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조사관 퇴장시키고 비공개로 백신 피해보상 심의"(종합)

전지혜 2022. 7. 2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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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던 딸 접종 후 숨진 지 1년..인과성 판단 안나와" 유족 분통
질병청 "15개월간 4만7천여 건 심의..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코로나19 백신 피해 심의를 하는데, 우리 딸 안건을 논의할 때는 역학조사관들을 강제로 퇴장시키고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이남훈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8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남훈 씨는 지난 26일 열린 질병관리청 예방접종 피해보상전문위원회(이하 보상위원회) 회의에서도 1년 전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숨진 딸 고 이유빈(사망 당시 22세) 씨에 대한 백신 인과성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제주도와 유족 측에 따르면 지난 26일 보상위원회 회의에서 유빈 씨 관련 안건에 대한 판단이 보류됐다.

질병청이 유족에 알린 사유는 '정족수 미달'이었다.

이 회의에서 보상위원회는 여러 안건을 처리한 뒤 마지막으로 유빈 씨 사안에 대해 논의하기 전 회의에 참여했던 전국 지자체 역학조사관들을 모두 퇴장시키고서 위원들만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했다.

그간 관행적으로 심의 대상 사안을 담당하는 역학조사관들이 회의에 참여해 사례를 발표하고 논의 과정을 참관해왔는데, 이번 회의에서 유빈 씨 사례에 대해 이례적으로 퇴장 조치를 한 것이다.

안성배 제주도 역학조사관은 "규정상 역학조사관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 참석을 의무화하던 관행을 깨고 처음으로 퇴장시켰다"라며 "질병청은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역학조사관 퇴장이 심도 있는 논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빈 씨는 지난해 7월 26일 제주시의 한 위탁의료기관에서 모더나 백신을 맞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던 유빈 씨는 임용고시를 앞두고 잔여 백신을 신청해 접종했다고 한다.

그러나 접종 나흘 만인 7월 30일 밤 돌연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까지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해 접종 11일 만인 8월 7일 혈전으로 인한 뇌경색으로 숨졌다.

유빈 씨 사례에 대해 제주도 당국은 의대 교수와 지역 병원장 등 전문가들과 여러 차례 회의한 끝에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질병청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조사반은 인과성 평가 결과 '4-2 백신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한 가능성이 더 높아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라고 유족에 통지했다.

의무기록과 기저질환, 전반적인 상태를 검토했을 때 백신 접종보다 재난적 항인지질증후군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제주도 당국과 유족 측은 백신으로 인해 항인지질증후군이 유발될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담은 최신 논문 등을 바탕으로 백신 인과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유빈 씨가 사경을 헤매던 당시 제주도가 백신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고자 질병청에 백신 부작용 중 하나인 혈소판감소성혈전증(TTS) 검사를 세 차례나 의뢰했음에도 접수를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언론 보도로 논란이 인 뒤 검사가 진행되긴 했지만 이미 유빈 씨가 숨진 뒤라 혈액을 채취할 수도 없었다. 병원에 남아있던 1cc의 혈청을 겨우 찾아 검사를 진행했으나 TTS가 아니라는 판정이 나왔다.

그러나 검사한 혈청은 채취한 지 10일 이상 지난데다가 냉장 보관돼있던 것으로, 검체를 영하 20도 이하로 냉동 보관해야 하는 기준이 지켜지지 않아 검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유족 측은 주장한다.

유빈 씨 안건은 외부 전문학회 4곳에 자문을 의뢰해 받은 결과 등을 바탕으로 지난 26일 보상위원회에 상정됐으나 결론이 나지 않아 다음 심의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남훈 씨는 "전문학회 자문에서 '백신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의견 없음'이라는 답변도 있었는데, 이는 근거 자료 불충분 등을 이유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 아니겠느냐"며 "백신 인과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또한 "심의가 부실하고 불투명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위원들이 직무를 유기하고 직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씨는 "공교롭게도 이번 회의 날이 딸이 접종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자 음력으로 1주기였다. 1년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국가가 독려해서 접종했다가 이렇게 됐는데, 그럼 국가가 사인 규명과 보상 등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질병청 측은 "보상위원회는 외부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됐으며, 지난 4월부터 15개월간 4만7천여 건에 달하는 많은 사안을 심의했다"며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심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역학조사관 퇴장 조치에 대해서는 "절차상 문제는 없는 사안이며, 비공개로 안건을 처리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 보상 신청 누적 건수는 8만1천383건(이의 신청 2천286건 포함)이며, 이 중 심의 완료 건수는 보상위원회가 심의한 4만7천29건과 시·도에서 자체 심의한 1만2천396건 등 총 5만9천425건(73%)이다.

이를 통해 사망 7건을 포함해 1만9천617건(33%)이 보상 결정됐다.

지난 26일 열린 제14차 보상위원회에서는 1천787건을 심의해 357건(20%)에 대해 예방접종과의 인과성을 인정하고 보상을 결정했다. 의무기록 및 역학조사 등을 바탕으로 기저질환과 과거력, 접종 이후 이상반응까지의 임상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심의했다고 질병청은 전했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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