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고민 관 안에 두고 다시 태어나시라".. 죽음이 아닌 삶을 체험한 '임종체험'

윤예원 기자 2022. 7.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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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시 봉인사서 임종체험 해보니
관에 들어가자 칠흑 같은 어둠뿐
죽음을 마주할 때 진정한 삶의 의미 느낄 수 있어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죽을 병에 걸려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지 않는 한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먼 훗날의 이야기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면 그간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이야기 역시 직접 느껴 본 적이 없으니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삶을 향한 열쇠가 될 수 있다. 평생 죽음을 연구해 온 김기호 아름다운삶 원장은 죽음을 목전에 뒀을 때 비로소 인간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김 원장도 한때는 남들의 눈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출세만 좇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 지 알게 됐다고 한다. 김 원장은 지난 2002년 임종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20년 동안 ‘웰다잉’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지난 28일 경기 남양주시 봉인사를 찾아 김 원장의 ‘임종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참여해봤다.

경기 남양주시 봉인사에서 열린 임종체험 현장에서 김기호 원장이 참가자들의 입관을 돕고 있다./윤예원 기자

한여름의 폭염이 이어지던 지난 28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봉인사에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은 8명의 노인이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인생의 황혼기를 살고 있는 ‘7080′ 노인들이었다. 구로노인복지회관에서 임종체험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이들 중 몇몇은 강당에 놓여 있는 관을 보자마자 “재수 없다”고 손사레를 쳤다.

봉인사 인근에는 납골당이 있다. 김 원장은 참가자들에게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오며, 늘 대비해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장례버스의 영정사진을 지켜보면 나이 든 사람뿐 아니라 젊은 사람의 얼굴도 보인다. 그 친구들이 상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며 들어온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하루하루가 기적이라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물놀이를 다녀오던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나의 장례식에 가족, 친구, 동료 등 많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나의 장례식에서 가장 슬피 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명상이 시작되자 참가자들은 눈을 감고 강사의 말에 집중했다. 관이 보기 싫다며 얼굴을 찌푸리던 참가자들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명상이 끝나고 지병으로 어린 자녀들과 아내를 두고 세상을 떠난 40대 가장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등 영상물을 시청했다. 참가자들은 조용히 화면을 바라봤다.

영상 시청이 끝나자 입관 전 마지막 편지를 작성했다. 제일 앞에 앉은 82세의 조모 할머니는 자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꾹꾹 눌러썼다. 편지에는 ‘엄마는 너희들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부족한 것이 많았다. 너희에게 늘 공부만 얘기했던 것이 미안하다. 지금은 그런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프단다. 미안해. 사랑한다’고 적혀 있었다. 최기수(84) 할머니는 ‘내가 이생을 평탄하게 살았으니 이 삶이 잘 가기를 소망하는 마음뿐이다’라고 적었다.

편지쓰기를 마친 뒤 참가자들은 입관을 위해 노란 삼베 수의를 입었다. 기자 역시 관에 누웠다. 강사는 염을 해주겠다며 손과 발을 단단히 묶었다. 얼굴에는 흰 천이 올라갔다.

관 뚜껑이 닫히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좁은 관에서 뒤척이자 양팔과 등에 닿는 딱딱한 나무가 느껴졌다. 묶인 팔과 발목에 허리까지 통증이 찾아왔다. 관에 망치질까지 하는 소리가 들리자 비로소 세상과 단절되는 것을 느꼈다. 칠흑 같은 어둠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곧 육체의 감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백 번도 더 상상해봤던 죽음이지만, 상상의 끝은 늘 영정사진이 올려진 장례식장이었다. 하지만 막상 관에 눕자 이 좁은 공간이 죽음의 전부였다. 그때 김 원장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는 “세상에 대한 모든 고민은 관 안에 두고 다시 태어나시라”고 했다. 입관 체험이 끝나고 관 뚜껑이 열리며 다시 빛이 들어왔다. 다시 살아났으니, 그 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연신 눈물을 닦던 조 할머니는 관에서 나와 “관에 누워 지난 삶을 돌아보니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많이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함께 입관체험을 한 20대 사회복지사 A씨는 “평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관에 들어가니 결국 재물은 죽을 때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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