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바닥 기는 윤 대통령, 만회할 기회 있어"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2022. 7. 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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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집권 초 위기 탈출법
김대중 대통령, 반대 진영 사람 통합형 인사로 국민 마음 결집
노태우 대통령, 여소야대 한계를 3당 합당·북방정책으로 돌파

(시사저널=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어차피 맞을 매는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우리 속담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미국 에머리대학 연구팀의 전기충격 실험에 의하면, 엉겹결에 먼저 매를 맞으면 고통을 덜 느끼고, 나중에 맞은 사람보다 반성을 더 많이 한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놀란 사람'이 '아픈 사람'보다 더 많이 반성한다는 심리이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겨우 두 달이 지난 7월말 지지율이 30%대 초반까지 떨어져 '깜짝' 놀랐다면, 앞으로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골치 아픈 이준석 파동과 윤핵관 문제, 경란(警亂)과 인사 논란…. 그 해답의 실마리를 역대 대통령의 집권 초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집권 초 핵폭탄급 위기를 맞은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1997년 12월 대선에 이어 2월 취임식을 갖기도 전에 IMF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국난이 덮쳤다. 그는 열정, 통합, 민심이라는 '삼지창'으로 맞섰다. 당시 75세의 노구에도 온 밤을 지새우며 애쓰는 모습에 여야, 보수·진보 할 것 없이 감동했다. DJP연합의 약속대로 3공 출신 김종필 총리 체제를 출범시켰고, 6공화국 출신 김중권 전 정무수석을 첫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경제 상황보다 경제심리가 더 중요하다'는 미국 루스벨트 모델을 벤치마킹해 '금 모으기 운동' '국민과의 대화'로 국론을 결집시켰다. 덕분에 취임 100일 때 62% 지지율을 기록했다. 김 전 대통령이 유난히 실용주의를 강조했던 점도 윤석열 대통령이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위기를 맞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은 취임식 때의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부터)ⓒ연합뉴스·사진공통취재단

이명박, 박근혜 등 여권내 불화가 위기 시작

취임 초부터 '지지율 폭락 위기'에 직면한 사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2008년 12월 대선을 불과 이틀 앞두고 BBK 특검이 통과돼 취임 직전까지 특검 조사를 받아 도덕성에 타격을 입었다. 그의 첫 인사는 '고소영 내각' '강부자 인사'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취임 한 달 후인 3월23일엔 총선 공천 파동이 절정에 달해 박근혜 전 대표는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명언을 남겼다. 결국 취임 때 50%대였던 지지율은 100일 만에 21%까지 떨어졌다. 6월 광우병 사태 때는 10%대까지 추락했다. 아마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큰 폭으로 지지율이 내려간 진기록일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6월18일 대국민 사과 성명을 내고 '더 낮은 자세' '자책' '송구' '뼈저린 반성' 등의 표현을 총동원하면서 한반도 대운하 공약의 사실상 철회, 청와대 개편 등을 약속했다. 정두언 의원 등이 '권력 사유화'라며 청와대 참모진의 경질을 주장해 류우익 비서실장과 박영준 비서관이 물러났다. 놀란 이 전 대통령은 화법부터 바꿨다.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해도 안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말했던 것을 "미국산 쇠고기가 문제가 있다면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낮추었다. 적대시했던 비주류의 수장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무조건 밀어붙였던 '불도저'가 신중하게 서행하는 '컴도저'(컴퓨터+불도저)로 변하면서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이재오 전 의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10%대 지지율을 50%대까지 올리는 데 1년이나 걸렸다"면서 "그 비결은 중도 실용노선+친서민 행보+통합 내각이었다"고 밝혔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 이명박의 사람들이 꽤 있으니 생생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후임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취임 직후부터 인사 실패-국정 지지도 하락-여권 내부 반발의 3중고에 시달리며 취임 첫 주 지지율이 41%까지 내려갔다. 취임 뒤 한 달 동안 대통령이 지명한 6명의 고위 공직자가 연달아 낙마하는 최악의 인사 대란이 일어났다. '청와대 참모 인책론'과 '창조경제 불가론'이 여권 내부에 퍼져 당·청 갈등도 극에 달했다. '잔인한 3월'을 보낸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운영 스타일을 대폭 바꿨다. 즉, 당·정·청 협의 정례화, 고위공직자 검증 강화, 민생행보, 소통 활성화로 취임 100일 때는 53%까지 올라갔다. 

6공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사면초가에 몰렸다. 5공 전두환 친위세력들이 여전히 권부에 포진하고 있었고, 야당은 연일 5공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면서 88년 2월 취임 첫 달 지지율이 29%까지 추락했다. 취임 100일 때는 50%대로 회복했다. 노 전 대통령은 특유의 아웃복서 스타일로 한 득점씩 쌓아올렸다. 예컨대, 야당의 요구대로 5공 청문회를 열어줘 난타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방정책을 입체적으로 추진해 성공시켰다. '정치가 막히면 정책으로 뚫어라'라는 제왕학을 윤석열 정부가 되새겨보기 바란다.

노무현, 벼랑 끝에 몰리자 새 집권당 창당 승부수

요즘 윤석열 정부가 처한 상황과 가장 유사한 것은 노무현 정부일 것이다. 아마추어 논란, 설화, 코드인사, 파격 법무장관, 검사들의 반발 등 온갖 악재가 겹쳐 취임 100일 때 40%까지 내려갔다. 노 전 대통령이 변하지 않자 취임 6개월 때엔 30%대까지 추락했다. 당 안팎에서 "청와대에서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원성이 자자해지자 당시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이 자진 사퇴했다. 벼랑 끝에 몰린 노 전 대통령이 던진 승부수는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 창당이었다. 기존의 정치판을 송두리째 뒤흔든 극약 처방이었다. 다음 해 3월 탄핵 정국 때는 지지율이 20%대까지 급락했지만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극적으로 부활했다. 이후 자신감도 생기고 국정운영 스타일도 달라진 그는 진보 일변도에서 진보-보수 병행을 시도하면서 돌파구를 열어갔다.

8월초 여름휴가에 들어가는 윤석열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의 위기 극복 패턴에서 무언가 배울 수 있길 바란다. 필자 생각엔 다음의 다섯 가지가 일단 해결의 단서가 되지 않을까 한다. ①국정운영 스타일을 과감하게 바꿔라 ② 국민 통합형 인사를 하라 ③여권 내 권력투쟁을 차단하라 ④민생정책에 집중하라 ⑤소통은 많을수록 좋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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