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어도 주워야 돕지" 말기암 '기부천사'의 사명
공단지역 농촌마을 이장 출신 박화자씨
대장암 말기에도 폐품수집으로 기부 지속
13년째 목돈 모아 학생들 장학금 지급
남은 꿈은 검정고시 패스..봉사도 계속
"어려운 타인에게 베풀면, 내가 더 행복"
"원래 내 물건이 아니었잖아요. 폐품들로 벌었으니까 내 돈이 아닌 거죠."
경기도 화성 마도면의 한 작은 농촌. 단층집 네댓 가구가 모여 있는 골목 어귀에는 폐지와 빈 깡통, 플라스틱 등으로 채워진 꾸러미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여름 따가운 뙤약볕이었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채 구슬땀을 흘리며 폐품을 정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말기암 환자치고는 거침이 없었다. 이 마을 이장 출신 박화자(62·여)씨다.
"이런 거 하고 있으니까 중병 걸린 환자처럼 안 보이죠?(웃음)"
13년째 주변 공장단지에서 폐품을 주워 판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 등을 도와 온 박씨는 2년 전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도 기부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유는 '나눔의 기쁨'이다.
박씨는 최근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도움 받는 사람이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하다보면 나 자신이 더 행복해진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말기암도 꺾지 못한 '희망과 나눔'…기부액 1억 눈앞
기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장 시절인 2009년 면장으로부터 명절 불우이웃 돕기를 제안 받으면서다. 그 무렵 고물상을 하는 친구에게서 폐지를 주우면 돈을 주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때부터 남편이 장만해준 구형 경차 마티즈를 끌고다니며 마도산단 일대에서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종이는 물론 온갖 폐품들로 종류를 늘려갔다. 차도 1톤 트럭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목돈을 모아 십여 년 면사무소에 기부한 금액은 어느덧 7천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런 그는 청천벽력 같은 말기암 진단을 받고도 멈출 줄을 몰랐다.
"남편이 벌어다 주니까 먹고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죠. 그런데 나보다 처지가 안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덩달아 신이 나니까 하는 겁니다."
평소 농사를 지으면서 거의 매일같이 폐품을 주워 왔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조차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수집에 나서고 있다.
다른 장기에 암세포가 전이되는 등 다발성이라 수술도 힘든 처지였다. 처음엔 "포기하면 안 되겠느냐"고도 했다. 하지만 의사의 설득에 절망 대신 '희망'을 택했다.
"아직 젊으니 포기하지 말라는 거죠. 그래서 항암을 결심했고 벌써 1년이 다 돼 갑니다. 의외로 견딜 만 하더라고요. 계속 좋은 일 하라고 하늘이 시간을 더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행이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해 한 대기업은 그에게 의인상을 건넸다. 박씨는 이때 받은 상금 1천만 원마저 그대로 면사무소에 되돌렸다.
"몸도 아픈데 왜 다 기부만 하느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남이 버린 물건으로 한 일 때문에 받은 돈이잖아요. 그러니까 상금도 내 돈이 아니죠. 대단한 일 한 것도 아닙니다."
가난해도 공부만큼은…"죽기 직전까지 돕고 싶어"
애초 박씨는 유년 시절부터 '내 것'이 많지 않았다.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재혼해 집을 떠났다. 세 살배기 그는 두 언니와 함께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력은 초등학교가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공부에 맺힌 '한'은 나눔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원동력이 됐다.
"돈 없어서 공부 못 하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겪어 봤잖아요. 그런 학생들 보면 찡한 거죠. 조금이라도 보태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계속 (기부를) 하게 된 겁니다."
실제 그의 기부금은 대부분 장학금 명목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에게 쓰이고 있다.
항암치료를 받고 난 다음 날은 고통을 삭이느라 온종일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박씨. 자신의 도움으로 성공한 학생들을 돌이키면 힘에 부쳐도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다고 한다.
"형편이 안 된다고 해서 몇 백만 원 지원해준 학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행정고시 합격했다고 감사 인사를 왔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더 힘이 생기는 것 같아 제가 더 고맙죠."
또한 TV 다큐멘터리에서 필리핀 아이들이 밥을 굶는 모습을 보고, 해당 시설에 소정의 후원금을 보냈다. 올해는 자신이 나고 자란 경상도 지역에 큰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2백만 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가톨릭 수사님이 백혈병에 걸리고도 아이들을 돌보는 걸 보면서 놀랐습니다. 그분도 죽을 때까지 봉사한다고 하시더군요. 많이 배웠죠. 죽더라도 남들 도우려면 더 주워야겠다고…"
"베풀면 내가 더 행복", 남은 목표는 '검정고시와 봉사'
자신의 도움을 받은 이들에게 되레 감사 인사를 전한 박씨는 소위 '가진 자'들에 대해서는 쓴 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버려진 물건으로도 남을 도울 수 있는데 부자들은 뭐하는 겁니까. 더 벌겠다고 싸움만 하고 불법에 투기에… 죽으면 주머니에 한 푼도 없는 건데 왜 움켜쥐려고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힘들게 번 돈일수록 어려운 이들에게 베풀면 그 만큼 자신에게 '더 큰 행복'이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깝다고만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은 인생 목표를 묻자 박씨는 "공부를 해보고 싶다. 더 살지, 죽을지 모르지만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해보고 싶다"며 못 다 이룬 꿈을 얘기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상이 돼버린 나눔에 대한 계획을 빼놓지 않았다. "더 늙어서 폐지도 줍지 못하게 되면 직접 기른 농산물을 나눠주러 다니면서라도 봉사를 계속하겠다"는 다짐이다.
끝으로 박씨는 취재기자에게 "더는 언론 인터뷰 안 하겠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왜 찾아 왔느냐.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며 멋쩍게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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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창주 기자 pc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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