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포스코가 하청노동자 지휘·명령"..'불법 파견' 논란 제철업계로 확산
대법원이 28일 포스코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 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을 확정해 그동안 자동차 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불법 파견 논란이 제철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원·하청이 사용하는 ‘전산관리시스템(MES)’을 불법 파견 근거로 인정한 대목이 의미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청노동자들 손을 들어준 2심 판결의 핵심은 포스코와 하청업체가 명목상으로는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질적으로 파견이었다는 것이다. 도급은 특정 업무를 따로 떼어내 별도 업체에 맡기는 것으로 원청이 지휘·명령을 하지 않는다. 반면 파견은 원청이 하청노동자에게 지휘·명령을 하고, 하청노동자는 원청 소속 정규직과 유사한 업무를 한다. 파견법은 파견의 남용을 막기 위해 사용 기한을 2년으로 제한하는데, 포스코가 이를 어겼으니 하청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게 법원 판단이다.
법원은 하청노동자들 업무가 압연코일 생산에서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했다. 또 포스코 소속 정규직들의 업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연속적으로 진행된다고 봤다. 도급과 같이 별도 공정으로 따로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포스코는 ‘전후 공정간 연속 조업량 증대를 위해 물류의 생산 타이밍(시기) 관리가 중요’ 등 내용이 담긴 교육자료를 배포했다. 하청업체가 전체 생산공정 흐름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작업을 결정하고 일의 결과만 완성할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법원은 포스코가 작업표준서와 전산관리시스템인 MES를 통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지휘·명령을 했다고 봤다. 하청업체 명의의 작업표준서가 있더라도 원청이 실질적으로 그 내용을 정했기 때문에 지휘·명령 관계가 성립한다고 했다. MES는 포스코가 주문받은 정보를 입력하면 작업 내용·장소·위치·순서 등 구체적인 공정계획이 하청노동자들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인데, 이 시스템이 불법 파견 근거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포스코는 ‘도급인으로서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포스코가 하청노동자의 작업 처리 속도를 확인하고 작업 지연을 평가에 반영한 점도 감안했다. 하청노동자의 선발, 승진·해고 등 인사관리, 조퇴·휴가 등 근태관리를 하청업체가 하기는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사정만으로 파견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번 대법원 확정 판결은 제철업계 불법 파견 소송의 ‘리딩케이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의 생산방식과 고용형태는 다른 제철기업과 유사하다. 현재 법원에서 심리 중인 다른 포스코 불법 파견 소송만 원고 수가 800명에 달한다. 현대제철도 3000명 넘는 원고가 참여한 소송이 법원에 계류 중이다. 철강업은 다른 업종보다 하청 비율이 높다. 2010년 고용노동부의 ‘300인 이상 사내하도급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31개 철강업 사업장 중 27개가 501개 하청업체를 거느렸다. 이들 사업장에서 하청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3.7%에 달했다.
이번 소송에서 노동자 쪽을 대리한 정기호 변호사는 “포스코가 제철산업에서 ‘맏형’ 같은 기업이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다른 기업의 생산시스템이나 노무관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2010년 현대차 불법 파견 판결이 나왔을 때 현대차가 망한다고 이야기했지만 현재 더 잘 나가고 있다”며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으로 이윤 추구를 할 게 아니라 기술 투자로 생산력을 끌어올릴 고민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차는 불법 파견 소송 끝에 특별채용 방식으로 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금속노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는 이날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의 100여개 하청업체, 1만80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불법 파견 추가 소송단에 참여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포스코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도급은 생산효율화를 위해 독일·일본 등 철강경쟁국들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보편적 생산방식이고, MES를 도급관계에서 활용했다고 불법파견으로 보지 않는다”며 “유사한 판결이 이어질 경우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일자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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