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日 '100엔숍' 사라진다..'엔저'의 속사정

황경주 2022. 7. 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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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에서 상품 대부분을 100엔, 우리 돈 천 원 정도에 팔아,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 많이 찾았던 이른바 백엔 숍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신, 가격을 훌쩍 올린 '300엔 숍'이 등장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100엔 숍 시대가 저무는 이유와 일본의 경제의 속사정을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황 기자, 천 원 정도에 생활용품을 부담 없이 살 수 있어서 일본에선 백엔 숍이 꽤 인기를 끌었던 거잖아요.

[기자]

네, 일본 다이소의 '100엔 숍'이 1990년대부터 큰 성공을 거두고, 후발 주자들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가게를 열면서, 일본에는 한때 8천 4백 개가 넘는 100엔 숍이 있었는데요.

최근 이 100엔 숍들 중에 문을 닫거나, 영업 방식을 바꾸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그동안 100엔 숍은 중국과 동남아 등에서 싼 가격에 양질의 물건을 떼 와, 저렴하게 파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는데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더는 싸게 물건을 수입해 올 수 없어진 겁니다.

[고토 코이치/다이소 재팬 총무부 : "(상품의) 70%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 전반이 영향을 받고 있겠지만, 운송비와 원유 가격이 오르고, 엔화 가치는 떨어지면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백엔 숍의 대표적 업체인 다이소는 지난 4월 일본의 쇼핑 1번지, 도쿄 긴자에 300엔 숍을 열었습니다.

상품의 80%를 300엔에 파는 매장입니다.

다이소는 올해 안에 일본 내 100엔 숍의 40%를 300엔 숍으로 바꿀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겉으론 매장 고급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심하고, 특히 엔화 가치가 떨어져 있으면, 일본도 다른 나라들처럼 금리를 올리는게 일반적인 해법인데 일본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잖아요.

[기자]

최근 뉴스만 틀면 각국이 기준금리를 크게 올리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실텐데요.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라도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물가가 뛴다는 건 돈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뜻이니, 돈의 가치인 금리를 올려서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일본만은 이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21일 단기금리를 -0.1%로 유지하고, 시장에 돈을 대규모로 풀어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정책 기조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구로다 하루히코/일본은행 총재 : "일본은행은 2% 물가 안정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할 때까지 수익률 곡선을 조절하는 양적·질적 통화완화를 지속할 것입니다."]

일본이 이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요.

일본 경제에서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1990년 버블 경제가 붕괴한 뒤 일본이 무려 20년 동안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는 뜻이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그 유명한 '아베노믹스'입니다.

최근 숨진 아베 전 총리가 2012년 총리직에 오르면서, 금리는 확 내리고 돈은 마구 풀어 경기를 살리려고 한 건데요.

이런 적극적인 부양책에도 일본 경제는 여전히 회복 중입니다.

시장이 너무 과열돼 물가가 9%씩 뛰고 있는 미국, 유럽과는 상황이 정반대인 겁니다.

일본은 현재도 목표 물가 상승률을 2%대로 잡고 있고, 최근에야 겨우 이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앵커]

나라 안팎의 경기 흐름과 통화 정책이 정반대로 가다 보니, 일본 기업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는 거군요?

[기자]

네, 나라 밖은 점점 물가가 비싸지는데, 일본 기업들이 손에 쥔 돈, 즉 엔화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는 겁니다.

엔화를 달러 같은 외화로 바꾼 뒤 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해 와야 하는 백엔숍같은 기업들엔 치명타가 되는 거죠.

이런 점 때문에 현재의 엔화 저 가치 기조, 즉 '엔저'가 '나쁜 엔저'라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돈을 풀어서 사람들이 소비를 많이 하면, 이게 기업의 이익과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 구조가 돼야 하는데, 국제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의 구매력만 떨어뜨리는 역효과가 더 크다는 겁니다.

실제로 일본의 올 상반기 무역 적자는 7조 9천억엔, 우리 돈 약 75조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앵커]

무역 수지는 점점 나빠지고, '아베노믹스'를 이끌던 아베 전 총리도 이제 없으니, 앞으로 일본의 통화 정책에도 변화가 생길까요?

[기자]

당장 바뀌지는 않을 거란 분석이 많습니다.

일본 중앙은행과 현 정권 모두 아베노믹스를 벗어나려는 생각이 크지 않아 보이는데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현재의 수입 물가 상승의 원인을 전쟁으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엔저가 주된 원인이 아니니, 통화 정책을 바꿀 게 아니라 에너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거죠.

기시다 현 총리 역시 자민당 내 '아베파'의 지원으로 총리 자리에 오른 만큼 아베노믹스에서 급선회하기는 어려울 거란 분석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촌 돋보기 황경주였습니다.

황경주 기자 (r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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