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하나의 윤심(尹心), 두 개의 해석..국민의힘 어디로
중앙정치의 상징, 서울 여의도에서 요즘 '민심'(民心)만큼이나 중요한 게 또 있습니다. 바로 '윤심'(尹心),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입니다.
사상 초유의 현직 당 대표 징계와 직무대행 체제 출범, 여기에 '문자 공개' 파동에 이은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요구까지…. 여권이 지각변동을 겪는 가운데, 지난 28일은 '윤심 읽기'에 적합한 날이었습니다.
이날 국민의힘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과 김기현 의원은 '정조대왕함 진수식'이 예정된 울산까지 윤 대통령과 전용기를 함께 탔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진수식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저녁엔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인도네시아 공식 만찬에 권성동 대행과 김기현 의원이 참석했습니다. 차기 당권 주자로 꼽히는 인사들이 이날 하루에만 여러 차례 대통령을 대면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날의 '윤심'을 두고 당 인사들의 해석이 엇갈립니다. 하나의 마음을 쪼개 가진 걸까요?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는 사이, 윤심을 읽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첫 번째 윤심: "며칠 혼났겠네…잘해보자" 위로와 격려?
이틀 전 터진 '문자 파동'에 다소 껄끄러움이 남아있었을 거란 예상과 달리, 권성동 대행을 향해 확실한 위로와 격려를 건넸다는 게 첫 번째 '윤심'입니다.
이준석 대표를 가리켜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표현한 대통령 문자가 공개된 걸 단순 해프닝으로 보고, 권성동 대행 체제에 한 번 더 힘을 실어줬다는 시각입니다.
행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전용기 안에서) '문자가 유출돼 며칠 동안 혼났겠다'는 위로와 격려 차원의 대통령 말씀이 있었다"며 "해프닝을 전제로 얘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문자 공개) 이전과 전혀 다를 바 없이 당정이 잘해보자는 것이었다"며 "문자 공개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거나, 균열이 생긴 건 전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권 대행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사적 채용, 문자 파동 국면까지 원내대표 취임 후 100일여 동안 세 차례나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요.
자연스레 이번 만남을 계기로 윤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재신임'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 두 번째 윤심: "비대위 전환" 촉구…권성동 대행에 치명타?
두 번째 윤심은 정 반대입니다. 윤 대통령이 이른바 '사고'를 친 권성동 대행 대신, 당을 비대위 체제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는 겁니다.
소위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그리고 차기 당권 관계자들의 시각인데, 이들은 전용기 안 대화 분위기도 "싸늘했다"고 전했습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며칠 혼났겠네'는 서로 무안하고 관계가 껄끄럽다 보니 그걸 좀 풀어주기 위한 표현이었을 뿐"이라며 "체제를 신임하거나 동요하지 말라는 등의 말은 전혀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대통령의 뜻은 최고위원들을 사퇴시켜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것"이라며 "28일 오전만 해도 일부 최고위원들의 사퇴 동의를 받는 분위기였고, 29일에 당장 비대위로 전환되진 않더라도 비대위 전환 모멘텀(계기)을 만들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비대위 체제로 바꾸려면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가 기능을 잃어야 합니다. 이준석 대표가 사퇴 없이 직무정지 상태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남은 방법은 최고위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는 것뿐인데요.
당 사무처는 이에 "현재 최고위원 9명 중 8명이 재적 상태이니, 과반인 4명이 사퇴해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 '기능 상실' 근거가 된다"고 밝혔습니다.
권성동 대행은 그러나 "총사퇴가 아닌 일부 최고위원 사퇴로 비대위가 구성된 전례는 없다"며 해석의 여지를 남겨뒀습니다.
■ '최고위원 사퇴' 승부수 던진 배현진…시동 거는 '차기 당권 주자'
이처럼 두 개의 윤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시선은 어제(2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로 쏠렸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친윤계' 배현진 최고위원은 "(정권 출범) 80여 일이 되도록 국민들께 기대감을 채워드리지 못했다"며 "지도부 일원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들이겠다"고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이로써 두 번째 윤심이 일단 한 표를 얻은 셈이 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차기 당권 주자들은 운동화 끈을 조여 매는 분위기입니다.
김기현 의원은 어제 하루 SNS에 '비상한 시기엔 비상한 조치를 해야 한다', "누란지위·필사즉생·선당후사(累卵之危 必死即生 先黨後私)'란 글을 연이어 올리며 '비대위 체제 전환'에 힘을 실었습니다.
안철수 의원의 기류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최근 권 대행 체제를 지지했던 것과 달리 어제 라디오 인터뷰에선 "권 대행의 재신임이 안 되면 조기 전당대회로 가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표적인 '친윤계'로 분류되는 박수영 의원을 중심으로 초선 의원 32명도 당 지도부에 '비대위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전달한 뒤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이런 기류가 반영될 걸까요? 권성동 대행은 "비대위 전환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했고, 다음주부터 의원들을 상대로 의견 수렴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 실마리는 민심? 윤심?
반면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성명에 동참하지 않은 한 초선의원은 "법적 효력도 없는 성명서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어쨌든 권 대행을 스스로 사퇴시키는 게 목적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끼지 않으면 소위 '왕따'를 당할까 봐 동참한 사람이 대부분인 것 같다"며 "국민 보기엔 다 세력 투쟁으로 비칠 것 같아 걱정이다. 이럴 바에야 여당 당 대표실도 용산 (대통령실 안)에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전했습니다.
대선과 지선을 이기고도 정권 초반, 극심한 내홍을 겪으며 지도체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여당. 이를 해결할 실마리는 '민심'(民心)에 있는 걸까요? 아니면 '윤심'(尹心)에 있는 걸까요?
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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