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변동금리 장려 정책 '안심전환대출'
올해 초 예상했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금리는 오르고 집값은 하락하고 있다. 금리가 뛰고 집값이 뒷걸음질 치면 '영끌족이 가장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현실이 되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이들에 대한 구제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 역시 맞아 떨어졌다.
빚투족, 영끌족에 대한 지원 방안이 '민생안정대책'이란 이름으로 발표됐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원금감면, 청년특례 채무조정 제도 신설, 안심전환대출 시행 등이 포함됐다. 예상대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포함된 청년층 세대에서 오히려 반발이 크다. 집 안샀다가 '벼락거지'라는 놀림을 견뎠더니 이젠 정부가 자신들을 바보 취급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급격한 금융환경의 변화로 대출이 부실화될 우려가 있을때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의무다. 신용불량자가 대규모로 발생할 경우 그 뒷감당에 들어갈 사회적 비용이 더 크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투자의 자기책임 원칙, 신용질서 훼손 등의 부작용을 감수하고 내놓는 정책이라면 좀 더 신중하고, 정교했어야 한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뭔가를 내보여야 하는 부담이었을까, 수차례 비슷한 정책을 써왔던 금융당국답지 않게 성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미 상환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 대한 채무조정은 그렇다 치자. 이미 법적으로 존재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3번째 시행하는 안심전환대출은 과거의 문제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해 주는 안심전환대출은 2015년 3월 처음 나왔다. 배경은 이랬다. 박근혜 정부가 집값 부양을 위해 2014년 8월 LTV·DTI 비율을 70%로 완화하면서 가계대출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2014년 8월~12월까지 약 40조원 급증했다. 전년 같은 기간의 배에 달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 속도 관리와 함께 대출 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안심전환대출이라는 새로운 상품을 꺼냈다.
결과는 잘 알다시피 매월 5조원씩 4개월간 공급하겠다던 20조원이 4일만에 동났고 급하게 20조원을 추가 투입해야 할 정도로 대히트였다. 논란도 있었다. 당시엔 변동금리 뿐만 아니라 만기일시상환 대출도 전환 대상이었지만 고정금리 대출자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시 최종 안심전환대출 금리는 2% 초중반이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3~4%대의 고정금리를 부담하고 있던 대출자들은 허탈해했다.
그럼에도 안심전환대출은 '대출은 처음부터 갚아나가고 금리변동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안심전환대출은 2019년에 '서민형'이란 이름으로 다시 시행됐다. 한도는 20조원이었지만 신청액만 74조원에 달할 정도로 또 히트였다. 고정금리 차별 논란이 재현됐지만 정부는 고정금리 대출자에겐 역시 신청 자격을 주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준비한 3차 안심전환대출은 규모 면에서 역대급이다. 총 45조원이 준비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고정금리 대출자는 남의 얘기다. 금리상승에 대비하라고 그렇게 외쳤던 정부가 고정금리 대출자를 또 외면한 것이다. 반대로 금리상승 위험을 감수하고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들을 오히려 구제해 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24일 "안심전환대출로 가계대출의 변동금리 비중이 78%에서 73%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깜짝 놀라 과거 데이터를 찾아봤다. 첫 안심전환대출이 나오기 직전인 2014년말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76%였다. 금융당국이 10여년간 가계부채 구조개선을 추진해 왔지만 변동금리 비중은 더 높아진 것이다.
하긴 정부가 이렇게 때되면 한번씩 변동금리 대출을 긁어 모아 '낮은' 고정금리로 바꿔주는데 누가 당장 비싼 고정금리를 이용할까. 선의가 반복되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고정금리 유도 정책이었던 안심전환대출이 이제 변동금리 장려정책으로 변질된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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