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윤석열' 외치며 "전멸" 위협..출구 없는 강대강 대치

정준기 2022. 7. 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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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전승절 행사 연설에서 대남 메시지
"윤석열과 그 군사깡패들" 원색적 비난도
한미훈련 기선제압·도발 명분 축적 의도
후속 말폭탄 예상.. 정부 상황관리 시험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전승절 69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과 협박을 쏟아냈다. '윤석열과 군사깡패', '추태와 객기', '전멸' 등 자극적 표현을 총동원했다. 윤석열(정부)이라는 표현은 3차례 등장했다.

김 위원장은 출범 두 달여를 맞은 우리 정부를 향해 이 같은 '말 폭탄'을 첫 메시지로 던졌다. 과거 정부 출범 초기에 비춰 이례적인 일이다. 7차 핵실험 준비를 끝낸 북한이 내달 한미 군사훈련에 맞서 고강도 대응을 고집하면서 당분간 남북관계는 출구 없는 '강대강' 대치로 치달을 전망이다.


대북 정책 열거… '윤석열' 호명하며 원색 비난

28일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전승절(우리의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 69주년 행사에 참석한 김 위원장의 연설 내용을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 정권과 군부깡패들이 선제적으로 우리 군사력의 일부분을 무력화시키거나 마슬수(부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천만에"라며 "그런 위험한 시도는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것이며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강변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정부의 대북 군사대응을 싸잡아 뭉개며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정권과 군부를 '주적'으로 규정하고 △북한 도발에 '3축 체계'로 대응하며 △방위산업을 강화하고 △미 전략자산을 한반도로 전개하려는 움직임을 일일이 언급하면서 "핵 보유국의 턱밑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적 불안감에서 출발한 추태"라고 비꼬았다.

김 위원장은 화풀이하듯 노골적으로 악담을 퍼부었다. "윤석열이 집권 전후 내뱉은 망언과 추태들을 정확히 기억한다", "윤석열과 그 군사깡패들이 부리는 추태와 객기를 가만히 앉아서 봐줄 수만은 없다" 등 윤 대통령의 호칭마저 생략했다.

김 위원장은 2016년에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직함을 뺀 실명을 부르며 비난한 전례가 있다. 다만 당시 발언은 정권 출범 후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새 대통령 취임 직후에 북한 지도자가 남북관계를 이렇게 설정한 적은 없었다"며 "정부가 미 전략자산 전개, 한미훈련 등을 부각시키면서 김 위원장은 이를 자신을 향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군사행동 대신 말 폭탄… 핵실험 포석 의미도

이처럼 김 위원장이 말 폭탄에 주력하는 건 당장 군사행동에 나설 수 없는 북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언제든 7차 핵실험 버튼을 누를 수 있다지만,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을 확정할 10월 당대회를 앞두고 북한이 핵실험으로 중국의 잔칫상에 재를 뿌리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다.

이에 김 위원장은 "절대병기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 국가를 상대로 군사적 행동을 운운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라며 핵무장을 통한 힘의 우위를 거듭 강조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앞으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를 더욱 무력화하고 남한에 대한 압도적 힘의 우위를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김 위원장이 미국보다 남측을 향한 비난에 열을 올린 것을 감안하면 대남 도발에 나설 명분을 쌓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부총장은 "핵실험은 11월 미 중간선거 직전인 10월쯤으로 준비하되, 한미훈련 기간 전후로는 대남 미사일 도발 등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로 '합의 파기' 등 남측의 격한 반응을 유도하려 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北, 후속 말폭탄 불보듯… 강대강 우려

김 위원장은 이번 연설에 앞서 19일간 북한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긴 잠행이다. 북한이 성대한 축제로 선전한 26일 노병대회에도 예년과 달리 김 위원장은 불참했다.

과거 김 위원장은 노병대회 행사에서 연설에 나섰다. 이번에는 하루 지난 전승절에 초점을 맞췄다. 자연히 김 위원장의 거취가 관심으로 떠올랐다. 이를 놓고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극적 효과'를 노린 의도적 연출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더 관심을 끌 만한 시점에 작심하고 남측을 향한 발언 수위를 높였다는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도 말 폭탄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에 이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리선권 통일전선부장 등이 앞다퉈 대남 비방에 나설 전망이다. 정권 초부터 남북이 대결로 치달을 경우 대화를 재개할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만큼 북한을 대하는 정부의 고민은 더 커졌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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