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코원숭이, 메뚜기, 초파리도 알건만.. 인간만 모르는 '식욕의 비밀'
생명환경과학자들이 30년 조사해 찾은
비만과 성인병 피하는 '동물처럼 먹는 법'
개코원숭이, 고릴라, 오랑우탄, 고양이, 개, 메뚜기, 딱정벌레, 바퀴벌레, 초파리 심지어 미생물인 점균(粘菌)도 완벽하게 해내지만 인간은 못하는 일이 있다. 바로 무엇을 얼마나 먹고 언제 멈출 지 판단하는 능력, 쉽게 말해 식욕 조절 능력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만이 왜 식욕을 조절 못할까. 그리고 이로 인한 비만, 당뇨, 심장질환 등 불균형한 식단으로 발생하는 여러 질병으로 고통 받는 걸까.
◇단백질, 식욕 조절의 핵심
‘식욕의 비밀’(사랑의집) 저자 두 명은 원래 곤충학자다. 호주 시드니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로벤하이머와 스티븐 심프슨은 1991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메뚜기를 연구하고 있었다. 연구소에서 200마리 메뚜기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모든 메뚜기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비율이 제각각 구성된 25가지 먹이 중에서 탄수화물 300mg, 단백질 200mg의 최적 균형을 갖춘 먹이를 선택했다.
이에 놀란 두 사람은 실험을 다른 동물들로 확대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개코원숭이들은 90여 가지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단백질 대 지방과 탄수화물 비율을 1(단백질):5(지방·탄수화물)로 절대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했다. 미생물인 점균을 단백질과 탄수화물 비율을 11단계로 설정한 접시에 넣었다. 그러자 번식에 가장 완벽한 영양 비율인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2대1의 비율로 이뤄진 먹이 위에만 점균 덩어리가 똬리를 틀었다.
로벤하이머와 심프슨은 모든 생물이 수학과 컴퓨터 없이도 스스로 균형 잡힌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핵심은 단백질이었다. 저자들은 “모든 사례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단백질 목표량을 섭취하는 것”임을 찾아냈다. 단백질을 몸이 원하는 만큼 먹지 못한 메뚜기들은 단백질 목표량이 채워질 때까지 탄수화물을 과식해 비만이 됐다.
단백질이 먹으라고 부추긴다면, 섬유질은 언제 먹기를 멈춰야 할지 알려준다. 저자들은 “창자를 늘려 포만감을 유도하고, 창자가 비워지는 속도를 늦추는 것은 섬유질”이라고 했다. 섬유질은 식욕 제동 장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마이크로바이옴’이라고 부르는 장내 미생물들의 먹이가 된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몸에 필요한 주요 영양소를 생산하고, 면역계를 돕고, 창자를 건강하게 하고, 심지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신호를 생성한다.
◇인간도 식욕을 조절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애초부터 식욕 조절 능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1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심프슨이 지도하던 학생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식욕 실험을 하겠다며 찾아왔다. 스위스 알프스 외딴 별장에 10명을 모아놓고 일주일간 고기, 생선, 달걀, 유제품, 빵, 과일, 채소 등이 있는 뷔페에서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게 했다. 이 1단계 실험에서 ‘인간 메뚜기’들은 정확히 예상되는 만큼의 열량을 섭취했다. 단백질을 약 18% 비율로 먹었다. 개코원숭이를 30일간 관찰해 얻은 다량 영양소 비율과 매우 비슷했다.
2단계 실험에서는 한 집단은 고기·생선·달걀·유제품 등 다량의 단백질로 이뤄진 고단백 뷔페를, 다른 집단에는 단백질이 적고 탄수화물과 지방이 많은 식단을 제공했다. 양쪽 집단의 단백질 섭취량은 거의 같았다. 고단백 식단 집단은 전보다 열량을 38% 덜 섭취한 반면, 고탄저지 식단 집단은 목표 단백질 섭취량에 다다르기 위해 총열량을 35% 더 섭취했다. 저자들은 “단백질 섭취량의 항상성이야말로 비만 유행의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실험 결과만 놓고 본다면, 단순히 단백질 비율을 높이면 비만을 막아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왜 자연은 우리의 단백질 상한선을 설정해 과식하지 못하게 했을까.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식단에서 단백질 비율이 높아질수록 초파리의 수명이 짧아졌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먹이를 먹은 초파리는 가장 많은 알을 낳았다. 하지만 단백질을 과다 섭취한 초파리는 오히려 알을 덜 낳았다. 저자들은 ‘적게 먹으면 오래 살지만 자식을 많이 낳지 못하고, 더 먹으면 자식을 더 많이 남기지만 덜 오래 살고, 더욱더 많이 먹으면 오래 살지도 자식을 많이 남기지도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쥐도 저단백 고탄수화물 먹이를 먹을 때 가장 오래 살면서 건강하게 지냈지만, 번식 능력은 단백질 비율이 높고 탄수화물 비율이 낮은 먹이일 때 최대가 됐다. 저단백 식단은 성장과 번식 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손상으로부터 DNA, 세포, 조직을 보호하는 장수 경로를 켬으로써 수명을 연장했다. 장수(長壽) 지역으로 유명한 일본 오키나와의 전통 식단은 섬유질이 풍부한 고구마와 잎 채소, 적은 양의 생선, 살코기로 이뤄진다. 탄수화물 85%, 지방 6%, 단백질 9% 구성이다. 단백질 비율 9%는 식량 부족에 시달리지 않는 인류 집단 중 가장 낮다.
◇초가공식품이 위험한 이유
현대 인류가 식욕 조절 능력을 잃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근대 이후 등장한 인스턴트 라면, 과자류, 아이스크림, 인공감미료 등 초가공식품이 대량 생산·유통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2016년 새로 나온 식료품 2만여 종 가운데 60%가 초가공식품으로 분류될 정도로 비중이 높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일상에 침투해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대학 카를루스 몬테이루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중 보건 영양학자로, 전 세계에서 식품 종류와 비만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그는 ‘초가공식품을 많이 먹을수록 더 비만해진다’는 패턴이 전 세계적으로 명확하게 나타남을 밝혀냈다. 몬테이루 교수는 가공 수준에 따라 식품의 범주를 정의하고, 어떤 가공식품이 건강에 해로운지 파악하는 ‘노바(Nova) 체계’를 고안했다. 노바 체계는 4 범주로 나뉜다.
‘노바 1군’은 비가공식품과 단순한 방식으로만 변형시킨 식품이 속한다. 말리거나, 저온 살균하거나, 얼리거나, 통조림으로 만든 식품이다. ‘노바 2군’은 버터, 올리브오일, 설탕, 시럽, 소금 등 식품의 준비·조리·조미에 쓰이는 요리 성분들이다. ‘노바 3군’은 가공됐지만 초가공 수준이 아닌 식품. 최소 가공식품인 1군에 지방, 설탕, 소금 등 2군의 성분을 추가한다. 여기까지가 인류가 오래 전부터 먹어온 전통 식품이다.
‘노바 4군’은 대규모 산업이 발전하면서 모든 생산을 기계화하던 1860년대 이후 등장한 초가공식품이다. 저자들은 “식품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산업 공정을 통해 아주 철저히 가공된 것’이라 설명한다. 대형 생산설비에서 자연식품을 당·단백질·지방·섬유질 등 성분으로 분리하고, 가수분해·수소화 등 화학적 변형을 거쳐 다른 물질들과 결합한다. 유통기한을 늘리고 질감·맛·냄새·겉모습을 바꾸기 위해 압출·성형 등 산업 공정을 추가로 거친다. 농업이 아닌 석유화학산업 등 다른 산업에서 나온 화학물질 첨가제가 추가되기도 한다.
초가공식품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음식을 많이 먹도록 고안됐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식단의 초가공식품 비율이 증가할수록 단백질을 통해 얻는 열량의 비율이 떨어짐을 확인했다. 앞서 보았듯,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단백질 목표 섭취량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먹게 된다. “초가공식품은 우리를 살찌게 한다. 지방과 탄수화물에 우리가 강한 식욕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초가공식품에서처럼 지방과 탄수화물로 단백질이 희석될 때, 우리의 단백질 식욕은 정상적으로 지방과 탄수화물을 그만 먹으라고 알려 줄 메커니즘을 압도한다. 그 결과, 우리는 원래 먹어야 할 양보다 더, 건강한 수준보다 더 많이 먹게 된다.”
게다가 초가공식품은 섬유질이 적다. 식품업체들은 섬유질을 최대한 제거한다. 섬유질이 적을수록 맛이 좋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식품에서 섬유질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 식욕에서 제동 장치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사과 4개를 통으로 먹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사과 4개를 즙으로 짜면 컵 하나가 꽉 찰 양으로, 어렵잖게 마실 수 있다. 초가공식품을 최대한 피해야 하는 이유다.
◇식욕 조절 능력 회복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먹어야 할까. 아동과 청소년은 성장과 활동을 위해 많은 에너지와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청년이 되면 체중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청년이 되면, 어릴 때 새겨진 각인을 지니면서 새로운 부담까지 안게 된다. 전 세계에서 체중이 가장 눈에 띄게 증가하는 시기는 20~30세인 10년간이다.” 40~65세 중년이 되면 단백질 함량이 낮고(10~15%), 섬유질이 풍부한 건강한 탄수화물 함량이 높고 건강한 지방이 적절히 포함된 식단이 건강을 촉진하고 노화를 지연시킨다. 65세를 넘어 황혼기에 들어서면, 단백질 함량이 높은 식단이 필요하다. 우리 몸이 단백질을 간직하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백질 함량을 18~20%로 높인 식사를 하는 편이 좋다.
저자들은 책 말미에 보다 구체적인 실천법을 ‘동물처럼 먹는 법’으로 정리해 제시했다.
동물처럼 먹는 법
- 단백질 목표 섭취량을 정하라. 전체 섭취 열량 중 단백질 비율은 아동·청소년 15%, 청년층(18~30세) 18%, 임신·수유부 20%, 장년층(30대) 17%, 중년층(40~65세) 15%, 노년층(65세 이상) 20% 정도다.
- 초가공식품을 피하자. 초가공식품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옥수수 시럽·수소화한 기름·가수분해한 단백질·향미 증진제·색소·유화제·점증제 등 일반 가정 주방에서 결코 또는 거의 쓰지 않는 식품 성분이나 첨가제가 들어있는지 살펴본다.
- 다양한 동물과 식물에서 얻은 고단백 식품을 택한다. 아미노산을 균형 있게 섭취하면 단백질 식욕이 가장 효과적으로 충족될 것이다.
- 섬유질을 섭취하라. 잎 채소, 녹말이 없는 채소, 과일, 씨, 통 곡물을 많이 먹음으로써 식욕 제동 장치를 다시 작동시키자.
- 열량을 따지는 데 집착하지 말라. 식단을 올바로 구성하면 단백질 식욕이 알아서 열량을 관리해준다.
- 식품에 설탕과 소금을 덜 넣고, 천연 올리브유처럼 건강한 지방을 택한다.
- 이 모든 일은 오로지 단백질 목표 섭취량과 필요한 총 에너지의 추정값에 맞추기 위해 하는 것이다. 식욕을 잡았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늘리거나 줄여 조정한다.
- 자신의 식욕에 귀를 기울이자. 짭짤하고 감칠맛 나는 음식이 먹고 싶다면, 당신의 몸은 단백질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자신이 원한다고 느끼는 양보다 단백질을 더 많이 먹지 않도록 한다.
- 근육량을 늘리려면 단백질이 20~30g 들어있는 식사를 하는 편이 낫다. 근육 합성을 촉발하는 최적의 단백질 용량이다.
- 밤에는 아무 것도 먹지 말고 간식은 식사 사이에만 먹는다. 오후 약 8시부터 다음날 아침 식사 전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말자. 매일 규칙적으로 단식하면 장수 경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고, 저녁 식사 후 열량을 추가로 섭취할 위험도 줄어들며 수면에도 도움이 된다.
- 잠을 잘 자자. 수면은 식사, 운동과 더불어 건강의 세 번째 기둥이다. 수면과 영양은 몸의 하루 주기 리듬을 통해 연결돼 있다.
-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고 사람들과 어울린다. 신체 활동과 사회적 상호 작용은 건강 및 장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운다.
-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의학적 이유가 없는 한, 특정 식품군을 굳이 끊거나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거나 자기 사회의 식품 문화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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