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지구 끝까지' 쫓겠다더니..서울 경찰서 3분의 1은 엘리베이터도 없다
'편의시설 미비' 경찰서 8곳은 1년 넘도록 '나 몰라라'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1층에 있는 휴게공간에서 조사받은 적이 있어요.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 근처 건물 화장실을 찾아가거나, 이마저도 없으면 지하철역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장실이 있더라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아 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서울 지역 31개 경찰서 3곳 중 1곳에는 승강기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인 장애인 단체의 불법행위를 엄단하겠다며 출석을 요구한 경찰이 정작 이들을 조사할 수 있는 환경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산하 31개 경찰서 4곳 중 1곳은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검 결과에도 1년 넘도록 아무런 시정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경찰관서 장애인 편의시설 점검 현황표’에 따르면, 2022년 7월 현재 장애인 등의 이동 편의를 위한 계단 또는 승강기를 갖추지 않은 서울경찰청 산하 경찰서는 10곳인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경찰서는 서울 중부·종로·서대문·혜화·용산·성동·구로·서초·양천·은평경찰서로 서울 지역 31개 경찰서의 32.3%에 이른다. 공공기관에는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이나 임산부 등 이동에 제약이 따르는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돼야 한다는 규정이 법률에 있는데도, 다수의 경찰서에서 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점검 당시 발견된 장애인 등을 위한 편의시설 미비 문제가 이달까지 시정되지 않은 경찰서도 8곳으로 25.8%에 달했다. 중부·종로·서대문·혜화·용산·관악·구로·양천경찰서가 해당 경찰서다.
승강기 미설치 외에도 화장실이나 주차구역 등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매개시설(주차구역), 내부시설(출입구·복도), 위생시설(대·소변기), 안내시설(점자블록), 기타시설(장애인 접수대·임산부 등을 위한 휴게시설) 등 5개 유형으로 나뉜다.
이 5개 유형의 14개 항목에 대한 점검 결과, 서울경찰청 관내에서는 서대문경찰서가 6개 항목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거나 불량한 상태로 가장 점수가 나쁜 경찰서로 꼽혔다. 7월 현재 점검표상 서대문서는 주출입구 높이 차이를 제거하지 않았으며, 장애인 등을 위한 승강기·세면대·유도 및 안내설비·경보 및 피난설비, 임산부 등을 위한 휴게시설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서대문서 관계자는 “경찰서 한쪽에 휠체어 이동 도로를 만들어 본관 1층으로 이어지도록 했고, 도움벨을 달아놨다”며 “건물을 신축할 예정인데,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편의시설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점검표상 14개 항목의 편의시설을 모두 갖춘 것으로 파악된 서울 시내 경찰서는 성북·마포·영등포·동작·광진·서부·금천·강서·강동·송파·노원·도봉서 등 12곳이었다.
경찰서 내 장애인 편의시설 미비 문제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출근길 시위를 벌이다가 입건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의 출석 문제로 최근 불거졌다. 출석 요구를 받은 이들은 서울 혜화·용산·종로서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돌아갔다. 앞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달 20일 전장연 시위에 대해 “불법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조사대상자들이 자진출석을 했는데도 경찰서 내 이동이 어려워 조사가 불발된 것이다. 경찰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남대문경찰서에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전장연은 “법에서 정한 편의시설조차 갖추지 않은 경찰의 꼼수”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은주 의원은 “경찰청은 매년 정기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장애인 편의환경 개선 계획을 수립해 적극 집행해야 한다”며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개선된 사례도 있는 만큼, 전국 경찰관서들은 자체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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