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만에 초췌해진 이창용..통화정책·외부활동 광폭 행보 [조지원의 BOK리포트]
한은 총재 첫 잭슨홀 연설 등 외부 활동 활발
변화 기대감과 함께 피로감도 조금씩 누적
물가·성장 상충관계서 인상 속도 과제
점차 다양해지는 금통위원 의견도 모아야
가뜩이나 키가 커서 말라 보이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임기 100일 만에 눈에 띄게 초췌해졌다. 3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이 총재는 두 차례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거치며 기준금리를 각각 25bp(1bp=0.01%포인트), 50bp 올린 데 이어 국제결제은행(BIS) 이사회,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등 국제회의도 두 차례 다녀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등 현 정부 경제·금융팀과는 주말도 없이 수시로 만나고 있다.
건강 상태가 완전하지 않다지만 우리나라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이 워낙 빠르게 바뀌다 보니 숨 가쁜 일정을 보내는 중이다. 어느 때보다 분주했던 지난 100일간 한은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봤다.
① 역대 최단기간 내 최대 폭 금리 인상
이 총재가 취임했을 때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한은이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을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없었다. 그랬던 것이 5월 16일 이 총재가 조찬 회동 직후 “빅스텝을 배제할 수 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빅스텝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고 그때부터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1999년 콜금리 목표제 시행 이후 최단기간인 취임 36일 만에 열린 5월 금통위에서 금리가 25bp 올랐고, 7월 금통위에서는 사상 첫 50bp 인상이 이뤄졌다. 사실상 100일 만에 금리 75bp가 오른 셈이다. 물가가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기도 했다.
이 총재는 임기 초반 몇 번의 말 실수로 인한 시장을 불안하게 했으나 점차 자신만의 직설화법을 구축하기도 했다. 특히 7월 금통위에서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모두 발언에서 “금리를 당분간 25bp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해 금리 인상 폭과 속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당일 총재의 모두 발언이 따로 배포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한은 직원은 “총재가 중앙은행 근무 경험이 없는데 이해도가 높아 놀랄 때가 많다”며 “예전부터 중앙은행 총재를 준비해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고 했다.
② 정부와 수시로 회동···무게감은 갈수록 떨어져
이 총재는 취임 이후 외부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먼저 추 부총리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경제·금융 수장들과는 수시로 회동 중이다. 추 부총리와의 첫 조찬 회동 당시 “수시로 만나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의견을 나누자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라고 했던 말을 실천 중인 셈이다. 다만 회의가 잦다 보니 경제 수장 회동의 무게감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4일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는 안심전환대출을 위해 주택금융공사에 1200억 원을 출자하겠다면서 발권력을 동원하는 내용을 금통위 의결도 거치지 않고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총재의 행보는 국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랜 국제기구 근무 경험을 살려 전 세계 주요 인사들과 소통 중이다. 최근에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한은을 방문해 이 총재와 세계 경제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다음 달 25~27일 미국에서 열리는 잭슨홀 미팅에도 참석해 세션 발표를 할 예정이다.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한 곳에 모여 통화정책을 논의하는 잭슨홀 미팅에서 한은 총재가 세션 발표를 하는 것도 처음이다. 이 총재가 국제 사회에서 한은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총재 본연의 업무와는 동떨어진 개인 활동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③ IMF 블로그·미팅 등 제도 도입···인사도 기존 틀 깨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오래 근무한 이 총재는 한은에도 다양한 IMF식 소통 방식을 접목하고 있다. 먼저 한은 홈페이지에 금융·경제 주요 현안에 대한 임직원 분석과 견해를 적을 수 있는 블로그를 신설했다. 홍경식 통화정책국장은 공급 인플레이션에 금리 인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등 블로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매주 경제 현안을 놓고 토론을 펼치는 주간 현안 포럼도 IMF의 ‘서베일런스 미팅(surveillance meeting)’을 따온 것이다.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한 시간씩 한은 직원 누구든 총재를 만나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창구도 만들었다.
인사 방식도 달라졌다. 이날 하반기 정기 인사를 앞두고 지난주 부총재보 인사를 통해 기존 관행을 깨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상태다. 한은은 그동안 특정 부서 출신이 승진에 유리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새로 임명된 이종렬 부총재보는 비통화정책부서인 금융결제국에서만 경력을 쌓아 온 지급 결제 전문가다. 부총재보 5명의 면면을 다양하게 구성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급진적인 발탁 인사로 내부 반발을 샀던 김중수 전 총재와 달리 속도 조절을 하면서도 파격 인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
④ 통화정책 갈수록 어려워져···속도 조절 목소리도
학계에서는 갈수록 통화정책 난이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물가가 정점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 둔화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을 이어가더라도 앞으로는 속도와 폭을 적절하게 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외 불확실성이 커서 경기 상황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가계부채 관리도 주요 과제다. 지금까지는 물가 안정이 워낙 시급해 금통위 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금통위 내 의견 갈등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임기가 3년 9개월 남은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한은은 총재가 혼자 너무 빠르게 앞서가면서 조직 피로감이 점차 누적되는 상황이다. 총재가 활발하게 외부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기관과 협업할 일이 많아졌는데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가욋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정부에 끌려다니며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다는 불평도 나오기 시작했다. 안심출자전환을 위한 발권력 동원도 금액이 많지 않아 내부 반발이 크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행보가 반복된다면 남은 임기 내내 발목을 잡힐 수 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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