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고친다' 메스 든 尹정부..아파도 '정공법' 택했다
[편집자주] 출범 후 불과 80일을 넘긴 윤석열 정부 앞에 글로벌 복합 경제위기의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는 달콤한 '단기처방'을 거부한다. 나랏돈을 동원한 포퓰리즘 대신 규제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눈앞의 인기보다 국가의 미래를 앞세운 선택이다. 윤석열 정부가 사면초가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본다.
돈 잔치가 끝났다. 초저금리 속 넘치는 돈에 세계적 공급망 불안까지 겹쳐 물가가 뛴다. 이를 막으려 금리가 오른다. 국민들의 호주머니가 불안한데 인사 문제, 경찰국 신설, 여권 내 갈등 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지지율이 주저앉았다. 거대 야당은 '탄핵'이란 단어까지 꺼내며 출범 석 달도 안 된 새 정부를 흔든다. 윤석열 정부의 현주소다.
위기는 한참 전에 잉태됐다. 급증한 가계부채와 껑충 뛴 집값 등 전임 정부가 부풀려놓은 거품이 현 정부의 목을 옥죈다. 마지막 안전판인 재정은 그간 세금 퍼주기로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카드는 제한적이다. 국민들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게 단적인 예다. 탈원전 등 실패한 정책의 대가다.
단기간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근본적 해법이 필요한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 체질 개선을 천명했다. 정부 주도에서 민간 중심으로의 대전환이다. 이를 위해 재정 중독부터 끊어야 한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도 올려야 한다. 대신 규제개혁에 올인한다. 달콤한 포퓰리즘 정책, 즉 모르핀을 버리고 대수술에 들어가는 셈이다. 당분간 고통은 불가피하다.
지지율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모두에서 돈을 거둬들이는데 인기가 좋을 리 없다. 오늘날 택시 대란의 불씨를 낳은 과거 모빌리티 혁신의 실패에서 보듯 규제개혁에도 크고 작은 갈등이 따라온다. 미래세대까지 포괄하는 연금·노동·교육 개혁은 말할 필요도 없다.
새 정부도 고통만 요구할 순 없다. 대수술에 앞서 영양보충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경제팀이 첫번째로 던진 승부수가 감세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법인세와 소득세를 깎는 내용의 세제 개편안을 내놨다.
하지만 문제는 국회를 통과할 수 있느냐다. 법안 통과가 어려운 여소야대 정국도 새 정부의 최대 숙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살리기 과제에 부합하고 비정상적인 세금을 정상화하려는 세제 개편안을 내놨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공약을 이행하기 어려운 정치적 환경에서 여러 정책을 시행령 중심으로 추진하다 보니 국민 피부에 와닿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정부로선 스스로 개혁을 위한 국정동력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정치 지형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당장 지지율을 희생하더라도 사회적 문제의 근본 해결책을 추진할지가 계속 고민되는 지점"이라고 했다.
역설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 건 국민의 지지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민의 신뢰를 업을 경우 야권도 무작정 국정의 발목을 잡을 수만은 없다. 결국 당초 제시한 국정기조를 유지하면서 성과를 내는 게 현실적인 해법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국정은 항공모함처럼 거대해서 방향타를 돌리는 과정이 한 번에 이뤄질 수 없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적극적 소통을 통한 국민 설득이 필수다. 정부 주도 경제의 환상을 깨고 민간 주도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국민을 이해시키고 고통 분담을 설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도 새로운 국정 방향에 적응해야 하고 대통령도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올바른 정책을 꿋꿋하게 펴나가면 민심이 돌아온다고 본다"며 "지금은 과거 5년간 정부의 '보이는 손'이 작용해 (시장 등이)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하이에크가 말한 '치명적 자만'을 정상으로 돌리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세계 모든 국가들이 함께 겪고 있는 글로벌 위기는 우리만 피할 수는 없다"며 "그렇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조금만 더 잘 대응하면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두 달을 보면 저를 위시해 장·차관님들이 정치인보다 전문가들이 많다 보니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 이런 게 있었다."
지난 24일 새 정부 출범 후 취재진 앞에 처음 선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앞으로 정무감각을 갖고 언론·국회와 소통하겠다"면서 꺼낸 말이다. 숨가쁘게 70여일을 달려온 윤석열 정부의 자성이 담겼다.
새 정부는 위기 극복을 위해 단기 처방이 아닌 경제 체질의 근본을 민간 주도로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고통분담이 필수적인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 민심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민 설득 작업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해법은 민간 혁신…'정공법'으로 국가 방향타 돌린다
민간·시장 주도 성장, 노동·교육·연금제도 개혁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방향성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묵혀왔던 숙제다.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차질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합 위기 속에 출범했고 해법으로 정공법을 택했다. 세금 퍼주기 등으로 위기를 봉합해온 정책을 버리고 속도가 느리더라도 국가의 방향타를 돌리겠다는 목표다.
핵심은 '민간 주도' 성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재정 지출로 인한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해 민간·시장 주도로 경제 체제를 전환하고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민간의 혁신과 신사업을 가로막는 낡은 제도를 바꾸고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관행적 그림자 규제를 철폐하는 등 규제 개선이 대표 과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한다고 경제학 원론과 싸우고 원전을 폐쇄하고 태양광 발전 한다고 산을 깎았다"며 "윤석열 정부는 아직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획기적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방역한다고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QR코드를 찍게 하지 않고 자율에 맡기는 것,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국제질서에 편입되는 것, 6000개가 넘는 경제인 형벌조항을 개선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을 바로잡는 중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책'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문제는 긍정적 취지의 정책을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국정 동력에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출범 100일도 안 된 새 정부가 민심 이반 우려에 직면했다. 30% 초반대로 추락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특별한 정책 실정으로 인한 게 아니라는 측면에서 대통령실 참모들이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여전히 기본적 인식은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국민만 바라보고 일하겠다는 것이다. 이달 초 "지지율은 의미 없다"던 윤 대통령의 발언이 이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거대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심의 뒷받침이 없으면 개혁 과제를 추진하기 어렵다. 인기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고통스러운 체질 개선을 선택한 새 정부지만 역설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지세를 끌어내야만 이를 밀어붙일 수 있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연구위원은 "개혁은 늘 저항과 반발을 수반하며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하는 것"이라며 "문제는 현재의 지지율 하락이 개혁 드라이브를 걸다가 발생한 게 아니고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태도와 언행, 인사 문제 등에 기인했다는 점이다. 잔 파도에 멀미가 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사소한 논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전체 정책 방향의 취지까지 훼손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권이 초기에 견고한 지지세력을 만들지 못하면 장기 정책의 동력을 갖기 어렵다"며 "40% 콘크리트 지지층을 지닌 문재인을 제외한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두 임기 중 반대 세력에 의해 위기를 맞았다. 바이든 미 대통령도 야당의 반대에 맞서 정책을 펴기 위해 민심에 호소하는 게 현대 민주주의 대통령제의 현실"이라고 했다.
◆문제는 '정치'…합의 이끌어내는 설득 과정 절실
결국 관건은 정치다. 국회는 물론 국민을 상대로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고 반대편을 설득해내는 정치를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엘리트 관료 위주의 새 정부 내각과 참모진에서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재묵 교수는 "엘리트들은 민심이 등을 돌려도 자신의 옳음을 입증해 보이려고 하는데 의견이 다르면 왜 그럴까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윤 대통령은 시험을 쳐서 대통령이 된 게 아니라 선거를 통해 선출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윤 대통령이 적극적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대통령실 수석들이 언론과 접촉을 늘리고 있고 개별 장관들의 대국민 홍보도 연일 중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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