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허준이와 학문의 즐거움

2022. 7. 3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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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즈상' 허준이·日히로나카
늦깎이 수학도라는 공통점
한발 물러선 방목형 교육과
그간 쌓은 문학·음악 소양이
깊은 학문세계 밑거름 됐을것
허준이 교수가 한국계 처음으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해 모처럼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은 1981년 국제수학연맹에 가장 낮은 등급 1그룹 국가로 가입했지만 올해 3월 세계 최고등급 5그룹 국가로 승격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우리 모두 기대하는 노벨과학상을 받을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허준이는 '노벨상급 석학초빙 프로그램'으로 서울대에 와 있던 필즈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강의를 듣고 수학 학문의 즐거움에 빠졌다고 한다. 히로나카 교수는 일본 벽촌 장사꾼의 아들로 유년학교 입시에 떨어지고 한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곡절 많던 소년이었다. 대학입시 일주일 전까지 거름통을 지고 집안 농사를 도왔으며 대학 3학년이 돼서야 수학의 길을 택한 늦깎이 수학자다. 허준이는 과학고가 아닌 일반고를 다니다가 시인이 되겠다며 자퇴하고 홈스쿨링을 거쳐 서울대에 진학했는데 아들의 고교 자퇴를 허용한 부모의 자유롭고 열린 교육관이 돋보인다.

허준이 교수는 "먼 길을 돌아서 제 일과 적성을 찾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길이 제게 가장 알맞은 길이었다. 너무 조급하거나 집착하지 않길 바란다"고 수상 인터뷰에서 밝혔다. 필자는 지난 14년간 수학·과학·예술영재 장학사업을 해온 경험을 반추하며 그가 주는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물리천문학부 허준이 학생이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를 듣고 수학의 즐거움을 알게 되고 깊이 생각하는 힘과 창조의 기쁨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히로나카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학문의 즐거움'에서 "가까이 지내던 많은 사람이 내 인생의 스승이었다"고 밝혔다. 학교 식당에서 홀로 식사하는 히로나카 교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배움과 대화를 청한 허준이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두 사람을 엮어주는 공감대였던 것 같다. 시인이 되고자 했던 '문학청년' 허준이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히로나카 교수와 문학적·예술적 감성을 서로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허준이 교수와 히로나카 교수는 둘 다 직선코스의 지름길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우회로를 돌아 징검다리를 건너 대학 3학년에야 수학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우왕좌왕하며 쌓은 그들의 문학, 음악, 철학, 인접과학의 소양이 수학의 상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허 교수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폭넓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하라고 권고한다.

시인이 되겠다는 아들의 고교 자퇴를 포용한 허준이 부모는 넓은 들판에 방목하는 것 같지만 깊은 철학이 담긴 자녀교육을 한 것이 아닐까? 부모의 조바심에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여러 학원을 뺑뺑이 돌다가 체력과 의욕을 상실하고 정작 학문에 전념해야 할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번아웃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자녀가 좋아하는 분야를 스스로 찾아 몰입하도록 부모가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어려서부터 정신적, 육체적 근육을 키워야 숨어 있는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 '안단테 칸타빌레'로 공부하고 예술과 스포츠도 즐기는 반(半)방목형 교육이 필요하다.

필자는 수학영재가 본인의 적성과 상관없이 의대로 진학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으나 임상 분야뿐 아니라 의과학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너징(nudging)'하기도 했다. 이달 오슬로에서 열린 63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는 한국 고등학생 6명이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를 받아 104개 참가국 중 종합 2위에 올랐다. 이번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획득한 웅진 수학영재 3명을 포함한 한국 대표 6명이 세계적인 수학자, 과학자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6·25전쟁을 겪은 세계 최빈국 한국이 응용과학 발전에 힘입어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됐다. 이제는 기초학문 수학, 과학 분야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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