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노동자'와 '선한 학생들'은 없다..우린 모두 노동자다
[안예린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학생회관 앞 불법시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에브리타임(학내 커뮤니티)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시위를 미신고 집회로 고발하고 638만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 세 명의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수많은 언론사가 취재하기 시작하면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소식도 같이 알려졌다.
고발한 학생의 이야기에 언론이 떠들썩한 것과 대조적으로 학내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주목받지 못했다. 학생운동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고들 말하지만, 자신이 속한 학교를 쓸고 닦고 지키는 노동자들을 같은 학내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사실 끊긴 적이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와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가 함께 주관하여 각 학내 학생들의 목소리가 연결될 수 있는 네트워크인 '대학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한 청년학생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연세대, 고려대, 서울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에서 '우리 학교'의 투쟁뿐만 아니라 대학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보자고 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글로 담는다.(필자)
"당신이 부끄러웠으면 좋겠습니다."
'학생회관 앞 불법시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에브리타임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 분회가 매일 학생회관 앞에서 메가폰을 틀어놓고 시끄럽게 시위해서 수업을 방해"받았으며,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할 계획이고, 앞으로 불법 집회 한 번 할 때마다 100만원을 배상하게끔 하는 가처분 신청도 낼 예정"이라고 하였다.
'미신고 집회' 고발과 638만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 세 명의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이야기에 수많은 언론사가 귀를 기울였다. 동시에 연세대학교에 학내 노동자의 집회를 연대하고 지지하는 학생들이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레 알려졌다. 연대의 목소리를 알린 학생들의 선두에 해슬이 있었다.
자신과 같은 학교의 학생이 학내 노동자들을 고소·고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해슬은 피가 끓는 기분을 느꼈다. 이 문제를 당장 공론화 하고 투쟁에 연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브리타임에 학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글을 올렸지만, 1시간도 안 돼서 익명의 누군가에 의해 글이 신고 되어 삭제되었다. 해슬의 계정은 정지되었다. 친구에게 같은 글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그 친구의 계정도 정지되었다.
해슬은 이 문제가 인터넷 커뮤니티 속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을 수정해 대자보를 쓰고 연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200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기꺼이 자신의 이름을 대자보에 올리겠다고 연서명에 동참하였다. 학내 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하는 여론이 모이자 투쟁에 연대하는 학생들을 불러 모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해슬은 자신이 "연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야겠다"라는 '어쭙잖은 사명감'을 가졌다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고소 소식을 듣고 이틀 동안 분노스럽고 답답한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
해슬이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중대한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2학년 때 학생회장을 할 때였다. 한 교수가 강의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사건이 터졌다. 밤낮없이 기자들에게 전화가 쏟아졌고 하루에 2시간을 자면서 일을 해야 되었다. 해슬은 몸과 마음이 지치는 것을 느꼈다. 피로감이 쌓여 어디로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국 LA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코로나가 터지면서 미국의 기숙사에서조차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들었던 가장 큰 감정은 허탈함과 허무함이었다. 해슬이 노동운동을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뭔가 어디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 그런 와중에 또 알량한 정의감"이라고 그녀는 표현했다. 그녀는 멋있는 선배들을 따라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가입했다.
우리 모두의 투쟁이 될 때까지
가장 인상 깊은 투쟁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해슬은 망설이지 않고 한국어학당 노동자들의 투쟁을 꼽았다.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노동자들은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들로, 강의 외 노동시간을 무급으로 강요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한국어학당 시간 강사 노동자들은 석사 이상의 학력을 조건으로 채용되었다.
해슬은 투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그들 중에 자신이 노동조합에 가입한다는 것, 노동조합에 소속된다는 것에 불쾌함을 느낀 조합원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이후 집회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조합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공부를 했다고 해서 노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이 사회에서 누군가의 돈을 받아먹고 산다면 다 노동자이고 내가 제공한 노무에 대해서 적절한 임금을 받을 의무가 있으며, 그것이 사회적 책무이다."
조합원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현장이었다.
해슬은 한국어학당 노동자들이 겪은 고민이 학생들의 고민과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자신의 미래를 블루칼라가 아닌 화이트칼라로,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그리고자 하는 학생들의 열망은 한국어학당 노동자들이 그리는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과 한국어학당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노동자로, 혹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우리 모두의 투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해슬의 생각은 달랐다.
"마르크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구절이 있잖아요,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 때는 소를 몰며,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하면서, 그러면서도 사냥꾼으로도, 어부로도, 목동으로도, 비평가로도 되지 않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이상주의자인 마르크스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말만큼은 되게 인상 깊었거든요."
해슬이 생각하는 노동은 사회적으로 부여된 자격이나 품위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지금 하고 있는 이것이 노동이라고 생각했다.
해슬은 학생들의 그런 인식에서 학생운동의 딜레마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높은 학력, 사무직이라는 직종은 '노동'이 아닌 고결한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는 것.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학생들이 스스로를 '노동자'와는 다르게 생각하도록 하였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스스로를 투쟁의 주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회에 가면 학생들은 되게 선하고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너무 착한 존재, 이렇게 받아들이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면 같은 학내 구성원으로 시작된 투쟁이 '투쟁의 주체인 노동자'와 '선한 학생들'로 나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그렇지만 희망은 있다. 한국어학당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스스로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얘기인 것을 알지만 우리가 다 같이 이 모든 게 노동이라는 걸 인식하고 나가야 한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다면 그런 인식도 차츰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 채워나갈 나의 운동
학교라는 공간에는 학생들이 있다. 그리고 교수, 행정 직원들이 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학교의 구성원'이라고 당연히 받아들인다.
그런데 학교라는 공간을 쓸고 닦고 학교의 안전을 책임지는 노동자는 '학교의 구성원'이라는 틀에서 은근슬쩍 빠져 있다. 해슬은 노동자의 집회를 혐오하는 시선들이 학교 구성원의 틀 안에 학내 노동자들을 들여놓지 않으려는 비뚤어진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무거운 마음으로 학내 노동자들의 투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마음이 무거워질수록 투쟁에 대한 혐오적인 시선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해슬은 더더욱 앞으로 나의 진로를 현장에서의 투쟁으로 채우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위해 싸우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혐오 시선이 나의 삶을 숨 막히게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신 해슬은 대학원에 진학해 노동에 대한 공부를 해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내 운동을 만들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꼭 투쟁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운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안예린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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