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초선 32명 "비대위 전환" 성명서
국민의힘이 29일 격랑에 휩싸였다. 배현진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고 친윤석열(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초선의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렸다. 김기현·안철수 등 차기 당권주자들도 사실상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의 직무대행 사퇴를 요구했다. 권대행이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총질 당대표” 문자메시지를 노출시킨 지 3일 만이다.
권 대행은 최고위에서 당장은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지만, 친윤계 내에서 고립되는 모양새가 되자 최고위원 추가 사퇴 등을 전제로 “비대위로 가는 것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준석 대표 측은 당헌당규 해석을 앞세워 비대위 체제에 반대하고 있어 지도체제를 둘러싼 갈등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친윤계 배현진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전격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배 최고위원은 최고위 후 “마땅히 책임져야하고 끊어내야 할 것을 제때 끊어내지 못하면 더 큰 혼란이 초래된다”며 “지금이라도 누구 한 사람이라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밝혔다. 권 대행을 비롯한 다른 최고위원들에게 사퇴를 통한 비대위 체제 전환을 압박한 것이다.
다른 최고위원들은 일단사퇴 동참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 대표와 가까운 김용태 최고위원은 통화에서 “(최고위에서) ‘당헌당규의 원칙대로 가야 한다. 저는 사퇴 의사가 없고, 당정의 안정을 위해서는 권 대행 체제가 안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정미경 최고위원도 “권 대행은 계속 성장하는 분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수습해서 가야한다”고 말했다.
배 최고위원이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 친윤계 박수영 의원은 당 초선의원 63명 전원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최고위원직을 던진 결단을 존중하며 신속한 비대위 전환을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올려 동참을 호소했다. 박 의원 등은 성명에서 “언론에는 연일 당 지도부의 실수와 내분이 보도되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과 당대표 직무대행의 사적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메시지까지 공개돼 원내대표가 잇달아 3번이나 사과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며 “현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신속히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 당을 정상화시키고 윤석열 정부의 개혁입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데 매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용·유상범·박성민 등 친윤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과반인 32명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요구가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하는 의원들도 상당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의원 등은 성명서를 이날 오후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박 의원은 초선의원 총회 개최 등을 추진할 계획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당 지도부의 결단을 보고 그게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또 다시 액션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에서 초선의원들로 구성된 원내부대표단을 만나 의견을 수렴했다. 송 원내수석은 “(비대위 전환은 당헌당규) 해석상 문제도 있고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며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성명은 이전부터 준비된 것으로 전해졌다. 성명에 참여한 한 의원은 “박수영 의원이 주변의 초선·재선의원들과 사전에 성명을 준비한 것으로 안다”며 “혼자 돌출행동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내부총질” 문자 유출을 계기로 친윤계 내에서 권 대행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고 한다. 전날 이철규 의원의 이 대표 정면 비판, 이날 배 최고위원 사퇴 및 초선의원 성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당내 움직임이 비대위 체제 전환을 노린 친윤계의 준비된 행동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이 최근 여당 지도부에 현 대행 체제보다 비대위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내 친윤계의 움직임에도 윤심이 개입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당 관계자는 “(대통령실의 비대위 전환 요구가) 굉장히 강하다”고 말했다. 양금희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결국 대통령 의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의원들 입장”이라고 전했다.
당대표를 노리는 인사들도 이날 최고위 시작 전 사전에 약속한 듯 권 대행 체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김기현 의원은 SNS에 “지금은 비상시기다. 비상조치가 필요하다”며 지도부에 “선당후사”를 요구했다. 김 의원은 비대위 체제 후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원한다. 안철수 의원은 BBS 라디오에 출연해 “이 대표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는 직무대행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의원총회에서 권 대행) 재신임이 안 되면 조기 전대로 가야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안 의원이 조기 전대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비대위 전환을 둘러싼 내홍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비대위 관련 당헌 조항을 두고 각자 이해에 따라 해석이 엇갈린다. 국민의힘 당헌 상 최고위 기능이 상실돼야 비대위 체제로 갈 수 있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기능 상실’을 규정할 것인지가 문제다. 당내에서는 최고위원 정원 9명 중 5명 사퇴, 김재원 전 최고위원과 이 대표를 제외한 현원 7명 중 4명 사퇴, 전원 사퇴가 ‘기능 상실’ 기준이라는 주장이 제각각 나온다.
이 대표 측은 비대위 체제 전환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김용태 최고위원은 “노조 (지도부) 등에 대한 대법원 판례나 법제처 유권해석을 보면 총사퇴해야 기능 상실로 본다”며 “(최고위원) 1명이 남아도 원칙적으로는 최고위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워왔던 조수진 최고위원도 “당헌당규 상 비대위로 가려면 전원이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대행은 최고위에서 “대통령을 내가 설득해 볼 테니 주말까지 기다려 달라”며 당장은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윤심과 친윤계가 함께 권 대행을 압박하는 모습이어서 권 대행이 오래 버티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권 대행은 이날 오후 경향신문에 “비대위 체제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비대위 전환 요구에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다만 권 대행은 최고위원 2명 이상 추가 사퇴(총 9명 중 5명 부재)와 당대표와 대표 권한대행 외에 직무대행도 비대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당헌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권 대행은 다음주부터 4선 이상 중진 등 선수별로 의원들을 만나 사태 수습을 모색할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위 전환이 현실화되면 이 대표가 비대위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표가 6개월 당원권 정지 후 복귀할 길이 차단될 수 있어서다.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더 큰 혼란이 예상된다. 정미경 최고위원은 “(최고위원 사퇴를 통한 비대위 전환은) 꼼수”라며 “비대위로 가면 (이 대표에게) 제명과 같은 효과를 주는 것이라 법률적인 가처분 대상”이라고 말했다. 한 친윤계 의원은 “최고위원 과반이 사퇴를 하면 비대위로 가는 것”이라면서도 “문제는 누가 비대위원장으로 올 것인지, 당원권 정지 징계 후 이 대표가 다시 돌아오는 것인지 등을 놓고 분란을 만들 소지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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