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기대 스리랑카를 망친 라자팍사 형제

신헌철 2022. 7. 3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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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IMF와 공식 협상 시작"
국가부도 처하자 IMF 구제금융 신청
중국 일대일로 참여로 부채 급증해
라자팍사 족벌통치 속 소수민족 탄압
경제 무너지자 성난 시위대에 쫓겨나
신임 총리도 前정권 출신..국민 분노

"시청자 여러분, 정부가 결국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경제우등생 한국의 신화를 뒤로 한 채 사실상의 국가부도를 인정하고, 국제 기관의 품 안에서 회생을 도모해야 하는 뼈 아픈 처지가 된 겁니다." (1997년 11월 21일 MBC 뉴스데스크 이인용 앵커)

한국이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총재가 직접 내한했고 그해 12월 3일 550억달러 규모의 지원이 확정됐다. IMF가 210억달러, 세계은행이 100억달러, 아시아개발은행이 40억달러 등 국제기구에서 직접 받는 돈만 350억달러에 달했다. 당시 한국의 3개월 미만 단기외채는 250억 달러에 이르는 반면, 외환 보유고는 120억 달러에 그쳤다. 한국은 4년 뒤인 2001년 8월 IMF 차입금 잔액을 모두 상환하면서 예정보다 3년 일찍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벌써 25년 전의 '추억'이 됐지만 국가부도의 충격은 뇌리에 생생하다. 오래 전 외환위기를 떠올린 것은 국가부도 상태에 빠져 있는 스리랑카가 IMF와 공식 협상을 시작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스리랑카 재무부는 지난 29일(현지시간) IMF와 구제금융 조건을 협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앞서 스리랑카는 만기가 도래한 120억달러(약 15조6000억원)의 외채를 갚지 못할 지경이 되자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전체 대외 채무는 510억달러(약 66조원)에 이른다. 스리랑카 중앙은행에 따르면 외환보유액은 상반기 말 기준으로 18억5000만달러(약 2조4000억원)에 그친다.

한때 '동양의 진주'이자 '남아시아의 대표적 신흥국'이라고 불렸던 스리랑카는 왜 이 지경이 됐나.

남아시아에 위치한 섬나라 스리랑카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8년 영국에서 독립했다. 영토는 한국(남한 기준)의 65% 정도이고 인구는 2100만명 가량 된다. 기원전 4세기부터 고대 왕국에 세워진 유구한 역사가 있으나 16세기 이후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영국 자치령으로 있다가 1972년 지금의 정부 형태를 갖춰 완전히 독립했다.

스리랑카를 족벌정치로 망친 마힌다 라자팍사 전 총리(왼쪽)와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오른쪽) 형제.
문제는 독재와 내전 등 정치적 불안이었다. 인구 측면에서 주류인 싱할라족은 불교, 비주류인 타밀족은 힌두교다. 인권단체들은 내전 기간에 정부군이 4만명 이상의 타밀족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2009년에 타밀 반군이 항복했고 2010~2012년 무렵엔 한때 연간 8~9%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한때 인도네시아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부터 다시 경제가 악화되기 시작했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직격탄이 됐다. 경제의 핵심인 관광산업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가 감세 정책을 펼쳤던 바람에 국가 재정도 바닥이 났다.

라자팍사 정권이 철저하게 친중국 정책을 펼치며 일대일로 정책에 '올인'하며 대외부채를 늘린 것도 결국 발목을 잡았다. 스리랑카가 외국에서 빌린 돈의 26%가 바로 중국에서 나왔다.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에 드는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중국에서 막대한 차관을 가져왔다가 갚지 못하자 중국 돈으로 지은 항구를 99년간 내어주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이를 두고 미국의 빌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스리랑카가 중국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 4월 라자팍사 정권은 국가 부도를 선언했다. 실권자인 총리는 마힌다 라자팍사다. 마힌다는 2005년 이후 두차례 대통령을 지낸 뒤 개헌까지 해서 3선에 도전했으나 2015년 패했다. 잠시 야권에 밀려났으나 2019년 대선에서 자신의 동생을 대선에 '대리 출마'시켰다. 현재 대통령인 고타바야 라자팍사는 바로 마힌다의 동생이다. 그리고 본인은 다시 총리직을 맡았다.

라자팍사 가문은 족벌주의에다 소수민족에 대한 강압적 통제를 통해 국가를 지배했다. 외교적으로는 중국에 밀착했다. 라자팍사 가문의 독재를 무너뜨린 것은 결국 경제였다.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는 결국 퇴진 압박에 못견디고 지난 5월 9일 사임했다. 버티던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도 결국 시위대에 쫓겨 몰디브를 거쳐 싱가포르로 도망쳤다.

의회에서 뽑힌 라닐 위크레마싱헤 신임 총리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실상 '계엄'을 실시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 역시 전 정권에서 여러번 총리를 지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서둘러 직접선거로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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