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역사성 퇴색 못막나.. 지속 가능한 보존·관리는 '뒷전'

김예진 2022. 7. 2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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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방안 놓고 불협화음 여전
문체부 '복합문화공간화' 구상에 밀려
연구조사·문화재 지정 말도 못 꺼내
대통령실 민간자문단은 한 발 더 나가
문화예술 공간+관광자원화 요구 태세
문화재청 "솔직히 안 맡고싶다" 토로

“청와대 공간은 아주 잘 조성된 아주 멋진 공원이고, 문화재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에서 열린 청와대 개방 특집 KBS ‘열린음악회’ 때 한 말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가운데) 등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충무로 한국의집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청와대 보존·관리 방안 등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 취임 날(5월 10일)에 맞춰 서둘러 청와대를 전격 개방하면서 문화재 훼손 등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던 와중에 이 같은 윤 대통령 발언은 문화재 전문가들에게 희망적 발언으로 평가됐다. 6월 17일 청와대 경내를 처음 공식 현장 답사한 문화재청 자문기구 문화재위원회 12개 분과 위원장들이 청와대 위락공간화 및 역사성 퇴색 가능성을 우려할 때 전영우 문화재위원장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피력한 것도 윤 대통령의 발언이 근거였다. 전 위원장은 “그래도 (윤 대통령의) 아주 좋은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단초는 ‘이곳은 아주 잘 갖추어진 공원이자 문화재다’라고 (대통령이) 이야기를 하셨어요. 두 가지는 아주 조심스럽게, 섞으면 안 될 것이지만, (대통령이) 그런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러 우려가 나올 수도 있지만, 우리 전문가 의견을 잘 전하면 제도화되지 않겠는가 생각을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 발언은 ‘허언’이었을까. 청와대를 개방한 지 100일이 넘도록 문화재계는 청와대 미래를 놓고 들끓고 있다.

앞서 청와대 개방 한 달이 넘은 시점에서도 전문가들은 현지답사 후 역사적 공간의 ‘격’ 하락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시 관리자 상태인 문화재청이 먼저 정식 관리 주체로 지정돼야 한다는 것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하지만 지난 21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와대 개방 주도권을 쥐겠다고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청와대 미술관화’를 골자로 한 활용방안을 내놨다. 이는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주도해 이른바 ‘박보균 안’으로 불린다. 연 7조원 예산을 운용하는 문체부는 청와대 관련 내용으로 업무보고를 절반 가까이 채웠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보존과 관리의 주무부처임에도 상급기관인 문체부의 입김에 휘둘리며 존재감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문화재위원회 긴급 의제된 ‘박보균 안’ 파동

이에 문화재위원회 소속 분과위원장들은 지난 25일 오후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긴급회의를 열었다. 문화재위원회는 국보와 보물, 사적 등 문화재를 지정하거나 등록하고 현상변경을 허가하는 등 문화재 보존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심의를 하는 곳이다. 분과별 위원장은 대학 명예교수급으로 이들이 ‘긴급회의’를 벌인 때는 국보1호 숭례문이 불탔을 때 등 중대하고 긴급한 사건 사고, 논의할 일이 발생했을 경우다. 이런 전문가들이 모처럼 긴급 회동한 건, 이달 초부터 청와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이 심상치 않았음을 의미한다.

당일 오전 국가공무원노조 문화재청지부는 문체부가 문화재청과 전문가들에게 청와대 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어본 적이 있기는 하느냐고 비판하면서 ‘박보균 안’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 직후에는 미술 관련 단체 54개 이름을 건 입장문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결단력 있는 청와대 시각문화중심의 복합문화공간 설립 결정을 환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미술·문화재계 내에서는 미술계 일부 인사가 문화재청 노조 성명에 ‘맞불 성명’을 낸 것이란 말도 나왔다.

이에 앞서 청와대 개방 후 50여일을 즈음해 경복궁 후원(청와대) 개방을 주제로 한 전문가 토론회와 문화재위원회의 현장답사 등을 거치면서 섣부른 청와대 개방의 후유증을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야당에서도 문화재청의 청와대 보존 로드맵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나왔다.

그러자 문화재청은 재빠르게 수목 관리와 관람규정 홍보 등에 나섰다. 아울러 지난 1일 ‘청와대의 지속가능한 보존을 위한 관리 및 연구 조사 추진’ 관련 보도자료를 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청와대 내 문화유산·자연유산의 상시관리를 강화하고, 기초조사 및 연구, 문화재 지정·등록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시급한 조치로 꼽혔던 ‘사적 지정 또는 근대문화재 등록’, 즉 문화재로 정식 지정·등록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해당 자료가 공개될 예정이었던 4일 돌연 발표가 보류됐다. 같은 날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 권역을 미술관 등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이 발표하려던 방안이 박 장관 구상과 배치되기 때문에 문체부가 문화재청에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지속가능한 보존을 위한 관리 및 연구 조사 추진’ 방안 발표를 한 차례 연기한 끝에, 문화재 지정·등록 계획과 이를 위한 조사계획 등 핵심적 내용을 뺀 ‘맹탕’ 대책을 내놓았다.

◆청와대를 놓고 벌어진 삼각 난맥상

문체부와 문화재청의 매끄럽지 못한 엇박자에 대통령실까지 가세하면서 청와대 청사진을 두고 삼파전 양상이 됐다. 문화재청이 청와대에 대한 기초조사 연구를 거쳐 문화재로 지정·등록하면서 활용방안을 찾고자 한다면, ‘박보균 안’은 청와대 본관, 영빈관, 관저, 녹지원을 미술작품 전시 중심으로 쓰는 것이었다. 여기에 민간자문단을 꾸린 대통령실의 청와대 청사진은 자문단 인적구성을 볼 때 미술에 관광까지 얹은 것으로 풀이됐다.

임시로나마 청와대를 관리해오던 문화재청에 대통령실과 문체부가 자체 관리방안을 구상하면서 청와대 미래를 놓고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문체부는 22일 설명자료를 통해 “문체부 주도로, 문화재청, 대통령실과 협의하며 (청와대 활용방안을) 진행한다”며 정리를 시도했다.

하지만 역할분담이 제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문화재청은 똑 부러지는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27일 열린 문화재청장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와 관련해) 문화재청이 맡고 있는 역할과 앞으로 할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연이어 나왔다. 자체 계획은 없는 셈이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앞으로 할 일이 있으면 협력할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하다 급기야 “솔직히 (청와대 관리를) 안 맡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문화재청 노조가 밝힌 반대 의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노조 의견이 전체 의견이 아니다”라고 깎아내렸다. 하지만 문화재청 측 관계자는 “내부 분위기는 노조 성명대로다. 참다 참다 거의 마지막 발악으로 나온 성명”이라고 했다.

문화재청은 ‘박보균 안’이 발표되고 문체부가 문화재청 활동에 제동을 걸기 전인 지난달 이미 ‘경복궁 후원(청와대) 기초조사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응찰 의향을 밝힌 건축역사학회는 적격 판정을 받아 조사 착수를 앞둔 상황이다.

문화재청 채수희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장 겸 문화재활용국장은 ‘기초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해당 공간을 활용하는 게 일반적 문화재 프로세스와 상당히 다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청와대(개방 과정)가 가진 특수성이 있어, (새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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