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 못 타는데 중책, 눈 안 와 대관령서 '기설제'도

2022. 7. 30. 00: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 〈13〉 1999년 동계아시아경기대회 사무총장
제4회 강원 동계아시아경기대회 사무총장을 맡은 필자(오른쪽)가 김운용 조직위원장(왼쪽)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박무길 기획총무부장(왼쪽 둘째)과 조규영 행사본부장(왼쪽 셋째)이 함께했다. [사진 김동호]
1998년 11월 초 임무룡 강원 부지사가 전화해 이듬해 1월 개최되는 제4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틀의 여유를 얻어 문화관광부에 어떤 대회인지 알아봤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대회로, 강원도지사 출신의 전임 사무총장이 사임하면서 공석이 됐다고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사가 신문·방송에 많이 보도됐고, 특히 10월 말 MBC 프로그램 ‘성공시대’에 출연했기 때문에 후임 사무총장으로 거론된 것 같았다.

스케이트도 못 타고, 스키는 초보 수준인 주제에 국제 동계스포츠 행사를 맡는다는 게 주제넘기도 했고, 3개월밖에 남지 않아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에서 수락했다. 당시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98년 9월 24일~10월 1일)를 마쳐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었고, 석 달 정도라면 영화제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11월 9일 오전 11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김용운 조직위원장을 미리 만나 오찬을 함께하면서 배경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부조직위원장 겸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그달 16일 파크호텔에서 열린 제4회 강원 동계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총회에서 사무총장으로 선출됐고, 다음날 오전 10시 김진선 지사를 예방했다. 11월 18일 오전 10시에 임명장을 받자마자 우선 강원일보·강원도민일보·KBS·MBC·G1강원방송·CBS 등 지역 신문·방송사를 순방하고 사무국 업무보고를 받았다.

배우 김지수, 홍보위원으로 위촉

강원 동계아시아경기대회에 참석한 윤강로 조직위원장 보좌관, 필자, 랜드히르 아시아경기연맹(OCA) 사무총장, 이승원 국제스키연맹집행위원(왼쪽부터). [사진 김동호]
동계아시아경기대회는 86년 3월 1일 일본 삿포로에서 첫 대회가 열렸고, 제2회 대회는 인도에서 개최하기로 했으나 예산과 준비 부족으로 포기해 90년 3월 9일 다시 삿포로에서 개막했다. 3회 대회는 95년 북한 삼지연 개최가 결정됐지만 92년 이를 반납해 96년 2월 중국 하얼빈에서 열렸다.

평창(용평)·강릉·춘천의 3개 지역에서 열기로 한 강원 동계아시아대회는 운영에 162억원, 경기 시설에 1493억원, 지원 시설에 89억원, 진입로 정비에 336억원 등 총사업비 2080억원이 들어가는 큰 행사였다. 도와 각 부처에서 파견된 조직위원회 직원 71명을 포함해 자원봉사자·지원요원 등 1852명이 대회운영 요원으로 일했다.

당시 춘천에선 야외스케이트장이, 강릉에선 실내 빙상경기장이, 용평에선 쇼트트랙과 개막식이 열리는 실내 빙상경기장과 알파인스키장,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경기장이 각각 막바지 공사를 서두르고 있었다. 공사장마다 진입로 공사가 한창이었고 선수촌과 프레스 센터, 국제방송센터도 공사 중이었다.

연내에 모든 공사를 마무리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11월 19일 숙소를 횡계로 옮겨 조규영 행사본부장(전 부지사), 하춘웅 경기숙박본부장, 박무길 기획총무부장, 문대상 운영부장, 남태우 지원부장, 조승기 경기부장, 엄희일 선수촌부장 등 조직위원회 직원과 합숙하면서 일심동체가 됐다. 이명섭·권혁철·이재풍·전창범·서영만·조명구·신창옥·이재균·안래현· 한현택·최원대·최건용·이윤식 과장과 많은 직원이 함께 숙식하면서 밤새워 일했다. 감사원에선 최귀수 감사관이,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선 윤강로 전문위원이 각각 파견됐다.

대회 준비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 김진선 강원도지사, 필자, 명호근 쌍용양회 사장, 성상우 문광부 체육국장, 이태선 쌍용양회 부사장. [사진 김동호]
12월 3일 제13회 아시아경기대회(98년 12월 6일~20일)가 열리는 태국 방콕으로 날아갔다. 그달 5일의 아시아경기연맹(OCA) 총회에서 대회 준비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최종 승인을 받아야만 개최할 수 있는 중요한 회의였다. 김운용 조직위원장, 김진선 집행위원장과 함께였다. IOC와 OCA의 합동 회의로 이렇게 큰 국제회의 참가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보고 내용을 여러 차례 수정하고 이를 영문으로 작성해 발표했다. 적지 않은 질문이 있었지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9일 귀국한 뒤 용평에서 강릉·춘천과 서울을 오가면서 공사 현황을 점검하고 유관기관·병원·공항·군부대 등을 순방하면서 협조를 구했다. 19일에는 강릉실내빙상경기장이, 20일에는 춘천 실외 빙상경기장이 준공되는 등 모든 경기장이 완공됐고, 23일에는 국가대표 친선경기대회가 열렸다.

1월 6일 김용운 조직위원장과 김진선 집행위원장이 참석한 준비상황 종합보고회의를 열었다. 1월 9일부터는 조직위원회를 현장 운영체제로 전환해 각 현장에 운영 요원을 배치 근무토록 했다. 용평리조트 종합관리동 2층에 있는 내 사무실에 종합상황실을 마련하고 24시간 운영했다.

8일 새벽에 서울로 가서 오전 10시에 신낙균 문화관광부장관과 헬기에 동승해 용평에 도착했다. 종합상황실에서 준비상황을 보고한 뒤 경기장 일대를 안내했다. 그달 25일에는 자원봉사자발대식을, 27일에는 109연대 안전요원 발대식을 각각 열었다.

앞서 26일에는 태백산 천제단에서 성화를 채화했다. 이 행사를 위해 12월 22일 강추위 속에 현장을 답사한 뒤 채화 행사를 주관했다. 예년에는 눈이 많았다는데 이해에만 눈이 내리지 않아 애를 태웠다. 눈이 내리기를 기원하면서 1월 26일 김진선 지사, 권혁승 평창군수와 함께 대관령 정상에서 ‘기설제’를 지냈다. 결국 각 스키 경기장에 제설기로 인공눈을 뿌렸다.

대회 직전인 99년 1월 26일 대관령 정상에서 기설제를 지내는 필자. [사진 김동호]
1월 27일 오전 11시 중국선수단의 입촌식에 이어, 오후 3시엔 한국선수단이 입촌해 대회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전문분야이기도 한 홍보에 치중했다. 당시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98년 12월 6~20일) 때문에 동계아시아대회는 전혀 기사화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에서 우선 각 언론사 체육부장들을 만났다. 89년 헝가리 순방에 동행했던 동아일보 남달성 기자가 체육부장을 맡고 있었다. 12월 20일 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나자 12월 21일 자에 ‘이제는 동계아시아경기대회다’라는 제하에 특집판이 나갔다.

12월 19일의 강릉실내빙상경기장 준공을 앞두고 16일에 강릉기자단을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열었다. 17일엔 각사 체육부장을 초청해 경기장을 안내했다. 오찬 간담회 뒤 용평으로 이동해 각 경기장을 돌아봤다. 그 뒤 신문·방송 보도가 줄을 이었고, 26일 오후 7시 30분엔 KBS ‘열린 음악회’가 현지에서 열렸다.

1월이 되면서 4일엔 방송드라마 ‘보고 또 보고’로 인기 상승 중인 배우 김지수를 홍보위원으로 위촉했다. 방송관계자 연석회의(5일), KOC기자단초청 현장안내(18~19일), 외신기자 오찬(22일)과 각 언론사의 개별인터뷰 등으로 대회 준비상황을 대내외에 알렸다.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직후 홍보 치중

98년 12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OCA 총회에 참석한 필자(앞줄 오른쪽). [사진 김동호]
개막일이 다가오면서 개·폐막식 행사 준비에 온 힘을 쏟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예술원 회원 신봉승 작가가 전체 대본을 맡았고, 표재순·유경환 감독이 연출을 담당했다. 조흥동·유옥재·박명숙이 안무를 맡았다.

마침내 1월 30일 오후 3시 용평실내빙상경기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이 열렸다. ‘찬란한 여명’을 주제로 서울예술단 70명이 출연하는 식전행사(10분)에 이어 선수단 입장과 환영사·대회사·개회선언과 대회기 게양, 성화 점화 등 공식행사가 끝났다. 그 뒤 ‘하늘, 땅, 사람’을 주제로 서울예술단, 강원대 무용단과 정선고 학생들이 출연하는 20분간의 식후 행사가 이어졌다.

그 뒤 7일 동안 21개국 827명의 선수가 겨루는 열띤 경기가 펼쳤다. 폐막식을 하루 앞둔 2월 5일 저녁에는 춘사영화제 시상식이 열렸고 많은 감독과 배우들이 참석해 열기를 고조시켰다.

드디어 2월 6일 오후 6시 용평실내방상경기장에서 폐막식이 열렸다. 박명숙이 안무하고 서울예술단과 성산초 학생들이 출연하는 식전행사와 ‘영원한 우정’을 주제로 서울예술단과 출연진 전원이 참석한 식후 공연(유옥재 안무)을 끝으로 행사가 막을 내렸다. 금상첨화로 1·2회 때는 3위, 3회 때는 4위였던 한국 선수단의 종합 성적이 2위로 올랐다.

대회가 끝난 뒤 청산인으로 선임돼 99년 12월 말까지 관련 업무를 진행했다. 운영비를 절감한 30억원의 잉여금을 강원도의 동계스포츠 시설 확충에 사용하라고 증여한 뒤 사후 청산까지 깨끗하게 마무리했다. 동계아시아경기대회라는 대규모 국제대회를 운영하고, 동계스포츠를 알게 해 준 귀중한 체험의 기회였다. 대회 기간 나에게 올바른 판단과 지혜를 준 조규영·박무길·이명섭·남태우·전창범 등 함께 일했던 많은 강원도 공직자와 윤강로·이재풍 등 각 부처 및 유관 기관의 파견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