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엔 늘 권총이.."잘라" 욕먹으며 금리로 인플레 잡은 볼커

황시영 기자 2022. 7. 29. 06: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MT리포트]가시밭길 택한 윤석열 정부④

[편집자주] 출범 후 불과 80일을 넘긴 윤석열 정부 앞에 글로벌 복합 경제위기의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는 달콤한 '단기처방'을 거부한다. 나랏돈을 동원한 포퓰리즘 대신 규제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눈앞의 인기보다 국가의 미래를 앞세운 선택이다. 윤석열 정부가 사면초가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본다.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의장의 1996년 9월 기자회견 모습 (C) 로이터통신=뉴스1

"지금 연준은 '볼커식 인플레 싸움' 전략을 모방해야 한다."

지난 2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의장이 '뚝심있는' 고금리 정책으로 1980년대 미국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종식시킨 폴 볼커(Paul Volcker) 전 연준 의장을 벤치마크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와의 전쟁'을 돌이켜볼 때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것이 1979년부터 1987년까지 8년간, 민주당 카터 정부에서부터 공화당 레이건 정부에 이르기까지 연준 의장을 역임하며 강력한 고금리 정책을 이끈 볼커의 긴축정책이다.

볼커는 경기침체를 감수하고 가파르게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린다. 2018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그는 "오늘 1달러로 살 수 있는 만큼을 내일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통화정책의 근본적인 의무"라고 주장했다.

석유파동 뒤 겪은 스태그플레이션…단번에 4%P 금리 인상
미국 경제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분기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평균 4.8%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경기 호황과 확장적 거시정책 기조는 거대한 인플레이션의 단초로 작용했다. 당시 닉슨 정부는 다소 높은 물가를 용인하면 낮은 실업률을 유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확장적 정책을 유지했다. 물가보다 고용을 우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불어닥친 두 번의 석유파동은 미국 경제를 단숨에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몰아넣었다. 에너지와 생필품 가격이 급등했다. 달러화 가치는 떨어지고 실업률은 높아졌다. 1973년 4월부터 1982년 10월까지 미국의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대부분 5%를 넘겼고, 1980년 3월에는 최고인 14.8%를 나타냈다. 9%대인 최근 미국의 물가 상승률을 훌쩍 넘는다.

1979년 8월 연준 의장에 취임한 볼커는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했다. 그는 1979년 10월 6일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기준금리를 11.5%에서 15.5%로 4%포인트(p)나 올리는 조치를 단행했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연 18% 가까이 수직상승했다. 주식과 집값이 폭락했고 기업들의 파산이 잇따랐다. 하지만 물가를 잡기에는 그것도 부족했다. 볼커는 1981년 기준금리를 21.5%까지 올렸다.

경기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파산해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실업률은 10%를 넘겼다. 빚더미에 앉게 된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수도 워싱턴DC로 향했다. 201㎝의 장신인 볼커는 늘 권총을 지니고 일을 할 정도로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3년의 고통 뒤 본 희망
2012년 5월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의장이 미 상원에 출석한 모습 (C) AFP=뉴스1
3년간의 고통스러운 긴축 끝에 점점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초고금리를 찾아 돈이 은행으로 들어왔고 시중 유동성이 잡혔다. 1980년 살인적 수준인 14.8%였던 미국 물가상승률은 1981년 9%로 떨어지며 희망을 보여줬고, 이듬해 4%를 거쳐 1983년에는 2.36%까지 급전직하했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고, 석유 증산이 이뤄지면서 원유 가격이 급락, 2차 오일쇼크가 막을 내린 것도 도움이 됐다. 볼커의 강력한 고금리 정책에 힘입어 물가안정과 산업 구조조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미국은 1990년대 이르러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게 된다.

FT는 "볼커는 1980년, 1981~82년의 경기침체 기간 동안 포퓰리즘, 자신을 해고해야 한다는 여야 의원들의 초당적 합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해달라는 재무장관의 공개적인 요구에도 굴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울러 FT는 "파월은 볼커를 존경한다고 말하면서 볼커와 똑같은 전략을 택하지는 않고 있다. 파월이 선호하는 방식은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지만 불황에 접어들면 금리를 내릴 준비가 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파월은 볼커의 본보기를 따라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볼커와 파월의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볼커 당시의 물가 상승세가 10년간 장기간 이어졌다면 현재 미국의 물가 급등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양적완화 등으로 급증한 미국 정부의 현재 부채 수준이 금리 인상의 걸림돌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임금이 빠르게 오르면서 '임금 인상→물가 상승'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유가 상승이 물가를 부추긴 점은 공통점으로 꼽혔다.

[관련기사]☞ "고우림, ♥김연아 여왕 모시듯 케어"…달달 극장 데이트 목격담매일 생기름 '130mL' 마셔야 사는 금쪽이, 등교거부아빠 김구라 잔소리에…"이혼이 재밌어요?" 돌직구박명수 "1년 만에 얼굴 달라진 연예인? 다 손댄 것" 폭로임영웅, BTS보다 더 벌었다…상반기 매출만 376억
황시영 기자 apple1@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