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사진 있는데 또? 갈수록 황당해지는 문체부의 '청와대 구 본관 복원' 해명

김예진 2022. 7. 2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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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함 안내판 이미 마련돼 있는데
박보균 "모형 대신 사진 세울 수도"
모형→축소모형→미니어처
변명 수차례 말바꾸기

문화체육관광부의 청와대 ‘구 본관 복원’에 대한 해명이 점입가경이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모형 대신 사진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28일 말했다. 하지만 이미 청와대 구 본관 터에는 사진을 포함한 상세한 안내판이 마련돼 있다. 

문체부는 이날 국회 업무보고에서 청와대를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청와대 구 본관 모형물 제작과 관련해, “1948년 이후 대통령들이 사용한 집무실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젝트”라며 “미니어처로 제작하거나 사진으로 효과를 내는 방법 등 대통령학 전문가 등 각계 의견을 듣고, 오해를 불식시키면서 단계적으로 검토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미니어처 대신, 사진으로 대체할 가능성을 처음으로 꺼낸 것이다.

◆사진 이미 있는 줄 몰랐나

하지만 사진이 포함된 설치물은 이미 해당 장소에 마련돼 있다. 140만명 이상 관람객이 해당 사진과 설명을 보고 갔다. 청와대 터를 상징하는 ‘천하제일복지’가 새겨진 돌과 사진, 상세한 설명도 적혀 있다. 터의 역사적 의미, 총독 관사로 쓰였다는 사실, 일제가 민족 정기를 말살하려 관사를 지었다는 사실, 이승만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이 사용했다는 사실, 민족 정기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는 철거 이유, 철거 당시 일제가 망가뜨린 터 자체의 원형을 살리려 높이를 조금 높여 언덕을 만들었다는 사실 등이 설명돼 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구 본관 모형 복원을 사진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28일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구 본관 터에는 이미 사진을 포함한 상세한 안내판이 높이 1미터 이상 크기로 마련 돼 있다. 사진은 일반 관람이 진행 중인 6월 17일 촬영된 모습. 김예진 기자
◆비판일자 연일 말바꾸기

‘구 본관 모형 복원’ 논란에 대한 문체부의 해명은 지난 21일 업무보고 이후 일주일째 오락가락했다.

업무보고 자료에는 새로운 모형을 ‘제작’하는 것이 아닌 ‘복원’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복원’이라는 단어의 뜻은 국어사전에서 ‘원래대로 회복함’이라고 풀이한다. ‘새로운 모형’을 ‘복원’한다는 것은 국어 표기 상 함께 사용할 수 없는 단어지만, ‘복원’이란 단어를 굵게 표시하며 강조했다. 비록 모형을 만드는 것이라 하더라도 ‘무언가를 복구하고 회복한다, 예전으로 돌려놓는다’는 의도가 강조될 수밖에 없다.

‘복원’ 구상은 박 장관이 지난 4일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한 자리에서부터 드러났다.

그는 “1948년 경무대, 이승만대통령 시절부터 옛 공간(구 본관)의 경우, 김영삼 정부에서 헐렸지만, 그 공간을 바탕으로 과거를 추적”한다고 언급한다. 뜨거운 역사 논쟁이었던 ‘건국절’ 논란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박 장관은 이어 “조선총독부 관저로 시작해, 1936년부터 총독 3명이 사용했고, 1945∼48년 하지 사령관이 사용했다”며 구 본관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고 “역대 대통령 영욕이 어떻게 전개되고 했는지 담아내려 한다”고 했다. 구 본관에 담아내려 한다는 것인지, 전체 청와대 경내 프로그램을 통해 담아내려 한다는 것인지는 해당 언급에서는 불분명했다.
구 본관 터에 사진과 스토리텔링은 올해 청와대 개방 이전부터 존재했다. 사진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청와대 구 본관’을 검색하면 나오는 2018년 청와대 관람자의 후기 게시물. 네이버 캡처
이후 지난 20일 가진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에서는 좀더 구체화됐다. 이날 박 장관은 “(구 본관은)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결단을 내린 대통령의 고뇌와 여러 움직임이 있었던 곳이다. 스토리텔링해서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공간에 미니어처를 놓겠다는 생각을 잘못 말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애초 구상이 최소한 ‘전시 공간’으로 쓸만한 크기로의 건립이었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후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없앤 총독 관사의 모형을 왜 ‘복원’하느냐’는 지적이 거세게 일자, 부처 관계자들의 말도 후퇴해갔다.

지난 22일 JTBC는 문체부 관계자가 “원래 크기의 1/3~1/2 정도의 모형을 남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뉴시스는 문체부 관계자 “10분의 1이 될 지, 20분의 1이 될 지, 그보다 더 작은 크기가 될 지 검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해당 보도들이 나간 뒤, 이날 오후 문체부는 공식 입장을 홈페이지에 게시하면서 “미니어처의 제작을 검토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만도 싫어했던 ‘구 본관’

문체부의 ‘구 본관 모형 복원’ 시도는 구 본관에 거주했던 이승만 대통령 등에게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이나, 이 역시 역사적 무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 취임 당시 총독부였던 중앙청사, 총독관사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중앙청사에 대해서는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내 눈을 감지 못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당시 가난한 국가였던 우리나라 현실에서 재정 형편 상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 업무보고 자료에 ‘청와대 구 본관 모형 복원’이라고 적혀 있다. 문체부 보도자료 캡처
또 다른 맥락으로는 총독 관사가 있는 경복궁 후원 터 일대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우리 역사의 상징적 왕궁터였기 때문에, 일제 이전의 정통성을 잇기 위한 맥락에서 이 터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도 있다. 일제강점기엔 원망의 대상이었지만, 그 이전에는 조선 왕궁 터였기 때문에, 역사성을 이어가기 위해 이어 사용했다는 맥락이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사용하기 시작한 총독 관사는 너무 열악해 물이 새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태우대통령때까지 수시로 보수하며 사용했고 매번 이전 필요성이 제기됐다. 가령 이전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재정을 아껴야 한다”며 그대로 사용했다고 당시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청와대 터 전체가 길지로 여겨지지만, 구 본관 자리 만큼은 흉지였다는 풍설도 오래도록 나돌았다. 조선일보 1983년5월22일자 신문 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일제 당시 총독이 한국인 지관에게 관사터를 물색하라고 했는데 이 지관이 애국심에서 가장 좋지 않은 장소를 잡았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며 이곳에서 근무했던 총독이나 대통령들이 모두 좋지 않은 말년을 맞은 것도 이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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