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속내 들켜도 유체이탈?.. 尹대통령, 위기 앞에 솔직해져야

한기호 2022. 7. 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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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과 '불편한 관계' 확인시켜준 尹 문자 파장
대리 해명에 "사적대화·오해" 강변이 더 문제
"못알아들었단 오해 말라" 느긋이 받아친 李
"오해라느니 솔직해지라" 간언 무시, 언론회피뿐
尹 솔직함이 무기 된 盧 결단 이해하고 있나
지난 7월26일 오후 4시쯤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 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휴대전화로 '대통령 윤석열'과 텔레그램 메시지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지난 2월5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현 대통령)가 제주해군기지가 있는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방문해, 15년 전 해군기지 설립을 결단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고 국민 통합을 강조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2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 주 후반 정국을 강타해버린 윤석열 대통령의 '텔레그램' 문자 메시지다. 수신자는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다.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한 그에게, 윤 대통령은 상대방에게 적극 동의하는 뜻의 '엄지 척'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이런 내용이 국회 본회의장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된 당일(지난 26일), 권 직무대행이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페이스북 사과문을 내기까지 대통령실 측은 그에게 입장 표명을 떠넘겼고 여당 스피커들은 얼어붙은 채로 여권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우선은 윤 대통령의 문자다. 관찰자 입장에선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 3·9 대선에 앞선 '정치 초보' '비빔밥에 당근' 등 품평 논란과 지도부 패싱 입당, 경선 전 준비위원회의 미등록 예비후보들에 대한 토론 압박 논란, "대통령 만들 사람 있다" "지구 떠야지" 발언발(發) 편파 의혹 시비, 선거관리위원장 인선을 향한 공격, 원희룡 당시 경선 후보와의 "저거 곧 정리됩니다" 통화 녹취 진실공방, '김종인 원톱'이냐 '3김(김종인·김한길·김병준)'이냐 기싸움, 때 아닌 대선후보 당무우선권 힘겨루기와 사무총장 거취 갈등, '하이에나'부터 '윤핵관'까지 친윤(親윤석열)계의 구심력을 흩뜨린 낙인 정치, 본선 기간 두차례의 선거대책위원회 이탈과 봉합, 보수야권 후보단일화 반대 소모전, 6·1 지방선거 직후의 '자기정치 선언', 당 윤리위원회 징계심의 전후 떠보듯 불거진 대통령 접촉설 등. 이 대표가 중심에 서온 갈등 무대에서 드러내지 않던 윤 대통령의 '속내'가 공개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자리에 누가 있었든 금치산자(禁治産者)가 아니고서야 '혹시나가 역시나' 예상된 내용이긴 하지만, 누구든 확인할 수 있는 형태로 공개됐단 점에서 파장이 크다.

다만 더 큰 문제는 사후 대응 등에서 발생한 숱한 모순이다. 그동안 대통령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장담해놓고, 사실상의 여당 대표가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라고 깍듯이 숙였다. 여당 초선의원 61명이 공동성명을 발표한 시각즈음 발신한 것을 미루어 당정간 '팀워크'를 반긴 듯한 윤 대통령에게 '군신(君臣)관계'를 재확인하는 메시지로 화답을 했다. 과거 '보스정치'에 몸담았던 흔적인가. 권 직무대행의 변명문은 한층 가관이다. '내부총질 대표'를 굳이 무마하려고, 윤 대통령이 당 소속 의원들과 자신에게 "위로하면서 고마운 마음도 전하려", "'일부에서 회자되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오랜 대선기간 함께 해오며 이준석 당 대표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 적이 전혀 없었다", "저의 부주의로 대통령과의 사적인 대화 내용이 노출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그 이튿날(27일)엔 국회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으나 동일입장의 반복이었고, 추가 질문에 "제 프라이버시도 보호받아야 한다"며 취재진을 따돌리는 촌극까지 벌였다. 이 대표를 직접 겪은 윤 대통령이 개인 의사(意思)가 없어 세간에 떠도는 표현이나 주워다 쓸 인물이란 것인지, 여당 대표와 대통령 간 대화가 공중(公衆)에 노출됐는데도 '사적 대화'를 강변하는 태도의 역효과를 모르는지, 왜 본인이 윤 대통령 심중을 대리해명하는지 많은 의문을 낳았다.대통령실도 마찬가지였다. 최영범 홍보수석은 27일 일단 대화 노출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오해'라고 부르짖었고,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문자를 촬영해 이렇게 언론에 공개해서 정치 쟁점으로 만들고 이슈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론 탓'부터 했다. 윤 대통령의 표현에 대해선 "격려와 덕담하는 차원에서"라는 현실부정식 언급까지 덧붙였다.

익명의 고위관계자는 '해당 문자가 윤 대통령의 이 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뜻을 의미한 건 아니'라고 변죽을 울렸다. '내부총질'을 칭찬의 의미로 쓸 수 있단 건지 눈과 귀를 의심했다. 10여년 전 정치처럼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를 바랐을지 모르나, 이미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알아듣는' 일이 잦아진 여론환경이란 자각이 없는 듯하다. 그 직후 이 대표는 "전혀 오해의 소지가 없이 명확하게 이해했다. 못 알아들었다고 대통령실이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고 찰떡같이 받아쳤다. 날카로운 단어 하나 안 쓰고도 예리하게 베어버린 그에게선 '여유'마저 느껴진다. 그 이후도 반전은 없었다. 권 직무대행은 28일 당·정 수뇌가 동참하는 정조대왕함 진수식에 참석 예정이었음에도 굳이 텅 빈 일정공지를 배포하며 언론 접촉을 피했다. 속내를 타인에게 맡겨버린 윤 대통령도 29일까지 사흘연속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이 없는 일정을 짠 데다 내달 초 여름휴가라니, 그저 '묻어가자'는 생각 같다. 일각에선 "겁쟁이"란 말도 나온다.

대통령실 입장 표명 바로 전날, 지난 대선 옛 조력자들 중 일부는 "절대 '오해'라는 식으로 브리핑하지 말라. 들켰으면 차라리 솔직해지라"는 간언(諫言)을 올렸다는 후문이다. 예컨대 윤 대통령이 대화 노출 자체에는 유감을 표명하되 '더할 말도 뺄 말도 없고,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조언자는 "(참모진이) 대통령에게 '제왕'의 언어를 심으려 하지 말고 '인간 윤석열'의 언어를 구사하게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솔직함'을 무기 삼아야 한다"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를 들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소수여당 대통령이던 2004년 2월말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해 탄핵소추(헌법재판소 기각)에까지 휩싸였지만, 절대적인 '노사모' 팬덤 호응과 여당 단독 152석까지 얻었던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은 팬덤을 일으켰으나 맞선 역사도 있다. 2003년 이라크 파병 결정,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2007년 제주해군기지 건설 결정 모두 강성지지층 이념노선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대통령으로서 '국익'을 위해 내린 결단이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좌측 깜빡이 키고 우회전한다'는 비아냥과 지지율 부침에 시달렸고, 여당도 등돌려 2007년 3월 실제 탈당한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후보 신분으로 제주해군기지가 있는 강정마을을 찾아 "2007년 노 전 대통령께서 주변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뇌에 찬 결단을 하셨다", "노 전 대통령의 고뇌와 결단을 가슴에 새긴다"고 기념하며 목이 메이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런데 검찰총장 시절이면 몰라도, 지금의 윤 대통령에게서 노 전 대통령의 결단의 전제가 된 '용기'가 보이는지 모르겠다. 자주 보였으나 존재감은 흐려졌다. 나름대로 '유리하다, 할말 있다'고 생각할 때 "전(前)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냐"고 일갈하기도 했으나, 용기 아닌 '만용'에 가깝다. '문자 파동' 문제만이 아니다. 외부 충격에 따른 3고(高) 경제위기에도 당분간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은 "어렵다"고 대통령이 스스로 인정하고, 야당 지도부를 만나 술 한잔이라도 기울이며 속을 터놓고 협조를 구해야 국정에 가닥이 잡힐 것이란 게 앞서 조언자의 말이다.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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