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은 더 심했다며 정실인사 옹호, 공정·상식 어디로 갔나

2022. 7. 3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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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글리시 인문학
오로지 능력만 보고 사람을 쓰겠다. 지역·연령·남녀·계층·학교 따위는 전혀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렇게 호언하더니 미국 여기자가 “내각에 여성이 너무 적지 않느냐”고 지적하자 갑자기 장관 등 고위직 세 명을 여성으로 지명했다. 장관 후보자는 박순애와 김승희였다. 이들 역시 이 땅의 많은 지도급 인사들이 살아온 인생의 궤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만취 운전(drunk driving), 갑질, 논문표절, 후원금 빼먹기, 자녀 장학금 특혜 의혹, 관사 테크, 농지 취득….온갖 편법과 비리로 얼룩진 삶은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스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자원봉사, 표창장, 인턴, 영어 논문에 이름 끼워 넣기, 각종 대회 수상실적 따위를 갖춰야 한다. 콩글리시 스펙은 specification의 줄임말인데 시방서(示方書)란 뜻이 어떻게 과외활동이나 경력의 의미로 쓰이게 됐는지 알 수 없다. 대학생의 스펙 갖추기도 장난이 아니다. 해외연수에 높은 영어점수, 그럴듯한 자기소개서, 화려한 포트폴리오 등이 있어야 한다.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출사(出仕)라고 한다. 이번 정부의 인사를 보면 출사하기 위해 갖춰야 할 스펙이 한 둘이 아닌 것 같다. 어느 비서관처럼 성추행 시라도 짓든가 제자 성희롱 경력이라도 있어야 하나보다(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분’도 낙마했다). 이런 일이 없는 유능한 내 제자는 요즘 실의에 빠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매를 서지도 않았다. 6촌쯤의 친인척이라도 돼야 하는데 성씨부터 다르다. 검찰 안에서 윤사단으로 또는 일선 수사관으로 일해 본 인연이 있는가? 아니다. 그럼 아버지가 선관위원인가? 아니다. 가사 형편이 넉넉지 못하니 대선 때 2000만원 후원금을 냈을 턱이 없다.

서울법대나 사법고시와는 거리가 멀고 지방에서 고교를 나왔으니 대통령의 연수원 동기나 고등학교 후배가 될 수도 없다. 하다못해 자기 아이 유치원 편입학에 손쓸만한 능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 언감생심 로펌의 고문으로 천문학적 월급을 꿈꿔본 일조차 없고 사외이사가 뭐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위장 전입이나 땅 투기라도 해 봐야 했는데 정직해도 너무 정직하게 살았다. 출사하려면 줄이라도 잡아야 할 터인데 실세 ‘윤핵관’이 누군지 이름도 성도 모른다.

검찰공화국이 돼간다고 비판해도 윤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검사가 많이 진출해야 법치주의가 구현된다.” “과거엔 민변으로 도배하지 않았나?” 6촌 선임행정관 채용이나 인사비서관 부인이 민간인 신분으로 마드리드 행을 도운 것을 두고 비선이라고 하면 “뭐가 문제냐? 선거 동지였다”고 둘러대고 “트럼프는 딸과 사위를 요직에 임명했다”고 되받는다. 연고인사, 정실인사(a nepotistic appointment)를 시비하면 전 정권은 더 했다고 강변이다.

청문회 없이 만취운전, 갑질, 표절 의혹의 장관을 임명하면서 “야당과 언론 때문에 고생 많았다”고 위로하는 대통령, 공정과 상식은 어디로 갔는가? 영어를 잘해야 법무부 장관이 되고 전사한 아버지 덕에 보훈처장이 되는 세상! 실력과 전문성은 구름 잡는 이야기다. 그나저나 교육은 국가백년대계다. 유아교육에서 대학까지 새롭게 리셋(reset)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술 취한 운전대 잡고 뭘 어떻게 헤쳐나갈지! 인사 독선으로 망한 정권이 어디 하나둘 뿐이었던가!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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