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서 '중국몽'과 '중국위협론' 충돌..우리도 끌려들어가나
대만해협 위기와 한반도
미-중 '핫스폿' 떠오른 대만해협
펠로시, 대만 방문 놓고 또 충돌
정해진 미래 없이 일단 좌시할 듯
평화 향한 '게임 룰' 만들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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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길윤형 <한겨레> 기자와 성균중국연구소의 장영희 박사와 함께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 남북한은 동맹의 체인에 연루될 것인가>라는 책을 냈다. 대만이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의 ‘핫스폿’으로 부상하고 있고, 자칫 대만해협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남북한도 여기에 연루될 위험이 크다는 문제의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픈 마음을 담았다.
공교롭게도 책이 나온 직후에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의 치열하고도 위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의회 대표단을 이끌고 대만을 방문할 계획을 밝힌 것이 발단이 되었다. 중국 외교부는 방문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펠로시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대만 국방부는 “반드시 강력한 조처를 취해 외부 세력 간섭 및 대만 분열 시도를 좌절시키겠다”며 군사적 대응을 시사했다. 미국 국방부도 맞대응을 경고하고 있다. 함정과 군항기 등을 대만 인근에 투입해 펠로시 일행의 안전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8일에 있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전화통화도 양측의 이견과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만 미래가 미·중 성패 좌우할 수도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둘러싼 논란은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의 다차원적인 갈등 구조를 보여주는 프리즘이다. 먼저 양국의 국내 정치와의 관계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펠로시가 방문 계획을 철회하면 상·하원 석권을 노리는 공화당에는 크나큰 정치적 선물이 될 것이다. 거꾸로 올가을 세번째 임기 결정을 앞둔 시진핑 주석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막지 못하면 자신의 리더십에 큰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대만의 차이잉원 정권은 사실상의 독립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움직임을 좌시하면 대만 통일이 물 건너갈 것으로 보고는 대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미국의 선택이 매우 중요해진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의 독립도 불허하고 ‘대만 관계법’에 따라 중국의 무력 통일 시도도 막겠다는 ‘이중 억제’를 추구했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대만을 사실상의 주권국가로 대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나온 펠로시의 대만 방문 계획이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는 미국-중국-대만의 삼각관계에 기름을 붓고 있는 셈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대만의 미래는 미-중 전략 경쟁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라고 할 수 있다. 대만은 ‘불침항모’로 불릴 정도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세계 최대 물동량 지역인 인도·태평양 해상 수송로의 중간에 위치한 지경학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세계 20위 정도의 경제력, 특히 미-중 기술 경쟁의 대표적인 품목인 반도체 선진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경제적 저력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이 오늘날의 세계 질서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내세우면서 중국은 대표적인 권위주의 국가로, 대만은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 거론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처럼 대만 문제는 지정학, 지경학, 첨단기술, 이념과 가치 등 다방면에 걸친 미-중 전략 경쟁의 정중앙에 포진해 있다. 어떠한 형태로든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면 미국을 더욱 빠르게 추격하거나 추월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중국도 이러한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2049년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려는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만 통일이 필수라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위협론’을 세계화하면서 대만 문제를 활용해 중국을 견제·봉쇄하려는 전략에 몰두하는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대만의 미래가 미-중 전략 경쟁의 가장 중요한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는 만큼, 중국몽을 꺾기 위해서는 양안의 현상유지가 필수라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대만이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이럴 경우 중국이 대만을 무력 공격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수의 대만인이 바라는 것은 사실상의 주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지 전쟁을 불러올 독립 선언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상유지를 핵심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미국이 대만의 독립 선언을 부추기거나 이를 인정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 거꾸로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지도 않았는데, 중국이 무력 통일을 시도할 가능성도 당분간은 없어 보인다. 전쟁이 ‘정해진 미래’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회색지대’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색지대는 대만의 독특한 지위에서 비롯된다. 대만은 유엔 회원국도 아니고 대만과 수교를 맺고 있는 국가들도 14개에 불과하다. 미국과 미국의 모든 동맹국도 대만이 아닌 중국과 수교를 맺고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이 그만큼 보편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대만은 사실상의 주권국가의 지위를 추구하고 있고 미국과 일부 동맹국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강해질수록 평화통일 가능성도 위축되게 된다. 이는 중국이 2005년에 제정한 ‘반분열국가법’과 충돌한다. 중국이 “비평화적 방식과 다른 필요한 조처”를 동원할 수 있는 조건 가운데 하나로 “평화통일의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할 경우”를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쓰지 않는 ‘화약고’도 안전치 않아
대만이 ‘동아시아의 화약고’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최근 우세한 흐름은 핵심적인 행위자들이 ‘군사력에 의한 억제’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서로가 총구를 겨누고 무기고에 화약을 쌓는 방식만으로는 평화를 확보할 수 없다. 오히려 대만의 독립 시도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키우고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대만과 그 우방국들의 우려도 키우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종된 대화와 협상을 복원하는 것이다. 한때 논의되었던 양안 평화협정을 다시 공론화할 필요도 있다.
앞서 소개한 책에는 대만해협 유사시가 우리에게도 결코 ‘바다 건너 불’이 아니고, 자칫 남북한이 동맹의 체인에 엮여 몽유병자처럼 전쟁에 끌려들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담았다. 동시에 우리도 대만해협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희망과 다짐도 담았다.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를 전공했다.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핵과 인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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