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변화를 만들 때, 지역 독립언론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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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기사가 변화를 만드는 경험을 한다.
다음 아이템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기 때문에 대체로 찰나의 감정이지만, 이 뿌듯함은 일의 원동력이 된다.
노동조합이 생긴 뒤 마음 편히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부터 10년을 근속한 직원이 경험한 체육대회, 사내 커플이 결혼한 사연까지.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쌓인 이야기는 그날 그곳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주목하지 않는 사건일수록 지역 독립언론이 할 역할이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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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기사가 변화를 만드는 경험을 한다. 다음 아이템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기 때문에 대체로 찰나의 감정이지만, 이 뿌듯함은 일의 원동력이 된다. 얼마 전에는 문 닫은 공장 입구의 태극기를 새것으로 갈았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경북 영천시에 있는 자동차 부품 회사 ‘다이셀세이프티시스템즈코리아(다이셀코리아)’는 2012년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기업(외투기업)이다. 10년간 공장 부지 1만2000평 무상임차, 법인세·소득세 면제 등의 혜택을 누리고 지난 5월 초 일방적으로 폐업을 통보했다. 다이셀코리아에 근무하던 노동자는 130여 명이다. 노동조합은 반발하며 기자회견과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영천시와 국회에 ‘고용 대책 마련’, ‘외투기업 먹튀 방지법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가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에 차를 얻어 탈 속셈으로 중앙지의 지역 주재기자 선배에게 연락을 했다. 선배는 “얘기(아이템)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흔한 사건이라는 뜻인지, 해고 노동자 규모가 작다는 뜻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기자회견 현장에는 기자 서넛이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영천에서는 나름 좋은 회사로 통했어요. 직원 수는 130여 명이지만, 그 가족까지 하면 400명이 넘는 영천시민의 생계가 달린 일이에요. 세금 들여 모셔올 땐 일본의 전범기업인 다이셀과 ‘다른 회사’라더니, 철수를 통보할 땐 ‘본사 결정’이라고 하더라고요.”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경주지부 다이셀지회장은 허탈한 듯 웃었다.
6월 초 철수를 앞두고 휴업 상태인 회사를 찾았다. 공장 바로 앞에는 노동조합에서 꾸린 천막이 있었다. 천막에서 만난 해고 노동자들은 영천 시내와도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온 기자는 처음이라며 비타500, 토마토, 김밥 같은 먹을 것을 자꾸 권했다.
천막을 등지고 공장을 바라본 채 지회장은 한참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동조합이 생긴 뒤 마음 편히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부터 10년을 근속한 직원이 경험한 체육대회, 사내 커플이 결혼한 사연까지….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쌓인 이야기는 그날 그곳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쌓여가는 외국인 투자기업의 ‘먹튀’ 사례들
다이셀코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산연, 한국게이츠 등 해결되지 않는 외투기업의 ‘먹튀’ 사례가 쌓인다. 다국적기업들은 노동력이 싼 국가로 계속해서 이동하고 남는 건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뿐이다. 인터뷰가 끝나고도 지회장은 10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공장 입구에 높이 걸린 꼬질꼬질 때 탄 태극기를 한참 바라봤다. 그 뒷모습을 기사 마지막 문장에 썼다.
며칠 뒤 지회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측이 기자님 기사를 읽고 태극기를 갈았습니다.” 곧 문 닫을 공장 앞에 태극기 하나 갈았다고 무언가 바뀔 리 없다. 다만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함께하고 있다는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아 뿌듯했다.
내가 몸담은 대구·경북 지역 독립언론 〈뉴스민〉은 2016년 성주 사드 배치 투쟁 초기부터 1년 넘게 성주군에 상주하며 사드 반대 촛불집회를 생중계했다. 성주군 주민들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기록도 남겼다. 〈뉴스민〉 저널리즘 원칙 중에는 ‘지역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와 함께 ‘지역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 기록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서울에서 주목하지 않는 사건일수록 지역 독립언론이 할 역할이 분명해진다.
김보현 (<뉴스민>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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