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잿값 올라 힘든데, 400만원짜리 원가계산 분석 또 받으라니요"

김진주 2022. 7. 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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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계약단가 올리려면 때마다
수백만 원 들여 원가계산 분석받아야
"영세업체들 못 버텨.. 납품 포기"
게티이미지뱅크

#. 조달청 나라장터에 용접철망을 납품하는 A씨는 올해 초 400여만 원을 들여 제품 원가계산 분석을 받았다. 지난 한 해 동안 치솟은 원자잿값을 계약 단가에 반영해달라 했더니 조달청에서 근거 자료가 필요하다며 원가조사 업체를 통해 분석을 받아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가 분석을 하는 한두 달 사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원자잿값이 또 한 번 크게 뛰어올랐다. A씨는 조달청에 이와 같은 사정을 설명했지만, 조달청은 다시 원가 조사를 받아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원자잿값이 언제까지, 얼마나 치솟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A씨는 납품을 포기했다.

#. 승강기 업체를 운영하는 B씨도 최근 비슷한 문제로 납품을 중단했다. B씨는 여러 모델의 승강기를 납품하다 보니 가격을 올리려면 일일이 원가계산을 해야 하는데, 한 번에 1,000만 원 이상이 들어 아예 납품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29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최근 업계 내에서 조달청의 납품 단가 인상 절차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납품 단가를 내릴 때는 별도의 증빙자료 없이 업체가 희망하는 시기에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반면, 올릴 때는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계약법상 계약 금액 인상 요구는①계약을 맺은 뒤 90일이 지나고 ②물가가 3% 이상 뛰었을 때 가능하다. 이 경우 업체는 계약 때 단가 산정 방법과 같은 방식으로 물가 상승을 증명해야 한다. 가령 계약 당시 세금계산서를 바탕으로 단가를 산정했다면, 인상 요구시 현 시점의 세금계산서를 내야 한다. 다만 같은 방법을 사용하기 어려우면 다른 방식도 가능한데, 대개는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원가 조사 업체에서 원가를 새롭게 계산해 인상률을 결정한다. 이 경우 단순 재료비 인상뿐 아니라 노무비, 경비 등도 모두 반영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과 비용이다. 원가계산 비용은 업체별, 제품별로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수백만 원 이상 든다. 납품하는 제품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분석 대상도 많아지기 때문에 부담은 더 커진다. 게다가 분석에 한두 달가량 걸려 그 사이 원재잿값이 급등하면 분석을 또 받아야 한다.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원자잿값이 들썩일 때는 사실상 대책이 없는 셈이다.

A씨는 "매일 아침 눈뜨면 원자잿값이 올라 있는데, 오를 때마다 수백만 원을 들여 원가계산을 하면 우리 같은 영세업체들은 어떻게 버티겠느냐"며 "그러잖아도 고물가·고금리 때문에 회사가 휘청이는데 이 방식을 고수하면 원가계산을 계속할 수 있는 일부 업체들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조달청은 "법에 따른 조치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달청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계약 금액 인상은 국고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반드시 근거자료가 필요하다"며 "조달청 담당자 1명이 수십, 수백 개 업체를 맡고 있어 일일이 원가계산을 해줄 수 없고, 그만한 전문성도 없어 업체보고 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빗발친 문의에 나름 대책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 측 설명이다. 같은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 대표 품목을 정해 원가계산을 한 번만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제품의 모양이나 재질 등이 같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제품 규격·재질 등이 크게 차이가 없는 광고물이나 맨홀 뚜껑 등은 이 같은 방식으로 원가계산 비용과 시간을 아꼈다. 하지만 가구류처럼 모양이 제각각이면 일률적으로 원가계산 적용을 받을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단서 조항이 있다 보니 조달청과의 협의 과정에서 요건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있다"며 "이 경우 결국 개별 업체가 각자 원가계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요즘과 같은 특수 상황에 한해서라도 '생산자물가지수'와 같은 공신력 있는 지수를 바탕으로 품목별 계약 단가를 올려 기업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생산자물가지수는 국내 기업이 내수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의 변동을 종합한 지수로, 한국은행이 매달 공표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언제고 반복될 수 있다"며 "개별 업체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절차를 좀 더 단순화하고, 탄력적으로 가격 변동을 반영할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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