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퇴직자와 맺은 확약서도 '근로기준법' 따라 따져야"
희망퇴직 노동자가 퇴직 이후 경쟁업체에 재취업 시 위로금을 반환하기로 한 확약서는 약관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기준으로 타당성을 따져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확약서가 근로계약 종료와 관련된 것이므로 ‘약관’이 아닌 ‘근로기준법 분야에 속하는 계약’이라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퇴직자 A씨와 B씨가 C보험사를 상대로 낸 확약서 무효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A씨 등은 2016년 재직 중이던 C보험사에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회사는 두 사람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이들에게 특별 퇴직 위로금을 지급했다. 단 비밀유지 의무와 퇴직 후 1년 동안 동종업체에 취직하지 못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를 어길 시 지급받은 퇴직 위로금을 반환하겠다는 확약서를 받았다.
그런데 A씨 등은 퇴사 후 4개월 만에 경쟁 보험회사에 지점장으로 재취업했다. 이에 C사는 이들에게 받은 확약서 내용에 따라 이미 지급된 퇴직 위로금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A씨 등은 위로금 반환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확약서가 근로의 권리를 제한하는 부당한 내용을 담고 있어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에서 쟁점은 이 확약서를 ‘약관’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근로기준법 분야에 속하는 계약’으로 볼지 여부였다.
1심은 확약서가 ‘약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A씨 등이 ‘소비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따라서 ‘고객에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은 무효’라는 약관법의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보고 확약서에 적힌 대로 A씨 등이 위로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A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확약서를 일종의 ‘약관’으로 본 것이다. 약관법상 ‘약관’은 ‘계약의 일방이 여러 명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인데, 확약서가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1심과 달리 ‘고객’은 “계약의 한쪽 당사자로서 사업자로부터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할 것을 제안받은 자”일 뿐 소비자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약관법에 따라 확약서의 내용을 따져봤고, 그 결과 ‘고객에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판단해 확약서를 무효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확약서는 피고(보험사)와 소속 근로자 사이에 체결된 근로계약이 합의 해지로 종료되는 경우의 권리·의무관계를 정한 것”이라며 “근로계약 관계를 전제로 퇴직금·퇴직위로금과 각종 경제적 지원에 수반되는 법률관계에 관한 것이므로 약관법 30조에 따라 약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약관법 30조에는 ‘근로기준법의 분야에 속하는 계약’은 약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확약서의 내용은 ‘근로기준법 분야’에 속한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희망퇴직의 유효성 여부와 조건 등은 근로기준법에 의해 판단돼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약관법 30조의 적용 제외 대상 범위를 명확히 하면서, 확약서의 전제가 되는 희망퇴직의 유효성 여부와 조건 등이 문제가 될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유효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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