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90명이 지휘자 없이 연주.. '오케스트라 실험' 시작합니다

김성현 기자 2022. 7.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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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4國 명문 악단에서 모인 '고잉 홈' 오케스트라 단원들
30~31일 롯데콘서트홀서 공연.. 지휘자 없는 연주 해외도 드물어
"단원들 더 창의적으로 곡 해석"
지휘자 없이 ‘봄의 제전’을 연주하는 ‘고잉 홈’ 오케스트라. 세계 14국 50여 개 명문 악단의 전·현직 단원들로 구성된 ‘수퍼 오케스트라’다. /고운호 기자

26일 서울 대학로 NC문화재단 지하 연습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14개국 50여 개 명문 악단의 전·현직 단원 90여 명으로 구성된 ‘고잉 홈(Going Home)’ 오케스트라가 조율을 마친 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첫 연습에 들어갔다.

그런데 독특한 장면이 하나 있었다. 중앙 단상에 마땅히 있어야 하는 지휘자가 보이지 않았던 것. 서울시향 악장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46)가 높이 치켜든 활에 따라서 단원들은 ‘봄의 제전’을 50여 분간 자체적으로 연주했다. 흡사 담임 선생님 없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자율 학습을 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봄의 제전’은 부단하게 변화하는 리듬 때문에 때로는 전문 지휘자들도 난색을 표하는 난곡(難曲). 하지만 첫 리허설인데도 너덧 차례 외에는 별다른 중단 없이 끝까지 연주를 이어갔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원시적 역동성을 담은 관현악곡이 거대한 실내악처럼 들렸다.

한국에서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실험이 벌어진다. ‘고잉 홈’ 오케스트라가 30~3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20세기 현대음악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봄의 제전’을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것. “교통경찰 없는 사거리에서 운전자들이 자율적으로 주행하는 기분”(조인혁 뉴욕 메트로폴리탄 수석 클라리넷)이라고 했지만,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박자와 강약, 뉘앙스에 대해서 즉석 토론을 벌였다.

이들이 대담한 실험에 나선 계기가 있다. 2년 전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이들은 베토벤의 교향곡 세 곡을 지휘자 없이 연달아 연주했다. 베토벤 당대까지도 지금 같은 전문 지휘자 개념은 정착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착안한 ‘단원 자치’의 음악적 도전이다. 편성이 크지 않은 바로크 음악에서는 종종 시도되지만, 100명에 이르는 대편성 현대음악을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건 해외에서도 극히 드문 경우다.

독일 뒤셀도르프 심포니 수석 출신의 첼리스트 김두민 서울대 교수는 “예전까지는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가는 수동적 부분이 있었다면, 단원들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지고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 경험이 바탕이 되어 지난해 말에는 비영리 사단법인 ‘고잉 홈 프로젝트’를 창립했다. 30일부터 열리는 콘서트는 이들의 창단 연주회. 독일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수석을 지낸 플루트 조성현 연세대 교수는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처럼 ‘음악가들의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 연주자들의 해외 진출도 이 프로젝트의 든든한 발판이 됐다. 예전에는 해외 명문 악단 입단이 바이올린·비올라·첼로 등 현악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목관·금관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플루트 조성현, 오보에 함경(핀란드 방송 교향악단), 클라리넷 조인혁, 바순 유성권(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호른 김홍박(오슬로 필하모닉)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악단 명칭도 ‘고잉 홈’이다. 흡사 감독이 없는 올스타 팀 같다고 할까. 함경은 “해외 악단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의 음악적 에너지가 응집되는 느낌 때문에 연주하면서도 스릴이 넘친다”고 했다.

올해 이들의 창단 연주회는 8월 4일까지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마지막 날인 4일에는 ‘정상적’으로 지휘자 후안호 메나(영국 BBC 필하모닉 전 수석 지휘자)와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6번 등을 연주한다. 조성현 교수는 “앞으로도 지휘자 있는 음악회와 없는 연주회를 번갈아 열고 매년 4차례씩 모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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