 고꾸라지기만 하라는 법은 없는 건지,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고, 그렇게 수술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는 그 행운을 지금도 잊지 않으려 애쓴다. 그 행운은 돈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하고, 관계이기도 했다. 돈은 배움이나 계산으로 그 순간 쌓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돈이 실제적 삶의 행복이나 즐거움이 되는 건 다른 문제가 아닐까? 통장 속 비현실적인 금액의 숫자가 영원한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단 걸 생각하면, 우리가 떠올려야 하는 생의 풍요로움은 돈이 아니라 돈 너머일 것이다.
삶은 길고, 행운은 촘촘하다
누군가의 쌓인 돈은 부러움의 대상일 필요도 없고, 생의 절멸을 판단할 기준도 될 리 없다.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한 사람의 삶을 예측하거나 가늠하지 못한다. 삶은 생각보다 길고, 행운은 훨씬 더 촘촘하게 박혀 있다. 돈이란 여기 이 시대, 이 사회의 기준일 뿐, 내 삶은 내 몸 안에 단단히 박혀 있다. 손실이 날 수 없는 이득이다. 그 몸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둘 셋 혹은 넷이라면, 이득은 두배 세배 혹은 네댓 배가 될지도 모른다.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행운은 불운의 그림자이기도 하고, 불운은 행운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니 돈 때문에 죽지 말자. 돈 때문에 죽이고 죽는 짓은 제발 그만하기로 하자. 죽은 당신들, 그 어린 삶들, 너무 아깝다.
긴축의 시대가 가진 경제적 함의를 가늠할 지식이 나에겐 없다. 다만 돈을 매개로 순환하는 사회이니 돈의 긴축은 곧 사람살이의 오그라듦이고 물러남일 것이다. 그때처럼 하루 끼니를 3천원으로 나눌 정도는 아니겠지만, 우리의 삶은 곳곳에서 소외를 겪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것이다.
머리 위를 밝히던 불이 꺼지고 갑자기 정전이 되었을 때, 세상이 온통 캄캄한 어둠에 빨려들어가고 말았을 때, 어릴 적 한집에 사는 우리는 모두 한방에 모이곤 했다. 촛불 하나를 켜고 그 앞에 모여 앉는다. 별일 아닐 거라고, 곧 지나갈 거라고, 서로에게 억지웃음을 보여준다. 뻔하디뻔한 위로를, 낡고 낡은 꿈의 말들을 서로에게 건네며 그 시간을 버틴다. 지금 당신의 사회적 이름이 무엇이든, 어떤 빚을 지고 또 어떤 고난에 울고 있든, 아주 작고 사소한 빛을 찾아 그 앞에 모여 앉아야 한다. 힘없이 흔들리며 우리를 지켜왔던 공존의 불을 들어 올려, 내 앞을 밝힐 차례다.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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