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빅스텝 선 긋던 한은, 미국발 불확실성에 스텝 꼬인다
"물가-경기 사이에서 균형 찾아야"
미국발 금리 인상의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워지면서 한국은행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 한은으로서는 앞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고려할 변수가 하나 더 얹어진 모양새다. 이미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어려워진 상황인 만큼 우려가 높다. 한은이 금리 인상을 지나치게 앞당기거나 늦춰 정책 실기를 저지를 위험도 더 커졌다는 평가다.
한은은 28일 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에 따른 국내 영향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이승헌 부총재는 회의에서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와 폭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한다”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미국 통화정책의 기조는 다른 주요 국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향후 한은의 통화정책도 불확실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일단 한·미 금리 역전의 폭이나 지속 기간을 가늠하기 힘들어졌다. 한국 경기가 지금보다 나빠지고 금리 역전의 폭도 더 커지면, 자본 유출 가능성도 증가할 수 있다. 이번 금리 역전은 예측이 충분히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가능성을 모두 변수로 둬야 한다.
물가와 경기 모두 불확실성이 커지는 동시에 전망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까지도 한은은 금리 인상 경로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전망을 제공해왔다. 특히 추가적인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여기에는 국내 물가 흐름이 한은이 당시에 전망한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전제가 달렸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13일 이를 “향후 몇달간 (물가 흐름이) 지금보다 높은 수준을 보인 뒤 점차 완만히 낮아지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한은 물가동향팀은 이날 낸 참고자료에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과거 물가 급등기인) 2008년 수준(4.7%)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썼던 표현(“2008년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을 미세하게 수정했다. 한달 사이에 전망이 다소 어두워진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주요 기관들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을 아예 내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6일(현지시각) 낸 ‘세계 경제 전망’ 수정본에서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가스는 최근 1년 전의 40%로 줄었다”며 “이번 전망치는 예상치 못한 가스 공급 감소가 추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추산한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국영기업 가스프롬은 그 전날인 25일 가스 공급량을 절반인 20%로 줄인 바 있다.
당분간은 한은도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 금융통화위원들의 발언에서 경기 둔화가 언급되는 비중이 더 높아진 것도 눈에 띈다. 이날 신성환 신임 금융통화위원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있어 적절한 수준의 통화정책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 둔화 가능성, 과도한 민간 부채의 연착륙 유도, 자본유출 위험 등 함께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산재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면서 우리 경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눈길은 다음달 예정된 한은의 금통위 회의로 쏠린다. 한은과 미국 연준은 모두 올해 세번의 통화정책 결정 회의를 남겨놓고 있다. 미국은 9월 0.50%포인트를 올린 뒤 0.25%포인트씩 두번 인상해 연말이면 정책금리가 3.25~3.5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 한국 기준금리는 2.25%다. 전날 서영경 금융통화위원은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결과와 7월 물가, 8월에 발표되는 (한은의) 경제 전망 등 데이터를 보고 (다음달) 빅스텝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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