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국인 벽에 부딪힌 '대기업 총수 지정' 이참에 폐지하라
대기업집단 총수(동일인)를 지정해 기업 내부거래를 간섭·규제하는 방식이 개방경제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대착오적 규제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외국인도 대기업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다음달 1일 입법예고하려다가 멈칫하고 있다. 공정위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려고 했는데 이에 대해 미국 정부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대기업집단의 총수로 지정되면 배우자와 친인척의 보유 주식 현황은 물론이고 이들이 계열회사와 맺은 거래 내역까지 공시해야 한다. 허위 자료를 제출하거나 누락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동안에는 국내 대기업집단이라고 해도 외국인 대주주에 대해선 총수 지정을 않다 보니 내국인 역차별이라는 불만과 비판이 비등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외국인 대주주도 총수로 지정해 내·외국인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인데 미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의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이라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공정위가 지정한 대기업집단은 76곳이고 이 중 외국인이 지배하는 곳은 쿠팡, 에쓰오일, 한국GM 등 3곳이다. 이들 3개 기업의 개인 대주주를 총수로 지정하다 보면 에쓰오일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빈살만 왕세자를 총수로 지정해야 하는 정치·외교적 문제까지 생긴다. 내·외국인 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대주주를 총수로 지정하려 했더니 미국 국적 대주주와 사우디 국적 대주주를 차별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 셈이다. 미국 정부가 FTA 최혜국 조항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87년 도입된 대기업집단과 총수 지정 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희한한 제도다. 그러기에 외국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도 더 힘들다. 경제력 집중과 불공정 행위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글로벌 개방경제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외국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 중인 국내 기업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시대착오적인 갈라파고스 규제는 즉각적인 폐지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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