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도쿄 묻지마 살인범' 사형 집행..일본의 사형제 고집
■14년 만의 사형 집행
2008년 여름, '오타쿠의 성지'로 불리는 도쿄 아키하바라 한복판에서 7명이 살해되고, 10명이 다친 무차별범죄. 가토 도모히로는 인터넷 게시판에 '사람을 죽이겠다'고 예고한 뒤 범행에 나섰습니다. 그가 밝힌 범행 동기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낮 12시 반쯤, 가토는 트럭을 몰고 아키하바라 '보행자 천국'으로 돌진해 행인 3명을 치어 살해했고, 2명이 다쳤습니다. 무차별 살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트럭에서 내린 가토는 흉기를 휘둘러 4명을 숨지게 했고, 8명이 더 다쳤습니다.
26일 일본 법무성은 도쿄구치소에서 기결수 가토(39)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2011년 도쿄지방재판소가 가토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고, 4년 뒤 최고재판소도 사형을 확정했습니다.
■끊이지 않는 무차별범죄
가토에 대한 사형 집행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에서는 다시 '사형제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아베 전 총리 총격 사건에 대한 충격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데다, 26일은 '야마유리원' 사건의 6주년 추도식이 열린 날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발생한 야마유리원 사건은 "장애인이 제한된 국가 재원을 빼앗는다"는 이유로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19명을 살해하고 26명을 다치게 한, 증오로 인한 무차별범죄입니다.
일본 언론에는 연일 무차별범죄 관련 기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공업대학 나카지마 다케시 교수는 최근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는 무차별범죄의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무차별 살상은 자신의 괴로움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최근에는 고통의 창끝을 겨누는 목표가 구체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시설 사건에서는 '장애인'에게, 오다큐선 열차내에서는 '행복해보이는 여성'에게 향했다. 아베 전 총리 사건으로, 두려워하고 있던 (창끝이 정치로 향하는) 사태가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격차나 빈곤과 같은 과제에 사회와 정치가 대응하지 못한 결과이다.
■아키하바라 사건 이후 일본 내 무차별 범죄
아키하바라 무차별살상 2008년 7명 사망 10명 부상
장애인시설 야마유리원 사건 2016년 19명 사망 26명 부상
가와사키시 흉기 난동 2019년 초등학생 등 2명 사망 18명 부상
교아니(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2019년 36명 사망
도쿄 오다큐선 방화 흉기 난동 2021년 17명 부상
오사카 병원 방화 2021년 26명 사망
■사형제 고집하는 일본
일본 법무성의 기자회견에서, 이 시점에 가토 사형을 집행한 이유와 백 명이 넘는 기결수 중 대상자를 어떻게 정했는지 질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사형집행 명령서에 직접 서명한 후루카와 요시히사 법무장관은 답변을 피했습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에 대해 법무성 관계자를 인용해 '사건의 중대함 때문에 법무성 내에서는 수년 전부터 대상자로부터 검토돼 왔다'는 내용만을 전했습니다.
일본의 형사소송법에는 판결 확정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지만, 이번 사형 집행은 판결 확정으로부터 7년 이상이 흘렀습니다. 가토가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일본'은 사형 집행 당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형제 유지를 고집하는 일본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엠네스티 측은 '사형제가 사실상 폐지된 국가를 포함하면 사형폐지국은 144개국에 이른다'며 '세계의 70%가 없어도 좋다는 제도를 일본은 유지하는 건가'라고 꼬집었습니다.
또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남성 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을 때, 2명은 재심 청구 중이었다며 이는 '사형에 직면한 자에 대한 권리보호의 보장을 요구하는 UN 결의나 국제인권규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NPO법인 감옥인권센터도 가토에 대한 '재심이 청구 중이었는지 법무장관이 답하지 않았다'며 '이런 걸 숨긴 채로 사형을 집행하는 건 설명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주일유럽연합(EU)대표부와 주일 EU 가맹 각국 대사 등은 사형 집행을 멈추라고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에서는 '(사형은)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불가침인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가장 굴욕적인 형'이고, '범죄를 억지하는 데 기능하지 않고, 오심이 있을 경우 돌이킬 수 없다'며 사형제 폐지를 촉구했습니다.
또 최근 미얀마에서 민주활동가 4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데 대해 '군정에 의한 인권과 법의 경시'라고 비난했던 일본이 정작 자국의 사형 집행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형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일본 내 여론은 다릅니다. 일본 내각부가 2019년 사형제 존폐 여부를 물은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500명 중 81%가 '사형도 어쩔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9%에 그쳤습니다.
일본 정부도 이 같은 여론 조사 결과를 명분 삼아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후루카와 법무장관은 "사형제도는 형사사법제도의 근간에 관계된 중요한 문제"라며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배려하면서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민 여론의 다수가 극히 악질, 흉악한 범죄는 사형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는 상황을 고려하면 명확하게 중대한 흉악 범죄를 저지른 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도 어쩔 수 없어, 사형을 폐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일본 정부는 2018년 7월 6일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쓰모토 지즈오) 등 교단 간부 7명의 사형을 집행한 뒤 불과 20일 만에 옴진리교 교도 6명에 대한 사형을 또 집행했습니다. 단일 사건에 13명, 이례적이고 신속한 대규모 사형 집행에 국제사회에서 비판이 일었습니다.
이들은 1995년 3월 도쿄 지하철 3개 노선 5개 차량의 출근길 승객을 대상으로 사린가스를 살포해 13명이 숨지게 하고 6천여 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 큰 인명피해를 냈습니다. 당시에도 일본 법무상은 "이들은 수많은 사람의 존엄한 생명을 빼앗았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검토 뒤 집행을 명령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일본에서 사형이 확정된 수감자는 107명이고 평균연령은 59.8세입니다.
지종익 기자 (jig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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