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 한해 빌린 책 단 4권.. 1위는 '전공서'
서울대 학부생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린 책이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 이후 소설책에서 의과대학 전공 서적으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대출 권수도 코로나 전에 비해 절반가량 줄었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올 상반기에도 1인당 대출 권수는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코로나로 인해 도서관을 방문하는 학생들이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인문교양서적 등 종이책 독서량이 줄어드는 최근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9일 서울대 도서관의 최근 5년간 학부생 도서 대출 순위를 분석한 결과 2018년과 2019년 대출 횟수 1위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였다. 각 58회, 53회 대출됐다. 그러나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줄곧 대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은 의과대학 전공 서적인 ‘안과학(眼科學)’이다. 2020년엔 80회, 작년엔 110회, 올해 상반기에는 86회 대출됐다.
안과학은 ‘안과학 및 실습’ 수업과 의사 국가 시험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은 2018년에는 상위 10개 도서 안에도 들지 못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안과학은 가격이 6만원대인 서적이라 전에는 학생들끼리 책을 같이 사서 돌려 봤지만, 코로나로 모여서 공부할 수 없게 되면서 대출 횟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해인 2020년의 경우에는 대출 순위 1위 안과학에 이어 2위도 경제통계학 수업 등에 활용되는 전공 서적인 ‘통계학’이 차지했다.
연간 40회 이상 대출된 도서를 살펴봐도 소설이나 인문교양서를 잘 읽지 않는 현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2018년과 2019년에는 40회 이상 대출된 책 중 소설과 인문교양서가 각각 7권, 3권이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는 안과학 외에 40회 이상 대출된 책이 한 권도 없다. 코로나 이후 소설과 인문교양서 중엔 2021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32회로 대출 횟수가 가장 많았다.
학부생 1인당 연간 종이책 대출 권수도 크게 줄었다. 2018년과 2019년 1인당 대출 도서 수는 각각 9.15권, 8.37권이었지만 2020년 4.9권, 작년에는 4.39권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1인당 대출 권수는 2.48권에 머물렀다.
이처럼 서울대 학부생들의 책 대출이 줄어든 이유는 복합적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우선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인해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이 줄어든 게 일차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서울대 도서관 관계자는 “코로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20년 도서관 방문자 수가 2019년 대비 54% 감소했는데 아직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을 선호하는 ‘페이퍼리스’ 분위기가 확산된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대 도서관 관계자는 “54만 종에 달하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지만 전자책 대출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출판문화를 연구하는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독서 관련 앱이나 온라인 서점 등에 친근한 청년층이 실물 도서 대신 노트북이나 태블릿PC 등으로 전자책을 읽는 페이퍼리스 독서로 돌아서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도서관장을 역임한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유튜브나 다른 영상 플랫폼을 통해 여러 정보를 접하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 종이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전반적으로 독서량이 줄어드는 사회 분위기와도 관련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성인 연평균 종이책 독서량은 2017년 8.3권에서 2019년 6.1권으로 줄었다가, 작년엔 2.7권으로 떨어졌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관심 분야와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책보다 더 쉽고 빠르게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상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