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대통령시키면 자살할거라고 말한 작가의 종말은?
"글쓰기 대신 美대통령이 되라고 했다면 자살했을 것이다"
첨단 과학을 현실로 가져와 로봇소설의 경전 쓴 대작가
차분히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모든 감각이 섬광처럼 번뜩이는 젊은 날 빛나는 작품을 쓴 사람은 많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작품을 노년에 이르기까지 쓴 사람은 드물다. 나이 든 작가는 대부분 이름값으로 산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오래 쓴 천재'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죽기 전까지 500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저술은 지금도 새로 발견되어 책으로 출간되고 있다. 분야도 다양해서 도서 분류법인 '듀이 십진법' 10가지 분야에서 아시모프의 책은 모두 검색된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그는 소설을 비롯해 해부학, 심리, 천문, 생물, 화학, 수학, 유머, 지리, 신화 등 셀 수 없이 많은 분야의 책을 썼다.
아시모프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글쓰기 대신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라고 했다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아시모프는 1920년 러시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세 살 때 아버지가 미국 이민을 강행했는데, 신의 한 수였다. 2차대전 말 그들 가족이 살았던 페트로비치도 나치의 손에 들어갔고 이 지역 유대인들은 전부 학살됐다.
원래 이름은 오지모프였는데 영어를 모르는 아버지가 이민 서류를 잘못 써서 아시모프가 됐다고 한다.
학구적인 집안에서 자란 그는 컬럼비아대학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보스턴대학 교수가 됐는데 정작 그는 교수보다는 소설가로 세상에 알려졌다. SF 사상 최고 명작이라는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비롯해 '아이, 로봇' '강철 도시' '벌거벗은 태양'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다.
그는 세상에 없던 상상력으로 소설을 써냈다. 요즘 많이 쓰는 '로봇 공학(Robotics)'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시모프가 만든 말이다.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되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로봇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로봇 3원칙도 그가 만든 것이다. 이 3원칙은 로봇 개발의 대전제로 불문율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의 소설은 첨단과학이나 인조생명체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프랑켄슈타인 신드롬'을 뛰어넘어 존재했다. 그는 로봇도 인류 진화의 한 측면이라고 봤다. 그의 낙관론은 폭넓은 공부와 깊은 사유에서 나왔다. 그가 쓴 '과학 에세이'에는 그의 낙관을 뒷받침하는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인류'는 한 사람 한 사람보다도 큰 것이다. 우리는 400만년 전에 시작한 모험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로 퍼져나가고 있고 아직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다. 인류는 어떤 불행에도 굽히지 않았다. 어떤 불행도 지금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 없다."
※ 문화선임기자이자 문학박사 시인인 허연기자가 매주 인기컬럼 <허연의 책과 지성> <시가 있는 월요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허연기자의 감동적이면서 유익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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