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이 만난 사람] 아프간 특별기여자 나지블라 "한국에 감사..취업한 공장에서 엔지니어 되고 싶다. 두고온 가족 매일 그립다"
"한국 도착하자마자 많은 이웃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하고 도움 줘..가족과 함께 안전함 느꼈다"
"아프간에선 국제기구 사무직, 한국에선 공장 취업해 기술 배우는 새로운 경험..이 회사에서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
"아프간에 남겨진 가족들 걱정, 매일 그립다..탈레반 정권 물러나면 다시 귀국 희망"
"한국은 선진국..이민자들을 지원하고 도움 필요한 이민자들에게 문호를 열어주길 기대"
■ 방송시간 : 7월 29일(금) 16:00~17:00 KBS1
■ 진행 : 범기영 기자
■ 출연 : 이경호 / KBS 해설위원
https://youtu.be/lPu-8UeM9F8
◎범기영 매주 금요일 사만사, 사사건건이 만난 사람 시간입니다. 오늘은 작전명 미라클로 한국에 온 특별 귀화자들이죠? 아프가니스탄인들을 만나고 왔군요. 이경호 해설위원입니다. 안녕하세요?
▼이경호 안녕하세요?
◎범기영 391명, 그때 들어왔었죠?
▼이경호 국내 입국한 아프간 협력자, 배우자, 자녀 등 391명이고요. 가족 수로는 일흔아홉 가족입니다. 난민 신분으로 들어온 건 아니고요. 특별 기여자 신분으로 입국했습니다.
◎범기영 그렇죠. 난민이 아니라 특별 기여자. 어떻게 지냅니까, 이분들?
▼이경호 올해 2월까지 한 6개월 정도 교육을 받고요. 2월부터 한국 생활 정착을 시작했는데요. 대부분 이제 울산에 계시고 나머지 가족들이 또 이렇게 전국 곳곳에 흩어져서 가족끼리 생활하고 있습니다.
◎범기영 그중 한 가족 만나고 오셨죠?
▼이경호 네, 화면 통해서 한번 만나보시죠. 제가 만난 분은 30대 후반의 나지블라 씨 가족인데요. 아내와 아들 셋, 그리고 한국 입국 후에 출산한 딸, 이렇게 다섯 식구입니다. 먼저 집 소개부터 받았습니다.
제가 만난 분은 30대 후반의 나지블라씨 가족, 아내와 아들 셋,
그리고 한국 입국 후 출산한 딸 이렇게 다섯 식구입니다.
먼저 집 소개부터 받았는데요.
<녹취> 하시나 사이디 / 아내
우리 집 두 방 있어요.
하나 방 여기 있어요. 아이들, 아마드, 첫 번째 아들, 두 번째 아들 여기서 자요.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그럼 셋째는 어디서 자요?
<녹취> 하시나 사이디 / 아내
셋째 같이, 남편 같이, 막내 딸 같이 이 방에서 자요.
아이들이 넷인데요.
집이 좁아서 불편한 점은 있지만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다고 하십니다.
다복하네요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불편한 점은 있어요? 문화가 달라가지고.
<녹취> 하시나 사이디 / 아내
아니요, 괜찮아요. 한국어 괜찮아요. 지금 한국어 조금 알아요. 불편해요.
나중에 한국어 잘 알게 되면 괜찮을 거예요.
나지블라 씨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에 오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한번 들어봤습니다.
<녹취> 나지블라 사이디 / 아프간 특별기여자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한국 기관에서 거의 8년 동안 일했어요. 한국에 오기 바로 전까지는 IFAD(국제농업개발기금)와 같은 농업 개발을 위한 국제기금이나 국제단체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탈레반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바뀌었죠.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어요. 왜냐면 우리는 한국 정부와 함께 일했고, 탈레반은 연합군이나 외국인과 함께 일한 사람들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범기영 당시에 카불 공항 근처 상황이 정말 힘들었잖아요.
▼이경호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서 많이 알려지긴 했는데 또 직접 당사자시니까 당사자의 입을 통해서 당시 상황 한번 들어봤습니다.
<녹취> 나지블라 사이디 / 아프간 특별기여자
(공항 주변에 모여 있던) 군중을 뚫고 공항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들으셨겠지만, 이미 큰 폭발이 있었는데 2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거든요. 공항 게이트는 탈레반에 의해 통제되고 있어서 공항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요. 그러나 한국 정부가 아주 좋은 계획을 세웠어요. 카불 시내에 있는 매우 안전한 장소에서 버스를 빌렸죠, 우리는 그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항 게이트는 탈레반이 지키고 있었고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거의 하루를 버스 안에서 보내야 했어요. 너무 더웠지만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한국 대사관 직원이 탈레반 측과 협상해서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공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범기영 당시에 거의 전 세계 군용기가 다 카불 공항에 모이다시피 했는데 한국의 작전이 좀 성공적이었죠.
▼이경호 당시 아프간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난민들이 한 200만 명 되는데요. 유럽, 호주, 일본, 미국 같은 데로 갔는데요. 우리나라의 미라클 작전만큼 성공적인 사례가 없어서 당시 외신에서도 굉장히 호평을 했었죠. 한국을 도우면 한국도 배신하지 않는다, 이런 인상적인 탈출로 인식이 됐는데요. 또 당시 이들이 난민으로 들어오지 않고 특별 기여자 신분으로 입국을 했기 때문에 한국 여론도 되게 우호적이었습니다.
◎범기영 난민에 대한 반감은 적지 않은데 그나마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좀 도움이 됐겠습니다. 입국한 다음에는 한국 적응 교육 기간도 꽤 길었네요.
▼이경호 네, 한 6개월 정도 받았는데 한국에 입국했을 당시에 첫 소감이 어땠는지, 그리고 또 적응하는 데, 가족들끼리 나와서 적응하는 데 불편함은 없는지 한번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녹취> 나지블라 사이디 / 아프간 특별기여자
저는 굉장히 안전하다고 느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아마 저 때문이 아니라 제 가족과 아이들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제 인생에서 제 아이들은 저의 우선순위입니다. 교육을 마치고 시흥으로 왔습니다. 적십자사와 여러 단체들, 또 이웃과 많은 분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해 주고 도움을 주고 있어요. 큰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갔었는데 선생님도 많이 도와주셨고요. 이웃이나 가게 사장님들이 어디에서 장을 볼 수 있는지 알려주시면서 도와주시기도 해요.
◎범기영 두 팔 벌려 환영해줬다니까 참 좋네요. 마냥 우리가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니라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고 계신 거죠, 그러니까?
▼이경호 정부에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 한국 생활을 위해서 직장들을 소개를 해줬고요. 나지블라 씨 역시 마찬가지로 직장을 소개받았는데요. 일하는 직장에 한번 찾아가 봤습니다.
나지블라 씨가 일하는 곳은 경기도 안산시의 농업, 산업용 비닐 제조업체인데요. 250명 직원 대부분은 한국분이시고요. 외국인 직원은 나지블라 씨 포함해서 한 10여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나지블라 씨가 그중에서 유일한 아프가니스탄인입니다.
<녹취> 나지블라 사이디 / 아프간 특별기여자
네, 사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사무실에서 일했지만, 한국에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지만 한국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이 회사에서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요.
직원들이 처음에는 낯설어 하긴 했는데요. 지금은 모두가 친절하게 잘 대해주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입니다.
<녹취> 배태현 팀장 / 직장 동료
좀 낯설어하는 것도 있었는데, 직원들이 또 이렇게 근무하다 보면 그런 거는 크게 문제시 안 되고요. 지금은 잘 화합하면서, 또 우리 나지블라 말고도 외국 사람 있거든요. 다 융화가 잘 되면서 근무 열심히 하고 있는 환경입니다.
나지블라 씨 첫째 아들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요. 또 학교 생활도 궁금해서 한번 학교에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인싸네요.
친구들이 아주 많습니다.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아마드, 학교 다니는 건 재미있어요?
<녹취> 아마드 / 시화초등학교 1학년
네, 재미있어요.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어떤 게 제일 재미있어요?
<녹취> 아마드 / 시화초등학교 1학년
공부하면서 놀이하면서 그게 좋아요.
◎범기영 좋다니까 좋습니다. 아프간 특별 기여자 절반이 의료 인력이라고 제가 들었고, 대부분 NGO 이런 단체 소속도 많았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이 들어와가지고 적응하기가 쉬웠겠나, 이런 생각이 들긴 해요.
▼이경호 다행히 나지블라 씨 가족 같은 경우 카불에서 탈출한 다음에 또 가족들 같은 경우 카불에서 좀 떨어진 다른 도시로 가 있어서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에 그런 마음, 심적인 부분들은 좀 덜하다고 합니다. 이야기 한번 들어봤습니다.
<녹취> 나지블라 사이디 / 아프간 특별기여자
매일 가족들이 그리워요. 특히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다른 어머니들처럼 한국에 있는 손주들을 그리워하세요. 하지만 다행히 한국의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해서 영상통화를 할 수 있어요. 가족들이 인터넷을 할 수 있고, 저도 인터넷을 하기 때문에 주말마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리운 가족을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고 하시는데요. 탈레반 정권만 물러난다면 귀국하고 싶은 마음, 아주 크다고 하십니다.
<녹취> 나지블라 사이디 / 아프간 특별기여자
물론이죠. 지금 아이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저한테는 아이들 교육이 가장 우선이에요. 아주 좋은 교육을 받고 있거든요. 하지만 언젠가 아프가니스탄이 안전해져서 돌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저는 제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요.
◎범기영 그렇겠죠. 아무리 안전하고 이웃들이 환영해 준다고 해도 고국만 하겠습니까? 그런데 아프간 현지 상황이 좋지 않잖아요.
▼이경호 여전히 그래서 가족이 걱정되고요. 한국이 또 이렇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니까 이제 문호를 개방해가지고 외국인 이민을 좀 해줬으면, 받아줬으면, 이런 생각이 있으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아프가니스탄 현지에 남아 있는 가족들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범기영 그렇겠죠. 들어볼까요?
<녹취> 나지블라 사이디 / 아프간 특별기여자
네, 한국이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다릅니다. 이곳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 정부와 함께 일한 ‘특별기여자’이고, 한국은 선진국입니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미래에는 한국 정부 또한 이민자들을 지원하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민자들에게 문호를 열어주길 기대합니다.
▼이경호 마침 현 정부에서 이민청 신설한다, 이런 얘기도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이민이라는 게 또 양질의 노동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 이런 문제이기 때문에 관련 부서들도 굉장히 많고요. 하지만 또 여전히 국내적인 정서는 좀 남아 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는 정서는 남아 있기 때문에 잘 거부감 줄이고 합리적인 방안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범기영 마무리하죠. 이경호 해설위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민 정책을 산업 인력 또 노동력 관점에서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좀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선진국이라는 한국은 이민자들, 특히 박해받는 난민들을 받아들일 준비, 하고 있을까요? 사실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까지 우리도 난민이었습니다. 주말 시원하게, 안전하게 잘 보내시고요. 사사건건, 월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다. 8월에도 4시엔 사사건건.
최정근 기자 (jkcho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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