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무함마드 왕세자, 유럽 순방으로 존재감 과시..에너지 가격 급등에 사우디 인권 탄압 눈감는 유럽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2018년 10월 자국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이후 처음으로 그리스, 프랑스 등 유럽국을 순방하며 외교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카슈끄지 암살 지시 의혹을 받고 있다. 유럽국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급등세를 완화해 줄 해결사로 무함마드 왕세자를 불러들이면서 그의 이미지 세탁만 도와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업무 만찬을 갖고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과 에너지 수급, 양국 경제협력, 이란 핵합의 복원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두 사람이 상당히 긴 시간 악수를 했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나갔다고 전했다. 회담 후 프랑스 대통령실은 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파급력을 완화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앞서 프랑스 정부 관계자는 사우디 인권 문제를 의식한 듯 “일반적인 인권에 관해 이야기하고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이라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치솟은 에너지 가격과 이란 핵합의 문제 등을 논의하는 데 필요한 만남”이라고 말했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도 러시아가 유럽국들로 가스 공급을 수시로 차단하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주요 에너지 공급국 지도자와 대화할 수밖에 없으며 국민들도 이해해줄 것이라고 두둔했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가스 공급 축소로 맞서자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 등 대체 공급처를 물색하고 있다. EU의 러시아산 원유 단계적 금수 조치 등에 따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에 줄곧 석유 증산을 요청했다. 사우디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는 다음주 회의를 앞두고 있으며, 서방 국가들로부터 대규모 증산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달 배럴당 115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 유가는 최근 다소 떨어졌지만, 미국 원유재고 감소 등 수요회복이 겹치면서 다시 배럴당 100달러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날 무함마드 왕세자와 마크롱 대통령의 회담을 두고 인권단체들은 프랑스가 사우디의 인권탄압에 눈 감고 있다며 반발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마크롱 대통령이 인권 보호에 관한 강력하고 구체적인 약속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미지 세탁만 도와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무함마드가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든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든 살인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 ‘아랍 세계를 위한 민주주의(DAWN)’는 이날 파리 사법당국에 무함마드 왕세자를 카슈끄지에 대한 납치와 고문을 공모한 혐의로 고발했다. DAWN은 무함마드 왕세자는 국가 원수도 아니며 프랑스는 고문과 납치를 반대하는 유엔 협약 당사국으로서 그를 조사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무함마드의 유럽국 순방으로 “사우디가 세계 에너지와 투자 분야에서 중요한 국가라는 위상만 재확인됐다”면서 “마크롱 대통령은 물론 세계 지도자들의 간청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앞서 지난 26일 그리스에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와 회담 뒤 수소연료 개발 협력을 약속하면서 그리스를 유럽의 수소 허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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