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담]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안 합리적이나 공감대 만들 전략은 부족"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심화, 기술발전에 따른 노동환경 변화, 만성화된 고용위기… . 거슬러 올라가면 1997년 외환위기 이래 누적돼 온 문제들이지만 우리사회는 아직도 확실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역대 정부들은 ‘노동개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성공을 거둔 사례는 많지 않다. 정권의 확고한 의지, 명확한 전략, 노련한 조정능력이 결합돼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윤석열 정부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유연화에 관한 구체적 방안을 공개하면서 ‘윤석열표 노동개혁’의 앞날이 주목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주 52시간제의 경직성 완화, 임금체계의 과도한 연공(年功)성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는데 과제 하나하나마다 폭발성이 강하다.
최영기(70)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방안을 온건ㆍ합리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낼 전략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화물연대 파업(6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7월) 등 연이어 발생한 노사분쟁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처에 대해 그는 “미봉책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사전 위기관리를 하지 않아 갈등해소 비용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한국노동연구원장(2004~2008년)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때에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을 맡아 ‘9ㆍ15 노사정 합의’(2015년)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한 중도성향의 노사관계 전문가다.
"윤석열 정부, 최소한도의 노동개혁 메뉴만 제시해"
_윤석열 정부가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유연화 같은 노동개혁 과제를 제안했다. 노동개혁 과제치고는 너무 협소하지 않은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소극적이다. 5년 만의 보수정권이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노동개혁을 추진하지 않아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비교적 건전하고 합리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선거 때 반(反)노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노동계의 요구사항인 공무원ㆍ교원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 도입,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등을 수용했다. 자기철학이라기보다는 선거전략으로 볼 수 있다. 집권 이후 추진할 노동개혁 아이템들을 점검하면서 임금과 근로시간 유연화 정도는 타협적 해법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한 것 같다. 노동개혁의 킹핀(king pinㆍ핵심연결고리) 격인 임금과 근로시간을 건드리면 비교적 큰 싸움 없이도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본 것 같다. 그래서 최소한도의 메뉴만 제시하지 않았나 싶다.”
_최종적인 안은 아니지만 정부는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확대하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등을 제안했다. 노동계의 반대가 크다.
“일단 주52시간제가 약간 경직적인 건 맞다. 근로자들의 건강상태도 예전보다 좋아졌고, 건강권을 보호할 여러 장치가 있어 연장근로시간 규제를 단위가 아니라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늘리더라도 큰 무리가 아니다. 유럽연합(EU)의 근로시간지침도 퇴근 후 11시간 연속휴게시간을 보장하게 돼 있고, 우리나라도 근로기준법상 탄력근로(52조)와 근로시간 특례조항(59조)에 11시간 휴식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11시간 휴식의무를 두고 1주일에 하루를 의무휴일로 규정하는 등 보완 방법은 많다. ”
_노사자율로 시행하도록 돼 있다. 노조가 없는 저임금 취약 사업장 노동자들만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 아닌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른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특징은 근로시간에 대한 민감도가 굉장히 높다는 점이다. 이런 특성이 장시간 노동에 대한 견제가 될 것으로 본다. 이 세대는 두 가지 특성이 있는데 장시간 근로를 기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업무 특성에 따라 2, 3일을 바짝 일하고 연속으로 휴일을 쓰고 싶어 하는 욕구도 있다. MZ세대뿐 아니라 30, 40대 경력단절 여성, 은퇴기를 앞둔 베이비부머들도 경력 개발을 위해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쓰려는 유인이 있다. 어찌됐든 근로시간에 대한 MZ세대의 민감도가 높아 노조가 있건 없건 노동자에게 약탈적으로 장시간 근로를 시키려는 회사에는 견제가 될 것이다.”
"중소기업 노동자, 비정규직 위해서 임금체계 개편해야"
_전임 정부들이 20년 가까이 임금체계 개편을 독려하고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왜 잘 안 됐나. 억지로라도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하는 이유는.
“연공급을 성과급으로 개편하는 작업이 어려웠던 건 오직 노조 반발 때문만은 아니다. 임금체계를 바꾸기 위해 노조와 교섭을 하는 회사의 관리자도 연공급의 수혜자라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임금체계 개편 협상에 나서는 누구도 이 체제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직무급으로의 개편을 기업노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 개편은 기업 단위를 넘어 초기업적인 노동시장에서 직무에 맞는 평균임금을 설정하는 작업이다. 직종별ㆍ직업별 임금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시행하려면 임금에 대한 기초통계가 있어야 한다. 미국 노동국(BLS) 통계를 보면 800개가 넘는 직종의 임금을 숙련도별로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기업들은 대립적 노사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한다기보다는 임금책정의 체계와 기준이 없다는 점을 힘들어한다. 대기업이 공채 형태로 대규모로 신입 직원을 뽑았던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 이제는 비정규직, 중소기업도 더 많아지는 등 1차 노동시장(민간대기업ㆍ공공부문 정규직)보다 2차 노동시장이 커졌다. 임금테이블이 없는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체계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임금체계 개편은 시급하다. ”
_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구체적으로 뭔가.
“정부 국정과제에 ‘임금직무정보시스템’을 통해 직무ㆍ직업별 임금정보 제공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이처럼 직종ㆍ직무별로 임금정보를 제공하는 일이 정부가 할 일이다. 예컨대 소프트웨어 개발자, 영화계 스태프 등의 임금을 어떻게 책정하면 좋을까에 대해 정부 통계가 있으면 분쟁이 날 일이 없을 것이다. 2차 노동시장의 무질서와 자유방임에 현대적 질서를 부여해주는 일에 정부가 투자를 해야 한다. 직무급 도입을 대기업ㆍ공공부분의 임금체계 전환작업으로만 국한해 생각해서는 안 된다. ”
_정부는 근로시간ㆍ임금개혁을 위해 전문가 회의를 통해 논의를 하고 정부 입법을 하겠다고 한다. 국회의 여소야대 상황을 보면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은데, 이런 로드맵으로 개혁이 가능할까.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방식은 개혁에 대한 부담을 국회로 넘기자는 것이다. 아마 ‘우리는 할만큼 했어’라고 체면치레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가 노동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의지가 강한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21대 국회 후반기 환경노동위원회의 위원장 자리를 야당에게 맡긴 일도 상징적이다. 정말 21대 국회에서 노동개혁을 하겠다는 의지가 높다면 다른 위원회는 야당에게 내주더라도 환노위 위원장은 여당이 가져왔어야 한다. 노동개혁은 사회적 지지가 중요하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개혁에 대해 높은 국민적 공감대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돼야 노사단체 대표자들도 개혁에 반발하는 내부 구성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고용노동부의 우선추진과제(근로시간ㆍ임금체계 개편) 개혁안이 나왔을 때 노사는 자신들과 협의도 없이 국회로 갈 경우 일방적이라고 비판하지 않겠는가.”
_2015년도의 ‘9ㆍ15 노사정 합의’는 좋은 내용을 담았는 데도 불구하고 결국 파기됐다. 노동개혁을 추진하려면 왜 실패했는지 참고해야 할 사례 같다.
“노사가 합의할 수 있는 경계선까지 밀어붙였던 게 9ㆍ15 노사정 합의다. 합의 후 여당 쪽에서 ‘한 걸음만 더 가자’고 욕심을 내면서 어그러져 버렸다. 중요한 건 개혁을 할 때는 정부가 주도할 건지, 노사정 타협을 할 것인지 노선을 정해야 한다. 타협하기로 했다면 어느 정도 이상은 무리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9월 15일에 합의해놓고 다음 날 당정청이 모여 일명 양대 지침(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 완화)을 연말까지 발표하겠다는 무리수를 두어서 합의가 엎어진 것이다. 노동개혁의 방법은 영국과 네덜란드 사례로 보듯이 돌파도 있고 타협도 있다. 영국 마거릿 대처 정부는 노조의 무리한 정치파업에 굴복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정치적 승부를 거는 돌파전략으로 노동개혁을 밀어붙였다. 반면 네덜란드는 1982년 기념비적인 바세나르 협약을 시작으로 1993년에는 ‘새로운 노선(new course)’ 합의, 1995년 ‘유연안정성협약’ 등 노동개혁의 방식으로 일관되게 사회적 대화방식을 택했다. 윤 정부가 만약 사회적 대화방식으로 가려면 노사가 함께 가야하는데, 어떻게 할지 아직 결심이 안 선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 대우조선 사태...윤정부 준비안된 채 봉합 급급해"
_새 정부 노사관계 첫 시험대가 화물연대 파업이었다. 쟁점이었던 ‘안전운임제’ 연장 문제를 국회에 공을 넘기고 타협을 했다. 보수진영에서 노동계에 양보만 했다고 보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윤 정부가 노사관계에 대해 어떤 기준을 갖고 처리했다기보다는 준비가 안 된 채 당황해서 허겁지겁 봉합을 한 것처럼 보인다. 예상보다 길게 파업이 장기화된 데는 정부 탓도 있다. 안전운임제 일몰은 연말까지 시한이 정해져 있었지만 유가도 오르고 해서 안전운임제 일몰은 쉽지 않았다. 파업 초기에 ‘안전운임제 일몰 문제를 국회에서 논의해 보자. 파업을 접으라’는 식으로 했으면 말로 끝낼 수 있었는데 국토교통부가 굉장히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며칠 안에 끝낼 수 있었던 문제였는데 이를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해 8일씩이나 파업을 방치한 건 비판받아야 한다.”
_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는 잘 해결했다고 보나. 노동계는 파업 도중에 ‘불법파업’으로 규정했다며 비판했다.
“파업이 시작된 게 6월 초이고 선박 점거농성이 시작된 건 6월 말이다. 이후 한 달 가까이 방치됐다. 그러다 대통령이 7월 하순이 다 돼서 갑자기 ‘장관들이 좀 챙겨 봐라’ 해서 부랴부랴 5개 부처 장관이 공동성명을 내고, 거제도로 내려가고 그러지 않았나. 정부가 민주노총의 투쟁 행태나 이런 걸 잘 모르기도 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휘말리지 않으려 소극적 대처를 하다가 사태가 장기화하니까 부랴부랴 불을 끈 것 아닌가 싶다. 다만 사람이 다치지 않고 원만히 끝난 건 다행이다. 개별 노사분쟁에 대응하는 기조가 두서없어 보이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세계적으로는 양극화가 심각하고 취약계층의 빈곤화도 가속화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의 불만과 분노가 집단화되고 조직화되면 갈등이 폭발적으로 커질 위험이 높은데 정부가 그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노동개혁도 구상해야 하는데 그래 보이지 않는다. 선거 때 보면 윤 대통령은 노동계에 대한 편견도 없고 비교적 합리적으로 거리를 잘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국정 책임자가 되고 사건이 터지니까, 그때 그런 태도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반면 민주노총은 ‘이렇게 강경하게 나섰더니 정부가 밀리네’라고 잘못 생각하고 더 세게 나올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불법행위를 그냥 두고 보지는 못할 것이다. 서로 교감이 없으니 잘못하면 정면충돌할 위험도 있어 보인다.”
_경영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 같은 강성노조를 방치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고 주장하며 강경대처를 주문한다. 그렇다 해도 어쨌든 100만 명이 넘는 조합원을 가진 대표성이 있는 조직이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노총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윤석열 정부가 한국노총과 함께 가겠다는 태도는 분명하다.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별다른 시그널을 주지 않고 있지만 대통령도 그렇고 정권 구성원 성향으로 봐도 곱게 보지는 않을 거다. 그런 상태에서 별도로 민주노총에 대한 구상이나 정책도 없이 방치하는 것 같다. 경기 상황이 안 좋고, 물가도 높고,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여있는 상황이다. 대우조선 사내하청 노조의 선박점거가 과격하긴 했지만 ‘비정규직들이 얼마나 절박하면 저렇게까지 싸울까’라는 공감도 상당했다. 꼭 11월 총파업이 아니더라도 노동자들의 쌓여있는 불만을 민주노총이 정치적으로 조직화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때는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민주노총 출신 인사를 앉혔고, 청와대에도 상호 교감할 채널이 있어 큰 갈등의 폭발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는 그게 다 차단됐을 것이다. 나중에 정면충돌로 가면 정권에 큰 리스크가 될 것이다. 정부로서는 충돌 가능성을 충분히 사전적으로 예상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지금 이렇게 무방비로 방치하고 있어도 될지 걱정은 된다. 대화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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