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두 잔의 핫초콜릿을 마시던 '표 제야 토' 의원을 기리며
지난 6월 12일, 미얀마 군부는 정치인 등 4명에 대한 사형 집행을 승인한다고 밝혔다. 갑작스럽고 의도적인 이 발표에 미국 일본 한국 등 국제사회의 비판과 우려가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갑자기 양곤 인세인 교도소의 수감자 4명에게 가족과의 화상통화가 허락됐다. 사형이 집행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졌다. 주말 내내 SNS에는 이들을 구해달라는 호소가 빗발쳤다.
월요일 아침, 양곤의 대학생들이 기자의 시그널앱을 통해 이들이 처형됐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서둘러 1보를 썼다. 사형이 집행된 4명 중에는 전 래퍼이자 하원의원인 ‘표 제야 토(41)’가 있다. 다음은 이날 9시 뉴스를 준비하면서 그에 대해서 알게 된 것들이다.
■표 제야 토 Phyo Zayar Thaw 1981.3.26 ~ 2022.7.24
1.
그는 랩퍼다. 힙합을 미얀마에 처음 들여왔다. 2000년, ‘ACID’라는 밴드를 만들어 낸 첫 앨범은 두 달간 미얀마 음악 차트에서 1위를 달렸다(위키피디아 버마판 참조). 힙합 가수들이 흔히 그렇듯 그의 노래에는 저항과 희망이 담겼다. 1988년부터 시작된 버마의 민주화 투쟁은 2007년 샤프란 항쟁으로 번졌다( 명망 있는 승려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승려들이 입는 가사의 색이 샤프란(saffron) 빛을 띠어서 샤프란 항쟁으로 불린다).
에이즈 환자들의 자녀를 돌보거나, 가난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그의 사회참여는 곧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2007년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그는 가난한 버마인들의 삶을 노래했다. 2008년 3월 12일 친구들과 함께 체포된 그는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의 긴급법률 중 ‘불법 단체를 조직한 죄’가 인정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판결 직후 그는 국민들에게 “싫은 것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달라”라고 주문했다. 국제 앰네스티는 그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2012년 미국 등 선진국들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못 이긴 군부가 ‘아웅 산 수 치’를 석방하고, 민주적 선거제도를 도입했다. 그해 보궐선거에서 ‘표 제야 토’는 ‘아웅 산 수 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후보로 군부 주요 인사와 겨뤄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2.
2015년 재선의원이 된 그는 ‘삶과 음악의 균형을 맞추겠다’며 2020년 총선에 불출마했다. ‘아웅 산 수 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총선에서 다시 압승했다. 하지만 2021년 2월 쿠데타가 터졌고 미얀마의 정치는 30년 전으로 돌아갔다. ‘표 제야 토’ 도 다시 거리로 나왔다. 미얀마 군사법원은 쿠데타 석 달만인 지난해 5월, ‘표 제야 토’ 전 의원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은신 중이던 그는 그해 11월 아내와 함께 체포됐다. 군경을 공격하고 배후조종한 혐의로 ‘대테러법과 공공재산보호법’에 따라 기소됐다. 지난 1월 군사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미얀마의 주요 6개 도시는 계엄령이 선포돼 군사법원에서 1심재판으로 형이 확정된다. 가족들은 변호사의 도움은 물론, 가족 누구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양곤의 인세인 교도소를 수차례 찾아 아들의 행방을 물었지만,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7월 22일, 그의 가족에게 연락이 왔다. 이날 어머니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과 화상으로 만났다. ‘표 제야 토’는 조금 말라 있었고 어머니에게 안경과 책 그리고 약을 들여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3.
사형집행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군정은 월요일(25일) 아침 새벽 보도문을 통해 4명의 사형이 집행됐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미얀마에서 30여 년 만에 이뤄진 사형집행에 국제사회가 경악했다. 유엔은 물론 미국, 유럽연합(EU)과 호주, 캐나다, 일본, 영국, 한국 등 주요국은 공동성명에서 이번 사형집행을 "인권과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정권에서나 가능한 폭력행위"라고 규정했다. 미 국부부는 ‘경악했으며 추가적인 조치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표 제야 토’의 어머니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그날 나에게 아들과의 마지막 만남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다. 인세인 교도소 측은 아직도 시신을 가족들에게 인계하지 않고 있다. 그제(27일)는 인세인교도소에서 수십여 명의 수감자들이 항의 시위를 벌여 15명의 수감자가 분리 수감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서 시위나 군경을 공격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이제 76명이 남았다. 이들 중 2명은 미성년자다. 앰네스티는 즉각적인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구했다. 어제 양곤의 한 정보통은 기자에게 3명에 대해 추가로 사형이 집행될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미얀마나우(MyanmarNow)는 인세인교도소의 사형수 일부가 다른 감옥으로 이동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표 제야 토’ 전 의원을 기리며 한 미얀마 기자가 가명으로 쓴 편지다. 미얀마 시민들의 SNS에서 가져와 우리 말로 번역했다.
<핫 초콜릿을 두 잔이나 마신 그 국회의원에게>
그에 대한 나의 가장 이른 기억은 내가 7살쯤 될 때입니다. 우리 집 텔레비전에는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가 틀어져 있었는데, 이상한 옷을 입은 소년들이 낯선 음악에 맞춰 마구 춤을 췄어요. 우리 형제들도 그 음악에 맞춰 계속 몸을 흔들었죠. 정말 많이 그 음악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에 있어요(annaga nae hainzaw, yan channa zeyar halt aphwae htae mhar a para win parpe)”라는 가사는 그렇게 내 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딱 이 부분을 정말 많이 흥얼거렸습니다. 나중에야 이 음악이 힙합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가 힙합을 우리에게 소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2015년 총선 때 저는 한 외국 언론에서 통역사로 일했습니다. 우연히 당선된 의원 명단을 훑어보고 있을 때, 'Zeyar Thaw'라는 익숙한 이름이 있었어요. 혹시 그 힙합 가수는 아니겠지? 제 기억이 맞았어요. 그는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당을 대표해 출마한 아주 젊은 후보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이거 정말 멋진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자가 된 뒤 저는 정부청사와 국회의사당이 있는 네피도를 자주 찾았습니다. 모든 게 낯선 신입 기자는 만나는 모든 사람이 새로웠습니다. 2017년 어느 일요일 저녁, 저는 그 멋진 남자를 산티노라는 레스토랑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옅은 흰색 셔츠를 단정하게 입고 있었습니다.
정치인을 만난 경험이 거의 없던 저는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진한 블랙커피를 주문했습니다. 그는...핫초콜릿를 한잔 주문했습니다. 얼마를 이야기하다 저는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한참을 편안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잠시 후 종업원에게 "핫초콜릿을 하나 더 주문해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같이 웃었습니다.
2021년 2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이 힙합 스타는 다시 혁명가가 되었습니다. 한 번에 두 잔의 핫초콜릿 마시던 이 달콤하고 멋진 정치인은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고민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9개월 후, 표 제야 토는 군사정부를 공격한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1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오늘 군정은 그를 포함해 4명을 처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얀마에서 30년 만에 다시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제가 그에 대한 기사를 처음 썼을 때, 저는 그와 생일이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정확히 14살 차이가 납니다.미얀마에 힙합을 소개한 아티스트, 한번에 핫초콜릿을 두 잔 마시던 멋진 정치인, 그리고 결국 군사정권에 대항하며 자신의 인생을 바친 혁명가, 그의 생애는 여기서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가 그를 영원히 그리워할 수 있기를. May he rest in peace and may we miss him forever.
-순 나잉 Shoon Naing
김원장 기자 (kim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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