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좋아하듯 이상함도 존중하기를..로맨스까지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엔에이·ENA)가 ‘권모술수 권민우’라는 희대의 아이콘으로 차별과 공정을 다루느라, 중반 이후 드라마가 뜨거워졌다. 법리의 대결이 아닌 선악의 구도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초반에 시청자들이 빠진 극의 매력은 ‘착한 천재의 활약’이 아니었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색다른 접근을 펼치는데, 여기서 빚어지는 의외성과 아이러니, 그리고 변호사로서의 성장에 묘미가 있었다. 가령 승부욕 때문에 진실을 외면한 우영우(박은빈)가 결국 의뢰인에게 이용당하고 반성한다거나, 의뢰인을 위해 별별 논리를 다 펴면서도 눈앞의 감형 사유를 놓치고 판사에게 한 수 배우는 것 등 말이다.
우영우가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주목했던 드라마가 출생의 비밀에 치중하는 것도 다소 우려스럽다. 그나마 비밀이 빨리 밝혀지고, 모녀의 만남이 담백하게 그려진 건 칭찬할 만하다. 사실 드라마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은 우영우의 아버지다. 서울 법대생에게 쏠리는 집안의 기대를 저버리고 결혼이나 하라는 어머니의 오랜 만류도 뿌리친 채, 전공과 무관한 밥벌이를 하며 자폐인 딸을 키우는 미혼부를 상상한 적이 있던가. 어쩌면 이 이야기는 굴지의 두 로펌 대표가 여성이라는 설정이 품고 있는 ‘성차 뒤집기’의 무리한 연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자와 헤어지면서도 임신을 유지해 아이를 낳아 맡긴 태수미(진경)는 어떤 결단 혹은 타협을 한 것인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임신 후 남자가 떠나고 미혼모가 되는 이야기의 성차를 뒤집었을 때 벌어지는 틈새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은 이후 두 로펌의 대결에 뇌관처럼 쓰일 듯하다. 대왕고래와 새끼의 이야기가 복선처럼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영우가 너무 귀엽고 무해한데다 천재이기 때문에, 장애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심지어 시청자들이 능력주의에 경도되어 장애인을 갈라치기 할 수도 있음을 우려한다. 사실 우영우는 자폐 장애인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는 사람에 가깝다. 드라마가 주목하는 것도 ‘정상’과 ‘비정상’의 접점이다. 우영우의 천재성은 ‘그 정도 능력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라, ‘그 정도 능력이 있음에도 지금껏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성찰하는 지표다. 즉 우영우처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고 굉장한 능력을 지닌 사람‘조차도’ 자폐장애라는 이유로 배제되어왔음에 주목해야 한다.
시니어 변호사인 정명석(강기영)은 처음 우영우를 만났을 때 거부했다가, 함께 일해보고 곧 편견에서 벗어났다. 시청자도 우영우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매우 이상해 보였지만, 자꾸 보니 별로 이상하지 않고 능력과 개성에 더 눈이 가지 않던가. 이런 경험을 통해 장애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절대적인 낙인처럼 작용한다. 그러나 ‘이상함’의 스펙트럼을 넓혀서 보면 경계가 흐릿해진다. 회전문 통과가 어려운 것은 우영우만이 아니다. 그의 친구 동그라미(주현영)도 한 바퀴 더 돌았다. 고급 코스요리 대신 단품을 먹은 것은 우영우만이 아니다. 배가 아픈 최수연(하윤경)도 그랬다.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않은 것은 우영우만이 아니다. 명사를 자꾸 잊는 이장님도 그렇다. 뭔가에 꽂히는 ‘덕후’가 꼭 자폐인은 아니다. 꽂히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신을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 지칭하는 방구뽕(구교환)처럼 특별한 사상을 가진 사람도 있다.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우영우는 방구뽕에게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변호사였다. 그를 ‘망상장애 환자’로 방어하는 게 아니라, 그의 사상을 존중하며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는 우영우가 천재라서 가능했던 게 아니라 소수자여서 가능했던 일이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선은 의학적 기준이 아니라 사회적 기준이다. 장애와 비장애를 칼같이 나누지 않고 이상함을 폭넓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라면, 우영우의 장애는 더 이상 문제 되지 않는다.
드라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이 흔히 봉사나 착취로 오인되는 것을 지적하며 , 가장 예민한 지점으로 나아간다. 드라마는 초반에 우영우와 이준호(강태오)의 로맨스에 이성애 클리셰를 적극 활용했다. 비장애인의 로맨스와 다를 바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중반 이후 드라마는 서로를 깊이 배려하는 마음을 강조한다. 일방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사랑을 그리고자 함이다. 그런 사랑을 경험 중인 우영우는 지적 장애인에게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으며, 설령 상대가 ‘나쁜 남자’일지라도 스스로 감당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지적 장애인 딸을 지키려는 엄마의 목소리에도 동등한 무게를 싣는다.
장애를 둘러싼 여러 문제를 이 정도 깊이로 다룬 드라마가 있었던가. 부디 섬세함과 균형감이 종영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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