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기소할까요? 워싱턴은 골치 아프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2. 7. 2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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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드러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네 가지다. 최근 청문회에서 백악관 직원이 내놓은 폭탄 발언이 결정타였다. 트럼프가 기소될 경우 정치적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7월12일 ‘1·6폭동진상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스크린에 비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모습.ⓒAP Photo

요즘 미국 워싱턴 정가의 최대 화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6)의 기소 여부다. 재임 시 이미 두 번이나 불미스러운 일로 하원의 탄핵을 당한 그가 기소까지 된다면 246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과 기소를 당하는 최악의 대통령이 될 판이다.

미국에서 대선이 끝난 지 1년 반이 넘었지만 대선 후유증은 여전하다. 그 중심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대선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 약 2000명이 2021년 1월6일 의사당에 난입하는 바람에 때마침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인준하려던 상하원 의원들이 혼비백산해 인준 절차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무법적 난동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출범한 하원의 ‘1·6폭동진상특별위원회(이하 특위)’는 최근 여러 차례 청문회를 통해 트럼프가 무장한 지지자들을 선동해 의회 인준을 방해한 것을 포함해 구체적 혐의를 확인했다.

특히 6월28일 공개 청문회에서 당시 백악관 비서실 소속 직원 캐시디 허친슨(25)이 내놓은 ‘폭탄 발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하는 데 결정타였다. 그녀는 1월6일 당일 백악관 앞 광장의 무대에서 극렬 지지자들을 향해 “끝까지 싸우라”며 연설하던 트럼프가 이들과 함께 의사당으로 행진하려 했고, 법률 보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사당으로 가기 위해 자신의 전용차를 운전하던 경호원에게서 운전대를 빼앗으려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당시 상황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팻 시펄로니 백악관 법률고문도 최근 비공개 청문회에서 그녀의 증언 내용을 재확인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탄핵 당시 의회 법률고문을 지낸 대니얼 골드먼 변호사는 〈뉴욕타임스〉에 “허친슨의 증언으로 트럼프가 난동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했을 뿐 아니라 군중과 함께 의사당으로 가고자 했던 게 분명하다”라면서 트럼프가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했다.

검찰은 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 가운데 840명 이상을 난동 등의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검찰은 이들 외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의 대선불복 운동을 도운 측근 변호사와 법무부 고위 관리 등 핵심 동조자들로 수사 범위를 확대 중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크게 네 가지다. 우선 대선 결과에 대한 의회의 인증 절차를 방해한 혐의다. 2020년 11월3일 대선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는 공화당 트럼프 후보에 대해 선거인단 306명 대 232명이라는 압도적 차이로 이겼다. 이 같은 대선 결과를 상하원 의원들이 1월6일 의사당에서 인증하던 중에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의 난동이 벌어진 것이다. 특위의 공화당 측 위원이자 대표적 반트럼프 인사로 꼽히는 리즈 체니 의원은 트럼프를 배후 주동자로 지목했다.

두 번째 혐의는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사전 음모를 꾸민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변호사인 존 이스트먼이 대선 패배 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압박해 의회의 인증을 거부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한 계획을 일찌감치 마련했다는 것이다. 특위는 두 사람이 이 같은 행위가 불법임을 알고도 바이든이 승리한 주정부 관리들에게 선거 결과를 부인하도록 했다는 ‘확고한 정황적 증거’가 있다고 본다.

트럼프는 혐의 모두 부인

세 번째 혐의는 트럼프가 의사당을 난입한 주동자들과 연계돼 있다는 것이다. 당시 난동을 주도한 극우단체 ‘오스 키퍼스(Oath Keepers)’와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 지도자들은 이미 난동 혐의로 기소되었다. 특위 측은 1월6일 난동 직전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한 선동적 연설이 이들의 의사당 난입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표가 도둑맞았다며 투표 결과를 뒤집기 위한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여 결과적으로 모금 사취를 했다는 혐의도 있다. 특위 측은 트럼프가 선거 패배 후 ‘선거옹호기금’이라는 명목으로 2억5000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주장했다.

2021년 1월6일 의사당 난입 사건 당시 트럼프 지지자와 의회 경위가 대치하고 있다.ⓒAP Photo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같은 혐의 모두를 부인해왔다. 자신은 지난 대선에서 진짜 자신의 표를 도둑맞았다고 믿었고, 그가 한 일련의 언행도 ‘도둑 선거’의 피해자로서 적극 옹호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측 대변인은 폭탄 발언을 한 허친슨의 증언을 “추잡하고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행동이 불법임을 인지하고도 의회 인증 행위를 방해했다는 ‘범죄적 의도’를 가졌는지 검찰이 입증할 수 있을까. 트럼프는 자신이 진짜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믿었고, 대선 불복 언행은 그런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자신의 백악관 앞 연설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에 따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이 같은 변호 전략을 고수할 경우 그의 ‘의도성’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특위가 지금까지 입증된 혐의를 바탕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를 권고할 경우 법무부가 실제 기소를 감행할 수 있을까. ABC 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트럼프 기소를 찬성했다. 특히 무당파 응답자의 기소 찬성률은 62%에 달했다. 여론은 기소 찬성이 우세하지만 결정권을 쥔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여론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오직 드러난 사실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갈런드 장관이 이처럼 고도의 중립적 태도를 고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를 기소해도 법리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기소에 따른 정치적 후폭풍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가 단순히 법적 문제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문제라는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기소가 임박하면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개입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공화당과 친공화당 유권자들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야후뉴스가 지난 5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친공화당 유권자 가운데 50%가 향후 선거에서 투표할 때 해당 후보에 대한 트럼프의 지지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친공화당 유권자들에게 영향력을 지닌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될 경우 정치적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 연방검사 출신인 바버라 매퀘이드는 NBC 방송에서 “민주주의를 능멸한 트럼프를 기소하는 게 옳다고 보지만 그를 기소하면 전국적인 시위, 심지어 내전 상황이 벌어질 위험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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