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몰아치는 서스펜스..감독 이정재의 발견 [시네마 프리뷰]

정유진 기자 2022. 7.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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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스틸 컷 ⓒ 뉴스1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헌트'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평이 많았다. 하지만 일부 외신들 사이에서는 '어렵다'거나 '플롯이 복잡하다'는 이야기도 있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평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헌트'는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1980년대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특유의 서스펜스를 즐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배우 이정재의 상업 영화 연출 데뷔작 '헌트'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와 김정도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직면하게 된 후 벌어지는 과정을 그려낸 액션 영화다.

때는 신군부의 쿠데타 이후 약 4년이 흐른 시점인 1983년이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국민들을 잡아들이고 탄압하며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안기부 해외팀 차장으로 해외에서 진행된 여러 공작들을 이끌었던 박평호(이정재 분)와 군인 출신으로 새롭게 안기부 국내팀 차장으로 선임된 김정도(정우성 분)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사실 두 사람은 과거 악연으로 얽힌 사이다. 유신시절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했던 박평호는 신군부의 쿠데타 이후, 당시 보안사에 속했던 김정도에게 고문을 당했었고 그 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김정도는 그런 박평호와 껄끄러운 관계를 풀어보고자 그를 집에 초대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지만 신뢰를 얻기는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안기부가 진행했던 여러 작전들이 차례로 실패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공작마다 주요 정보가 북측에 노출됐던 것. 그 과정에서 북측 첩자 동림이 안기부에 있다는 정보가 떠오르고, 안기부 국장은 김정도에게는 박평호를, 박평호에게는 김정도를 털어보라는 지시를 은밀히 내린다. 강한 확신으로 서로를 의심하고 있는 박평호와 김정도, 둘 중 동림은 누구일까.

영화는 박평호와 김정도의 팽팽한 기싸움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인물들의 비밀이 차례로 풀리며 엎치락뒤치락 하는 가운데 힘의 균형은 팽팽하게 유지되며, 이는 영화의 서스펜스가 끝까지 이어지는 원동력이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고 나면, 인물들에 대한 선과 악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 보는 이들의 입장에서 두 사람 모두 납득할만한 동기를 가지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용납되기 어려운 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것으로 영화는 이념적, 윤리적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주요 역사적 사건들이 징검다리처럼 틈틈이 등장하지만, '팩트'와 '팩트' 사이를 채우는 작은 사건들과 인물들은 모두 허구다. 역사적 사건들은 첩보 액션 영화의 드라마적인 스릴감과 스펙터클한 액션 신을 위해 준비된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수없이 등장하는 총격전, 총을 맞고 사라져 가는 NPC(non-player character) 같은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다소 낯설다면, 아마도 그것은 고증보다는 장르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택한 이 영화 특유의 상업성 때문일 것이다.

이정재 감독이 밝힌 연출 주안점대로, 배우들이 돋보이는 영화다. 특히 영화 '태양은 없다'(1999) 이후 23년 만에 스크린에서 재회한 두 절친 배우는 전작이 아쉽지 않은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 자주 클로즈업되는 화면 속에서 흔들리는 눈빛으로 복잡한 심사를 드러내는 박평호와 김정도는 다른 듯 비슷한 인물들이며, 두 배우가 연기했기에 더욱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볼거리 많은 액션신, 유려한 플롯, 감각적인 미장센까지, 데뷔작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듯한 '신인 감독' 이정재의 완벽주의가 돋보인다. 다만 전사 설명을 위해 플래시백을 다소 많이 사용한 점은 세련미를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영화의 옥의 티로 느껴진다. 러닝 타임 125분. 오는 8월10일 개봉.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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