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시각] 노력의 귀환, 갓생 살기의 시대

2022. 7. 3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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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 말하면 꼰대였는데
성실함의 미덕이 다시 뜬다
불안한 청년 몸부림일 수도
한때 청년 세대에 '노력'이라는 말은 광범위한 거부의 대상이었다. 청년들에게 노력하라고 말하는 이들은 '노력충'이나 '꼰대'로 불리며 비난받았다. 이미 노력하며 살아왔고,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게 없으니 노력하라는 얘기는 그만 좀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분위기는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청년들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자발적으로 사는 이들을 '갓생'('GOD'과 '인생'이 결합된 신조어)을 산다며 추앙한다. 게으름이나 놓아버림은 더 이상 찬양의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자책해야 하는 일에 가깝다.

부지런하게 N잡(여러 개 직업)을 가지면서 빈틈없이 삶을 다양한 부업과 정체성으로 채우는 이들도 닮고 싶은 대상이다. 게으르게 늘어져 있는 것보다는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일, 즉 크고 작은 수입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들을 부지런히 만드는 이들이 부러움을 받는다. 가령 블로그를 운영하며 광고 수입을 얻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으로도 소소한 협찬 상품을 얻고, 크몽이나 탈잉 같은 서비스를 통해 부수입을 얻으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이들이 일종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반면 기존의 '너무 열심히 살지 말고 그냥 놀아'라든지, '노오오력 해도 소용없으니 욜로로 살아' 같은 식의 유행은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많은 청년이 열심히 살면서 삶을 바꾸고 싶어한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 어떻게든 큰돈을 벌어 경제적 자유를 얻으면, 그다음부터는 온 세상을 여행하며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고 설파하는 이들이 자기계발이나 재테크 시장을 평정하고 있기도 하다.

한때 청년 세대는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쌓는다고 여겨졌다. 그러면서 더 이상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포기'가 일종의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그런 트렌드는 사라지고 다시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은 물론이고, 그에 더해 온갖 부업까지 더하는 단군 이래 최대의 '노력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결혼, 출산, 육아 등을 포기한 N포 시대 이후 노력의 시대가 귀환했다. 그런데 이 노력은 결혼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노력이다.

많은 청년이 결혼이나 출산, 집은 포기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을까?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 남는다. 해외여행, 명품이나 외제차 구입, 골프나 서핑 등 다양한 경험을 향한 꿈이 피어오른다. 이 이상은 전통적 가치관에 따라 이뤄지는 결혼, 출생, 내 집 마련이라는 통념적인 목표 의식보다 더 화려하고 목마른 데가 있다. 나 자신을 위한 시간만이 남은 미래는 거대한 구멍처럼 끝없는 갈망과 노력을 불러일으킨다. 인생에 결혼과 육아 같은 '다음 단계'란 없다. 있는 건 오로지 나를 위한 끝없는 현재들이며, 그를 위한 무한한 노력, 그리고 화려한 소비다.

그렇기에 성실함으로 무장한 '갓생' 살기의 바로 옆에는 '번아웃'이 놓여 있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없다는 느낌은 상당수의 청년 세대가 공유하는 정서이기도 할 것이다. 이 묘한 시대의 풍경은 개미지옥을 떠올리게 한다. 청년들은 과거 인생의 기준들을 포기했고,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자기 만족을 알아간다. 그러면서 갓생 살기의 무한한 노력, 자기 착취와 휘발적인 노동, 화려한 소비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이 기묘한 순환이 이어지면서 과연 청년들이 무엇을 얻고 잃고 있는지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 노력의 귀환은 그만큼 불안정해진 시대를 지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자리 잡은 자기 만족적인 소비의 시대, 동시에 집 한 칸 마련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도 불가능해진 시대에, 청년들은 정신없이 노력하는 N잡러라도 되지 않으면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됐을 수도 있다. 갓생 살기는 천상의 삶을 향한 건전한 목표의식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게 불안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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