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 '강경 대응' 천명한 김정은..한·미 연합훈련 앞두고 긴장 고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승절’ 기념 연설은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북한의 대응 기조를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직접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윤석열 정부의 보수적인 대북 정책에 ‘강 대 강’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냄에 따라 향후 남북 관계는 더욱 경색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한이 가장 경계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다음달 전개되는 것과 맞물려 7차 핵실험과 같은 도발이 가시화할 수 있다는 있다는 예상도 조심스레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한 김 위원장의 전날 전승절 기념 연설에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태도가 고스란히 담겼다. 최고지도자의 직접 발언으로 구체화됐다는 점에서 남측 새 정부에 대응하는 북측 입장이 공식화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 함께 하는 주목할 만한 모든 군사적 행동들을 놓침 없이 살피고있다”고 밝히며 그간 윤석열 정부 움직임을 주시해왔음을 시사했다.
대남 기조의 핵심은 적대적인 ‘강 대 강’ 대결로 요약된다. 김 위원장은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힘에 의한 평화와 안보’를 강조한 윤석열 정부의 대북 기조와 ‘선제 타격’, ‘한국형 3축 체계’ 등 대북 군사정책을 일일이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선제적으로 우리 군사력 일부분을 무력화시키거나 마슬수(부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천만에”라며 “그런 위험한 시도는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것이며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김 위원장이 작심했다” “속내가 가감없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윤 대통령을 향한 김 위원장의 비난은 원색적이었다. “윤석열이 집권 전과 집권 후 여러 계기들에 내뱉은 망언들과 추태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더이상 윤석열과 그 군사깡패들이 부리는 추태와 객기를 가만히 앉아서 봐줄 수만은 없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을 향해서도 “세계 평화의 교란자” “미제의 오만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라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우리 국가의 영상을 계속 훼손시키고 우리의 안전과 근본 이익을 계속해 엄중히 침해하려 든다면 반드시 더 큰 불안과 위기를 감수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남측엔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표현한 것과 달리 미국과 관련해선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재차 밝혔다. 향후 접촉 가능성을 감안해 수위를 조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대남·대미 강경 기조를 직접 천명한 만큼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 발언을 시작으로 북한 당·정·군이 역할을 분담해 강경 비난 발언을 쏟아낼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향후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에서 대화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당분간 냉각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김 위원장 연설은 ‘담대한 계획’이라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로드맵이 나오기 전에 선수를 친 것”이라며 “북한에 밀리지 않겠다는 게 현 정부 입장인 만큼 더 강경하게 나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큰 관건은 다음달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훈련 실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핵 잠수함과 항공모함 등 미국 전략자산들이 대거 한반도에 들어오면 북한이 굉장한 부담을 느껴 위기를 급격히 고조시킬 수 있다”며 “8월말과 9월초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한반도 정세에 중요한 분수령”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대규모 합동군사연습들을 버젓이 벌려놓고 있는 이중적 행태” “미국의 핵 전략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명목의 전쟁연습들을 확대해나가고 있다”고 남측과 미국을 비난하며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계기로 북한이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우리 국가의 핵전쟁 억제력을 충실히, 정확히, 신속히 동원할 만전태세에 있다”고 밝힌 만큼 준비가 마무리된 7차 핵실험을 실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북한이 섣불리 핵실험에 나서기 어렵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통화에서 “북한 입장에선 올해말 중국 당대회와 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보려할 것”이라며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명분으로 공세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지만 핵실험을 바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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