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EU 성장률 동반 하락, 누가 더 버티나 '치킨게임'
러시아·유럽 ‘경제 난타전’
이 같은 동반 하락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고공 행진도 원인 중 하나지만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결정적이란 게 중론이다. 이후 유럽은 경제 제재, 러시아는 에너지·식량 공급 차단을 통해 상대방의 경제 체력을 고갈시키는 전략을 썼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측 모두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 싸움은 ‘누가 더 오래 버티나’를 겨루는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유럽은 지난 3월 이후 러시아에 금융 거래와 기술·부품 수입 제한 등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제재 효과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는 추세다. 러시아 경제성장률도 지난 5월 -4.3%에서 6월 -4.9%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을 -6.0%로 예상했다.
치킨게임의 승자는 누구일까. 유럽은 시간은 자신들 편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해 유럽을 위협하고 있지만 결국엔 가장 큰 고객이었던 유럽 시장을 잃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면서다.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교수는 “유럽은 지난해 러시아 천연가스 수출의 83%를 차지하는 가장 큰 고객”이라며 “천연가스관은 건설에만 수십 년이 걸려 사실상 대체 시장을 찾기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노르웨이·알제리 등과 에너지 공급 협상을 벌이며 이 기회에 러시아에 의존했던 에너지 소비 구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지난 5개월간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가 잘 버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재 효과가 커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제조업 기반이 약한 러시아는 서방 제재로 부품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산업 생산에 큰 타격을 입었다. 제재 후 러시아를 향한 글로벌 반도체 수출량은 90%나 감소했다. 글로벌 기업의 탈러시아 행보도 충격이 크다. 소넨펠드 교수는 “러시아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한 1000여 개 해외 기업은 러시아 GDP의 40%를 차지하고 고용 규모도 100만 명에 달한다”며 “제재가 유지되는 한 러시아의 미래는 없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겨울철 가스 부족 위기를 앞두고 유럽과 미국 등 서방이 반러 단일 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다. 지난 26일 유럽연합(EU) 에너지장관 회의에선 천연가스 소비를 15% 감축하는 방안에 헝가리가 반대표를 던지며 만장일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도 감축안에 불만을 나타내며 이견을 노출했다. 미국과 EU의 입장 차이도 변수다. EU는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전면 금지하자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수입 자체는 지속하되 가격상한제를 도입해 러시아가 큰 수익을 가져가는 것만 막자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 원유시장에서 러시아산 공급이 끊겨 국제 유가가 급등할 것을 우려해서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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