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유리천장도 깨졌지만..성평등한 군으로 가려면?[안보열전]
한국 사회, 과연 여군 잠수함 근무 받아들일 준비 됐을까?
밀폐된 바닷속에서 장기간 항해, 외부와 연락 두절 등 열악한 환경
또다른 '금녀'로 여겨지던 특수전, 우리 군에선 남녀 역할 달라
남군과 여군 특수부대원은 역할이 같아야 할까? 달라야 할까?
두 가지 영역 두고 의견 분분..결국 중요한 것은 '군 내 성평등'
이르면 내후년부터 마지막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해군 잠수함에도 여군이 탄다.
해군본부는 지난 28일 정책회의를 열고 3천톤급 장보고(KSS)-Ⅲ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에 여군을 승조원으로 태우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2023년에 처음 선발돼 기본 교육과정을 마치고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근무할 예정이다.
어느 나라나 군대 내에서 여성이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두 가지 분야로 잠수함과 특수전이 꼽힌다. 우리 특수전 부대에는 진작부터 여군들이 들어와 있었지만, 실질적인 역할에 대해 의문도 제기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분야를 두고 군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내년 여군 잠수함 승조원 3명 선발…"능력과 자질 갖춘 여군에게 동등한 기회 부여"
가뜩이나 인원이 적은 잠수함 부대인데 저출생으로 병역 자원까지 감소함에 따라 인력 부족 문제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를 일부 해소할 수 있고, 능력과 자질을 갖춘 여군에게 동등한 기회가 부여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해군이 이같은 방안을 처음 검토한 것은 2014년부터였다. 해군은 당시에는 KSS-Ⅰ(장보고급 또는 209급)과 Ⅱ(손원일급 또는 214급) 잠수함밖에 없었기에 거주공간이 좁은 등 여건이 되지 않아 불가능했는데, 3천톤급 잠수함에선 여군을 고려해서 설계를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수상함에서는 여군 침실 등 구역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공간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5월 여군 장교와 부사관 50여명이 잠수함을 견학하고 잠항을 포함한 항해 체험을 한 결과, "여군의 입장에서 근무환경이 충분하다고 느꼈으며, 승조하게 된다면 최초 여군 승조원으로서 자부심이 매우 클 것 같다"며 "수상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소한 생활공간 때문에 어려움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해군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체험 소감을 포함해 성별, 계급별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향후 잠수함 승조 여군의 증가가 예상됨에 따라 식별되는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여군의 잠수함 승조가 정착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해군은 잠수함에 타게 될 여군이 몇 명이고 어떤 보직을 맡게 될지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일단 장교 1명과 부사관 2명을 뽑을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잠수함은 수상함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전문성을 요구하는 탓에 교육 프로그램만 1년 정도가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기존 잠수함 승조원들 생각은?…"운용 부담 커진다", "세심한 계획과 따뜻한 시선 필요"
잠수함은 물 속에서 밀폐돼 있고 좁은데다, 한 번 출항하면 장기간 항해를 해야 하며 외부와 연락되는 시간도 매우 제한적이다. 그렇기에 여성의 잠수함 근무를 두고 기존 잠수함 부대에서도 설왕설래가 많다.
잠수함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국국방연구원(KIDA) 유지훈 현역연구위원(해군중령)은 "개인 공간이 부족하고, 수중에서 장기간 있는데다 밀폐된 공간이라는 근무여건과 함께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작전 특수성을 생각해볼 때 남녀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정신적 차이를 반영한 역할과 임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잠수함에 여성이 타게 될 경우 운용 부담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고 했다.
유 연구위원은 해군에서 전체적으로 잠수함 근무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도 극복해야 할 문제 중 하나로 지적했다. "현재 잠수함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한데, 충분한 보상을 위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군을 태우는 일은 이런 기피 현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잠수함 근무 여건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해군에서는 인력을 강제로 잠수함사령부로 차출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이렇게 잠수함에서 근무하게 된 인원들조차 대부분 몇 년 뒤에는 다른 부대로 빠져나가려 한다는 일이 해군본부와 잠수함사령부의 오래된 고민 중 하나다.
손원일함 인수함장과 95잠수함전대장 등을 지냈던 최일 잠수함연구소장(퇴역 해군대령)은 조금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성평등이라는 사회적 추세는 잠수함도 피해갈 수 없고 남군만으로는 인력이 부족하기에 서구를 중심으로 잠수함에 여군을 태우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호주, 캐나다 등은 여군 전용 침실이 있고 시간대를 분리해서 샤워실을 사용하지만, 그 외의 나라들은 'One Crew(승조원은 모두 하나다)' 원칙에 의해 침실과 샤워실 등에서도 여군 승조원에 대한 배려가 없으며 그 결과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문제는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성 인식이 뒷받침돼 잠수함까지 여성의 영역이 확대됐다고 이해해야 한다"며 "사회적 성평등이 (먼저) 이뤄지고 그 연결선상에서 군에 여성이 들어가며, 잠수함까지 여군이 타는 일로 이어진다"고 덧붙인다. 쉽게 말해, 다른 나라에선 성평등 수준이 높기 때문에 잠수함에서도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최 소장은 통화에서 "한국 사회가 아직 성평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잠수함 부대가 여군들을 받아서 관리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이들이 여성 인권 신장의 상징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잠수함 부대에 짐을 지우기도 한 면이 있다"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봐라' 같은 식으로는 안 되고, 처음부터 100% 문호를 개방하기보다 몇 년 정도 시범운용기간을 두고, 해당 여군 승조원들의 신체·정신건강을 신경써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과 함께, 여군을 잠수함에 태워야 한다면 그만큼 치밀한 준비와 함께 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특수전에선 어떨까?…우리나라에선 진작부터 여군 있었지만, 역할 달라
군에서 여군이 접근하기 어려운 또다른 분야가 특수전이다. 특성상 일반 보병부대보다 훨씬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고, 위험성도 높으며 장기간 작전을 수행하는 일도 많다.
미군은 몇 년 전 특수전 교육 과정에 여군을 선발하기 시작했고 일부 합격자가 나왔다. 육군 특수부대인 그린베레와 레인저, 해군 특수부대 SWCC 등에서 고된 훈련을 통과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일부는 현장 전투부대 지휘관을 맡는 경우도 있으며, 대부분은 실무부대에서 어떤 임무를 맡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확실한 것은, 특수전 훈련 통과자 자체는 나왔다는 점이다.
우리 군에서는 특수전이 '금녀'의 영역까지는 아니었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육군 특수전사령부가 여군을 선발하고 운용해 왔으며, 공군 공정통제사(CCT) 가운데서도 지난해 2월 이윤지 하사가 훈련을 이수하고 신임 공정통제사가 되면서 유리천장을 깼다.
단, 적어도 특전사에선 여군이 맡는 임무는 남군 특수부대원들과 조금 다르다. 특전사 소속 여군들은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특수전 교육을 받은 특전여군과, 행정업무 등을 맡는 일반 여군들이다.
특전여군들은 과거엔 별도의 여군중대에 모여 있었으며 고공강하, 첩보수집, 위장침투 등 임무를 수행했다. 이를테면, 공중납치 인질극 상황에서 스튜어디스로 위장하고 침투해 적의 동태를 살피고 필요하다면 직접 테러범들을 제압하는 식이다.
몇 년 전 특전사는 여군중대 자체를 없애고 707특수임무단과 전국 특전여단에 여군들을 분산배치시켜, 대테러 임무를 맡는 여단 특수임무대 등에서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다만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도 제기된다.
한 특수부대원은 "(국가급 대테러특공대가 아닌) 여단 특임대 규모에서 (여군이 맡고 있는) 그와 같은 임무를 제대로 하기는 어렵고, 결국 여군은 단기 또는 국내 대테러 작전 정도에나 활용이 가능하다"며 "대부분의 특전여군이 웬만한 남자보다 체력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체력만 좋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한계도 분명하다"고 했다.
당시 특전사령관으로서 특전여군을 분산배치하는 정책을 추진했던 전인범 퇴역 중장의 견해는 또 다르다. 그는 "남녀의 차이 때문에 수행하는 임무는 다르지만, 군인으로서는 같다. 특전여군들은 그야말로 특별한 여군으로, 아무나 할 수 없으며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다"며 "(여군의 특성을 고려해) 특수한 임무 중의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고, 남군들은 남군들대로 체력이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면 될 일이다"고 말했다.
전 장군은 오히려 "여성들에 대한 정책을 남성들이 만들면 과잉보호를 할 수 있기에 여군 정책은 여성들이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형평성에도 맞고 제대로 된 사람들을, 더 터프한 사람들을 뽑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군에서 인력 운용은 그 부대의 임무와 작전적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그런데 특수전 부대에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남성보다 여성이 수행할 경우에 더 효과적인 임무들도 존재한다. 한편으로 우리 군에서 그러한 임무는 비교적 필요성이 적은 편에 속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같이 다른 견해가 나오는 셈이기도 하다.
육군 특전사와는 또 다르게 단기 침투와 타격, 해상 대테러작전을 주로 수행하는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은 아직 여군을 선발할 계획이 없다. 이 부대에선 육군 특전사와 공군 CCT 등 타군 특수부대원들도 특수전 초급반에 입교해 위탁교육을 받지만, 현재까지 여군이 이 교육을 받으러 온 사례는 없다고 한다.
정답은 없다, 논란도 분분…중요한 것은 군 내 성평등
잠수함에도 여군이 탑승하게 되면서 군 내에서 여성이 근무할 수 없는 분야는 일단 형식적으로는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잠수함이라는 어려운 환경과 특수전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이들이 남군과 완전히 똑같은 임무를 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선이 아직 많다. 딱 부러지는 정답은 아직 없으며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전망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전혀 신기하지 않은 세상이 됐지만 우리 사회의 성평등 수준은 아직까지 높다고 보기 힘들다. 특히나 남성 중심 조직인 군대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며, 남녀의 평균적인 신체적 조건이 차이가 난다는 점 등도 진지하게 고려돼야 할 문제다.
아직까지 논란이 분분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단순히 땜질식 해결책을 내놓기보다는, 사회와 군 모두가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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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형준 기자 redpoin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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