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떼자" "원 콜 어웨이"..숨 가빴던 이창용의 100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100일을 맞았다. 취임 직후 고(高)물가·환율 상황이 이어지자 사상 초유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는 한편 조직도 혁신하는 등 숨가쁜 나날을 보냈다. 특히 화끈한 소통 행보가 돋보였다는 평가다.
지난 4월21일 공식 취임한 이 총재는 29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이 총재는 8년 만에 외부 출신 한은 수장으로 임명됐다. 앞서 IMF(국제통화기금) 아시아태평양국 국장과 ADB(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을 거치며 국제적 감각을 한은에 접목시킬 인물로 낙점됐다.
이 총재는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조직혁신에 나섰다. 지난 6월 총재와 부총재의 권한을 하부로 위임해 부총재보가 대내외적으로는 최고 책임자의 역할을 맡게 했다. 이 총재는 지난 6월 한은 창립기념사에서 "계급장 떼고 할 말은 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자"고 말하며 보수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한 한은 특유의 조직문화를 뜯어고쳐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이 총재는 국제기구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토대로 매주 주요 경제 현안을 주제로 한은 구성원들이 토론하는 '주간업무포럼'을 운영한다. IMF의 '서베일런스 미팅'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팀장급 이상 한은 직원은 모두 회의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금융통화위원들과도 매주 만나며 주요 국내외 경제 이슈를 논의한다. 이 총재는 구성원들과 토론을 이어가다 좋은 의견이나 의문점 등이 생기면 자켓 속에서 수첩을 꺼내 적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임 이주열 총재가 신중한 소통 방식을 택했다면 이 총재는 적극적인 대화를 추구하는 편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이 총재는 궁금증이 생기면 바로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거나 직접 만나 답변을 듣는다"며 "한은 금통위원이나 담당자와도 매주 경제 관련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의견을 수집해가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등 내부에도 건강한 긴장감을 준다"고 평가했다.
앞서 이 총재는 지난 4월 취임사에서 "궁금한 사항에 대해 '원콜어웨이(one call away·전화 한 통이면 된다)', 전화 한 통이면 몇 권의 책을 찾아 읽는 것보다 더 빠르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며 IMF 근무 시절의 소통 방식을 전한 바 있다.
적극적인 소통행보 만큼 통화정책 운용도 과감하고 명확하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 13일 빅스텝을 단행한 이후 이 총재는 기자회견을 통해 "물가상승률이 올해 3분기말~4분기 초 고점을 찍는 등 경기, 물가 상황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앞으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릴 것"이라며 비교적 투명하게 통화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다만 한은 내·외부에선 이 총재의 직설적 화법에 대해 평이 엇갈린다. 지난 5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첫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빅스텝을 배제할 단계가 아니다"고 밝혀 채권금리가 급등하는 등의 예상치 않은 발언이 화두에 올랐다. 이후 한은은 '원론적인 발언'이라고 진화에 나섰고 이 총재도 한은 내부에 정제된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와의 접촉면이 늘다보니 한은의 독립성이 침해받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24일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안심전환대출을 지원하기 위해 한은이 주택금융공사에 1200억원을 출자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당시 금통위는 사전 보고를 받고 논의를 이어가긴 했지만 공식 의결은 거치지 않은 상태였다. 또 추 부총리 등과의 회동이 자주 이뤄지며 정부가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통화당국을 압박하는 듯한 모양새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한은 관계자는 "전임 이주열 총재는 최소한의 외부 회의와 외부 접촉을 통해 신중한 소통을 이어가면서 시장에 안정감을 줬다면 이창용 총재는 IMF 스타일을 한은에 그대로 이식하려는 것 같다"며 "중앙은행의 수장으로서의 소통 화법에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이 총재가 '시장이 본인의 스타일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할 만큼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며 "직설적인 화법이 시장 참가자들에게는 좋은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도 하지만 지금과 같이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여러 경우에 대비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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